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7회 엄마와 풀빵 장사

장편소설

by 가야

7회 엄마와 풀빵 장사


외삼촌을 도우며 장사에 일찍 눈을 뜬 엄마가 풀빵 장사를 시작했다. 무주 읍내에 나가 풀빵기계를 구입하고 빵 굽는 기술까지 배우고 온 엄마는 곧바로 장터 사거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빵을 구워 팔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엄마의 풀빵 장사는 미처 굽지를 못해 팔지 못할 만큼 장사가 잘되었다.


농사만 지을 때는 돈이 몹시 귀하다. 돈을 만들려면 수확한 농산물을 팔아야만 했다. 대부분 소작농인지라 자신들이 지은 농사로 작년에 빌린 장리 빚을 갚고 나면 겨울이 되면 다시 장리 빚을 얻어야 굶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했었는가 하면 안성장터에서 부자 소리를 듣는 외삼촌 소유의 논이 고작 여덟 마지기 1600평에 불과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고, 설사 땅이 있다 하여도 영농방법의 낙후로 지금과 같은 소출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아무리 높은 산언덕 비탈진 곳이라도 개간을 하여 농사를 지었다.


그런 때 엄마가 풀빵 장사로 돈을 만지자(비록 오일에 한번 장날뿐이었지만) 덩달아 우리들에게도 그 귀한 돈을 만지는 날이 늘어났다. 장날 저녁 엄마가 앞치마를 끌러 그 안에 든 돈을 방 가운데 쏟아놓는다. 아버지를 비롯해 언니와 오빠 나까지 빙 둘러앉아 돈을 세는 즐거움은 아주 각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돈을 벌기 전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엄마가 풀빵 장사로 모은 돈을 종이돈으로 바꿔 이불 밑에 넣어 둔 돈 가운데 일부가 없어진 것이다. 틀림없이 집 안 사람의 소행이다. 만약 도둑이 들었다면 도둑이 남의 사정 봐주면서 일부만 가져갔겠느냐는 것이 엄마의 추측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낸 것은 나는 처음 보았다. 엄마는 우리 형제를 범인으로 지목하셨다. 2살 밖이 동생은 제외하고 가장 어린 나부터 차례로 엄마 앞에 불려 들어갔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 공연히 벌벌 떨린다. 엄마가 회초리로 방바닥을 가리키며 듣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너, 이리 가까이 와 앉아!”


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엄마 눈치를 살피면서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되묻는 내 말에 엄마는 눈을 하얗게 치뜨고 위아래로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느닷없이 회초리로 방바닥을 딱 내려쳤다.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며 몸을 옴츠린다.


“뭐하고 있어, 언능 이리 와 꿇어앉지 않고.”


벽력 같은 엄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며 머뭇머뭇 다가선다.


“이리 더 가까이 바싹 다가앉아.”


겁에 잔뜩 질린 나는 무릎걸음으로 엄마 코앞까지 간신히 다가가 앉는다.


“너 솔직히 말해. 덕이, 너 엄마가 이불 밑에 넣어 둔 돈에 손댔냐?”


“난, 아냐! 나는 그 속에 돈이 있는 줄도 몰랐어. 참말이야!”


나는 절대 그런 짓을 안 했다는 뜻으로 두 손을 흔들며 완강히 부인했다. 엄마는 잠자코 나를 노려보더니 턱으로 나가도 좋다는 뜻을 보이며 말했다.


“알았은 게 나가서 오빠 좀 들어오라고 그래라.”


오빠가 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오빠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마루를 쿵쿵 밟고 나와 자신이 도둑으로 지목된 자체가 분하다는 듯 씩씩거린다. 범인은 언니로 밝혀졌다. 언니는 몰래 가져간 돈으로 언니가 즐긴 쾌감의 수십 배도 넘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언니의 필통 속에서 쓰고 남은 잔돈이 나온 것이다. 물증이 나오자 완강하게 버티던 언니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언니의 자백을 듣고 난 엄마는 두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장롱 속에서 언니의 옷과 책 등 소지품을 보자기에 주섬주섬 담아 묶고 그 보자기를 언니의 가슴에 던지듯 안겨주며 말했다.


“당장, 썩 나가. 나는 너 같은 도둑년을 딸로 둔 적이 없으니까. 딸년 하나 없는 셈 치면 되니까 당장 못 나가!”


엄마의 행동에 넋이 반쯤 빠진 언니는 처음에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곧 언니는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언니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재빨리 꿇어앉아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엄마!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생전 안 쓰던 경어까지 쓰며 언니는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도둑년을 낳은 적 없으니까.”


