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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May 07. 2023

2-7.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빈 공간에 들어선다.

그곳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주 앉던 익숙한 자리에 앉아 숨과 마음을 가르며 내 안이 고요해지길 기다린다. 그러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눈길이 갔다. 그냥 낯빛을 보고 표정을 읽고 눈빛을 마주하며 ‘저 사람은 어디가 아파서 이곳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 하나 아픈 기색 없이 멀쩡한 모습이기에 그 사람이 품고 있을 아픔과 슬픔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빈 공간이 뜨거운 숨결로 가득 차면 언제나 어둠의 기운이 짙어졌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슬퍼졌다.


위험한 환자가 진료를 보고 갔다고 했다.

나쁜 시도를 반복적으로 하며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고 했다. 입원을 권유했음에도 받아들이질 않았고 같이 온 보호자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쉽게 보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 주에 저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올지 알 수가 없기에 이생에 붙잡고 싶은 마음이 그를 놓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 초과를 알리는 몇 번의 버저가 귓등으로 무색하게 흐른다고 했다.


이런 생사의 갈림길이 진료실을 장악하면 남은 환자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핸드폰에 눈길을 주다, 쪽잠을 자다 슬슬 짜증이 밀려오면 비난의 화살은 접수처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지다 순서가 밀리고 밀려 가득 찬 대기실에 파도를 치듯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사회가 발전하며 살기에는 더 편해진 것 같은데 사람들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겉은 멀쩡해도 마음속은 다 썩어 있기에 이곳을 그렇게도 찾나 보다.


정신과에서 지난 7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병원밖에 없었을 때가 있었다.

‘오늘 죽을까 아니면 내일 죽을까?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터지기 시작하는 눈물이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순간의 위기를 넘기고 하루를 버티며 7년이란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잘 안다. 진료실에서 나오지 못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나는 얼마를 기다려도 괜찮다.


이곳에서 30여 분 혹여 한 시간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 시간만큼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당신이 써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다면, 그래서 그날의 충동에서 벗어나 뻘처럼 빠지기만 하는 당신의 인생에 굳건히 두 발 딛고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를 기다려도 괜찮다.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기다리는 것, 오직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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