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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Jan 18. 2023

2-4.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찰랑~


     힘겹게 떨군 가벼운 원판이 벤치프레스 위에서 맑고 청량한 소리를 냈다. 밖은 따스한 봄 햇살이 나부끼며 청량한 바람과 꽃잎이 흩날리던, 보드라운 손잡고 연애하기 좋은 날이었건만, 나는 어두컴컴하고 땀냄새 찌든 체육관의 벤치프레스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화창한 날이라고 해서 운동을 거르고 싶진 않았다. 밖으로 나가 포근한 봄 향기를 맡으며 계절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운동을 거르면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그날도 어김없이 운동복을 챙겨 체육관으로 기어올라갔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를 수 있냐는 말이 참 쉽게 나왔다.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저 감탄사는 말 같지도 않은 충고와 더불어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너처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비법을 알려 달라 거나 무조건 밥을 많이 먹으라는 조언부터 개 사료와 함께 라면을 먹으라는 무식한 막말까지 그 종류도 참 많고 다채로웠다.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한낮의 찌는 듯한 무더위보다 더 이상 옷 안에 숨길 수 없는 왜소함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걸 가려보겠다고 한 여름에도 셔츠를 두 개나 입고 다녔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안 덥냐? 보고만 있어도 덥다.”


     “제발 좀 하나는 벗자. 진짜 왜 그러냐야~. 니 지금 땀 흘리는 거 봐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친구들의 눈빛을 애써 모른 체하며 안에 껴입은 면 티를 절대 벗지 않았다. 마른 멸치에 고추장 한 번 더 바른다고 얼마나 두꺼워질까 마는 그래도 면 티를 입고 그 위에 반팔 셔츠를 또 입으면 그나마 체격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벌거벗고 다녀도 미칠 것 같은 삼복더위에 두 장의 셔츠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렇게 52 킬로그램의 몸무게는 스무 살 청년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사람들은 비만인 사람에게 ‘왜 이리 뚱뚱하냐’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면서도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들어온 소개팅에 나가면 남자 다리가 여자보다 더 얇다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들었고 그때마다 잊고 있던 신체 콤플렉스가 되살아났다. 소개팅에 나온 여성이 마음에 라도 들면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래서 미치도록 바꾸고 싶었다.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다리 대신 건장하고 단단한 몸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바꿔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운동을 해야 내 몸이 변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건물 앞에 우락 부락 한 근육을 가진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사진을 봤다.  그걸 보며 ‘나도 저 운동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날 바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제 내게도 신세계가 열릴 것만 같았다. 넓은 어깨와 선명한 이두근, 굵직한 다리로 멋들어지게 청바지를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꿈과 같을 그 시간은 내게 오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하고,


     1년…


     5년…


     10년…


    1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수천, 수만 번을 참고 견뎌도 근육통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몸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몸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깨부수는데 25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 조금 편해지는 듯하다 가도 금세 극심한 불안이 밀어닥치고 고독의 아픔이 나를 찢어 놓는다. 그래서 요가를 수련하고 매일 명상을 하며 아무리 내 마음을 돌아봐도 나는 뚜렷하게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딱 한 장 남아 있는 젊은 시절의 나를 보고 지금의 내 몸을 본다. 1년, 5년, 10년, 15년, 25년의 시간 동안 내 몸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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