엄마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에게 다정다감하게 살갑게 대하거나, 힘들다고 투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어린아이라면 마땅히 엄마에게 부려야 할 응석이나 투정을 부린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엄마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소 우리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매서우리만치 냉정했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그런 매정함을 대놓고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3형제는 다른 집 애들에 비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은연중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하거나 좋다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경망스럽고 가벼운 여자로 폄하한 당시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오늘 엄마는 진짜로 새엄마 같다.


아무튼 언니는 그날 오빠와 나까지 합세하여 울면서 사정을 한 덕분에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면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엄마는 더 이상 장사를 계속하다간 애들 버리겠다고 장사를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우리들이 남에게 지고 오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의 성격이 모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독불장군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엄마는 천성적으로 상냥하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귀여운 행동도 곧잘 하기도 했다. 또한 어려운 사람을 결코 모른 체하는 법이 없는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여하튼 그런 엄마가 초오를 훔쳐 먹은 나에게 약간의 훈계만으로 용서를 했다는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그렇지만, 둠벵이에 갈 때 설레던 마음과 달리 귀갓길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속이 메스껍기도 했지만 몇 번이나 토해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천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까딱까딱 아버지가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움직이는 지게를 따라 덩달아 내 몸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아니 누님! 덕이가 초우를 먹었다는 게 참말인가요?”


다음 날 아침 외삼촌이 마당으로 들어서며 하신 말이다. 우리는 어젯밤이 이슥해 둠벵이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밤사이 내가 초우를 먹고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는 소문은 장터를 지나 샛담에 사는 외삼촌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어서 오게. 동상!”


“그래, 덕이는 암시랑 않은가요?”


외삼촌이 마루로 올라서시며 말씀하신다.


“다행히 암시랑도 안고만.”


“덕아? 너 참말로 괜찮냐?”


외삼촌은 믿기지 않는지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나는 새삼 남의 물건을 훔쳐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고개를 숙이며 끄덕였다.


“오메! 참말로 천지신명이 도왔네요. 시상에 초오 그게 얼마나 독한 건데. 덕이 너는 겁도 없이 어떻게 그걸 다 먹을 생각을 했냐, 그래?”


나 대신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게 더덕인 줄 알았다지 뭔가, 하기사 애들 눈으로 보면 초오 하고 더덕하고 생긴 게 비슷하긴 하지.”


“매형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고만요. 덕아, 초오가 정말 더덕 같데?”


“네.”


“누님, 야 땜시 얼매나 놀랬는가요?”


“말 마. 가시나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암 것도 뵈지가 않더라니께. 내가 공연히 억척을 떨어 덕유산 둠벵이까지 가 팔 밭 좀 부치려다 생때같은 자식새끼 하나 또 죽이는구나 싶어 얼매나 기가 막히던지.”


엄마가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님도 참, 그래, 뭐 할라고 그 험한 덕유산 골짜기까지 덕이를 데꼬 갔는가요?”


“데꼬 가긴, 이상하게 생전 안 그러더니 어제 아침엔 그런 일이 생기려고 그랬는지 자꾸만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보다 못한 즈 아버지가 데꼬 가자고 혀서 데꼬 갔지.”


“아이고, 시상에, 그 험한 길을 덕이가 어떻게 갔당가요?”


“어른도 걷기 힘든 험한 길을 저 어린것이 어떻게 걸어서 갔겠나? 즈 아버지가 지게에 지고 갔지.”


엄마가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씀하신다.


“덕아, 거기가 그렇게 가고 싶대?”


나는 얼굴을 붉히고 수저를 입에 문 채 고개만 겨우 까닥거렸다.


“그래, 가보니 어떻더냐?”


“이쁜 꽃이 너무너무 많았어요.”


“이쁜 꽃이 그렇게 많았어?”


“네”


“나중에 엄마 아버지 일하러 거기 다시 가면 또 따라갈래?”


나는 고개를 살그머니 가로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가고 싶다고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을 한다면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참말, 누님! 천지신명이 도왔고만요. 근디 덕이 야가 명은 길 모양이네요.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기는 걸 보면.”


“몰라. 근디 동상 아침은 했는가?”


“하먼요. 벌써 먹었지 여태 있어요. 그건 그렇고 둠벵이는 이번 비에 괜찮던가요?”


“다행히 별 탈은 없더구먼.”


“날이 이렇게 꾸물거리고 하늘이 캄캄해지는 걸 보니께 한바탕 비가 쏟아질라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사지 삭신 어디 한 군데 안 쑤신 데가 없고만.”


“그 먼 둥벵이까지 댕겨 온 데다 덕이 때문에 놀래기까지 했은게 더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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