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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Jun 30. 2023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냐?

<살아가는 이야기>

60일 치 이상은 처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일반의가 아닌 정신과 전문의도...


향정(향정신성의약품)은 60일 이상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두 달 이상의 장기 처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출국 후에 국제 우편으로 받을 생각이었다.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대리 처방 자체가 불법일뿐더러 된다고 해도 향정이 우편으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한 가지 꾀를 냈다.


우편이 어렵다면 인편으로 해결하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처방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약을 받았다. 먹고 남은 약을 꼬박꼬박 모아 해외 장기 파견에 대비했다. 그렇게 일 년을 모으자 2년 반 치의 약이 쌓였다. 이 정도면 해외에서 약 때문에 맘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푸근히 마음을 놨다.


간만에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먹고사는 얘기를 하다가 해외 파견이 언제인지 물었다. 몇 개월 남지 않았고 사부작사부작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을 버리고 책을 정리하며 약도 잘 챙겨 뒀다고 했다. 이 말을 듣더니 그 많은 약을 들고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뭔가에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전화를 끊고 서랍을 열었다. 빼곡히 쌓여 있는 약을 쳐다보며 해외 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짓을 벌였는지 순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약이다.


그래~


내 정신 질환을 완화시켜 주는 약일뿐이다. 

하지만 외국 세관이 알게 뭔가. 어떤 외국인이 알 수 없는 다량의 약을 소지하고 입국한다면 당연히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세관이라도 ‘너 뭔데?’하고 붙잡겠다. 캐리어에 넣었다가 엑스레이 검색에서 걸린다면 더 이상할 테다.


햐~

답답하다.


부리나케 검색을 했다. 

참 말도 많다. 


“처방전과 진단서를 소지하면 괜찮다.” 


아니다. 


“향정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매우 까다롭게 다룬다. 가지고 갈 수 없으니 현지에서 처방받아라.” 


또 아니다. 


“사전에 미리 허가받고 핸드 캐리하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도대체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지 병원이나 알아보자 싶었다. 병원이라도 있으면 국내에서 챙겨간 영문 처방전으로 어찌어찌 현지에서 약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글 맵을 켜고 정신과를 검색했다.


Psychiatric Clinic


야~

이거 뭐지.


클릭 한 번에 이런 사진이 뜬다.



너무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정신과를 검색하며 스쳤던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해 악령이나 마귀의 소행, 악행에 대한 업보, 신앙심 부족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가족은 신앙인이나 전통 치료사와 먼저 상담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의학적 치료에 매달린다."


그냥 기운이 빠졌다.


약에 대한 불편함이 정신 질환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만성 질환도 분명 이동에 대한 불편함, 약에 대한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향정만큼 어려울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만큼 어이가 없고 힘에 겨울까?


나는 그저 지난 7년 동안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심리적 안정이 깨지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까지도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약을 끊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 약 하나 구하는 것도 이리 버겁다.


그래서 나는 이 병이 너무 아프고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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