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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Oct 27. 2022

사계절이 아프다.

     사소한 일이 나를 흔들어 댄다.

초겨울, 억세게 불어오는 맞바람에 막무가내로 흔들리는 들판의 억새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나를 뿌리째 흔들어 댄다. 다시, 머릿속에서 격렬히 떠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별게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심연에서 흔들리는 불안의 기저를 나는 막을 수가 없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삶의 작은 울림은 의도치 않은 마음의 헛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어 댔다.


     꽁꽁 얼어붙은 땅이 녹고 작은 새싹이 올라오면, 지나간 시간만큼 마음도 단단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여지없이 비웃듯 사는 건 언제나 힘들었다. 무른 땅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굳건히 서 있겠다 수없이 다짐을 했건만, 깐족거리는 인생의 살 바람에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불안의 족쇄에 갇혀 물안개처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사계절이 아프고 힘들었다. 

     더운 날이건, 추운 날이건 시도 때도 없이 잔뜩 눌려 있던 불안의 기운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면 그 순간만큼은 편안 해졌다. 그러나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고 잠시 물러났던 불안의 그림자는 또다시 어둠이 되어 나를 덮쳤다. 이렇게 혼자만의 고통 속에 갇혀 스트레스와 긴장의 뻘 속에 온 몸이 담긴 채, 양 콧구멍만을 간신히 내놓고 곧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며 살았다.


     그러다 해의 길이가 달라지고 조석 간의 일교차가 커지며 짙푸른 녹음과 귀청을 찢던 매미들이 사라져 가면 이젠 전혀 다른 아픔이 나에게 왔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삶이면서도 생기를 잃어가는 나뭇잎을 보면 가슴을 때리는 상실의 고통이 왔다. 마치 파릇파릇하게 행복했던 나의 삶이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고 푸석거리며 메말라가는 낙엽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아픔이 내 심장을 때렸다.


     어릴 적…


     입에서 입김이 나오고 커피잔의 아지랑이가 피는 계절이 되면 그때의 그 청량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군용 재킷을 닮은 상의의 지퍼를 목 끝까지 밀어 올리게 하는 그 상쾌함이 마냥 좋기만 했었다. 허나 이젠 그게 너무 아프다. 하나둘씩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갈수록 황량해지는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래서 사계절이 아프고 힘들었다. 이렇게 아파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정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냥 이런 내가 웃겼다.


     ‘사계절이 아프구나. 사계절이 힘들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괴롭구나.’


     ‘그럼 도대체 아프지 않은 때는 언제니?’


     자의식의 세계를 벗어나 무의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연민의 감정이 밀려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며 그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는 자신을 느낄 때, 진한 연민의 향기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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