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지루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모처럼 햇살이 쨍쨍 내려 쬐는 어느 날, 아침을 일찍 먹고 재 넘어 밭에 가는 부모님과 함께 집을 나선다.
방학 때인지라 동생은 언니가 맡고, 오빠는 숙제를 한다며 집에 남았다. 엄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눈물까지 흘리며 떼를 쓴 덕분에 간신히 따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저놈의 가시내 나중에 커서 대체 무엇이 되려고 저렇게 고집이 센지 모르겠어. 여자가 고집이 세 봤자 매 밖에 버는 게 없다는 디 참말 큰일이 랑게. 이렇게 햇볕이 대가리가 벗겨지도록 쨍쨍 내려 쬐는디. 시원한 집에서 놀고 있지 그 험한 데를 따라가려고 기를 쓰는지 몰라. 나 같으면 같이 가자고 할까 봐 겁 나겠고만. 덕이 너 이따 가다가 다리만 아프다고 그러기만 해 봐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광주리를 머리에 이며 엄마는 도끼눈으로 흘겨본다.
“알았어. 다리 아프다고 안 하면 되잖아.”
나는 아버지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비 둬 저렇게 따라가고 싶어 하는데, 한번 호되게 고생을 해봐야 담엔 가자고 사정해도 안 갈 테니까.”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씽긋 웃는다.
단지봉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비 때문에 한결 싱그러워진 나뭇잎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일제히 손을 흔들고 있다. 길 가장자리는 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작은 도랑을 만들어 흘러간다. 신작로 곳곳에 고여 있는 빗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첨벙 밟아 미끄러운 고무신이 벗겨진다.
산딸기나무가 무성한 좁은 산길로 접어들자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타박타박 걷는 내 이마에 어느덧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하자 저만큼 앞서서 걷던 아버지가 지게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신다.
“안 되겠다. 덕이 너 지게 위에 올라타거라.”
뜻밖의 아버지 제의에 날아갈 듯 기쁘면서도 나는 엄마 눈치부터 살핀다. 엄마는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서도 짐짓 못 들은 체 저만큼 앞장서서 걷고 있다.
“싫어. 엄마한테 혼나.”
“괜찮아, 어서 타래도.”
아버지는 나를 번쩍 안아 바지게 위에 올려놓고 지게를 지고 일어서신다. 지게 위에 올라 탄 것은 처음이다. 맨 땅 위에 받쳐놓은 지게 위에 올라가는 일도 무섭고 두려운데 육 척 장신인 아버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지게 위는 너무나 무섭다. 지게 위에서 떨어질까 봐 지게 꼭대기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쭈그리고 앉아 두 눈까지 꼭 감는다.
산새들이 우짖는 소리와 졸졸졸 물이 흘러가는 소리,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가 들으며 나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온통 빽빽한 나무들로 어두컴컴하고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뿐이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여전히 아버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게 다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일어선다.
“와, 아부지! 이쁜 꽃이 겁나게 많다!”
길가에 수없이 많이 핀 들꽃을 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쁜 꽃이 참말로 많지?”
“근데 아버지! 이 꽃은 다 누구네 거야?”
아버지는 내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다보셨다. 헛웃음을 지은 아버지는 걸음을 옮기면서 말씀하셨다.
“꽃에 무슨 주인이 있냐. 그냥 피는 거지.”
“그럼, 이 산은 누구 건데?”
“이 산? 이 산도 임자가 없다. 그럼 덕이 너는 누구 것이냐?”
아부지는 내게 그렇게 되물었다.
“나? 나는 내 거지.”
“그래. 바로 그거다. 네가 네 것이듯, 저 꽃들과 산도 저 꽃과 산의 것이야. 알았어?”
“아하,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있는지, 보는 사람이 없어도 꽃은 그렇게 피어나고, 또 그렇게 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일곱 살인 나로서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드넓은 꽃밭을 뒤로하고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들어선다. 서늘한 바람이 울창한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뜨거운 햇살도 무성한 나무에 가려 어쩌다 손바닥만 한 조각 빛만이 나뭇잎 사이로 비춰들 뿐이었다.
“즈 아버지! 힘들 텐데 쪼께 쉬었다가요. 가시나가 기언이 따라와 몸도 성치 않은 즈 아버지 애를 먹이네.”
엄마가 이고 있던 광주리를 풀밭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럽시다. 아침에 좀 짜게 먹었더니 목이 좀 마르네.”
지게를 벗어 놓은 아버지가 나를 덥석 안아 땅 위로 내려놓았다. 엄마가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아이고 시원하다. 덕이 너도 이리 내려와 땀 좀 씻어라. 물이 너무 차거와 손이 시리다.”
엄마 말처럼 계곡 물은 손을 담그기 힘들 만큼 차가웠다. 그동안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계곡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눈 깜빡할 사이에 저만치 아래로 달아나 버린다. 계곡 옆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불어난 물에 허리가 부러지고 꺾인 채 무참히 널브러져 있다.
“조심해. 까딱 잘못해 물에 빠지면 뼈도 못 추릴팅게.”
엄마의 말속엔 여전히 가시가 돋쳐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겁이 안 난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시는 아버지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대놓고 말은 안 하셨지만 오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땀을 식히는 동안 아버지는 막걸리 한 사발에 풋고추를 안주로 드셨고, 엄마와 나는 삶은 감자 한 개씩 먹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빽빽한 나무들로 한낮인데도 길은 어두컴컴하다. 으스스한 그 길을 한참을 걸어간 뒤 울창한 숲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숲을 벗어나자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들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렇게 넓고 아름다운 들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예쁘고 다양한 꽃들도 그때 이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와! 참말로 예쁘다. 아부지! 저기 저 꽃 이름이 뭐야?”
“그건, 넘 나물이라고 하는 원추리 꽃이다.”
“그럼 저 쪽에 있는 초롱같이 생긴 꽃은?”
“모싯대!”
“그럼 저기 저 보라색 꽃은?”
“그건 꿩의다리!”
“거짓말! 치, 무슨 꽃 이름이 그래?”
“자세히 보거라. 줄기가 꿩의다리처럼 길쭉하고 늘씬하잖니? 그래서 사람들이 이 꽃을 꿩의다리라고 부른단다.”
“아, 그렇구나!”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꿩의다리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부지! 저기 있는 저건?”
“그건, 동자꽃!”
끊임없는 내 질문이 귀찮기도 했을 텐데 아버지는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아부지 귀찮다. 그만 물어보거라. 조그만 가시나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
나는 엄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꽃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아부지! 저기 저 바늘같이 뾰족뾰족하게 생긴 꽃은 뭐라고 불러?”
“그건, 진범이라고 부른다.”
아버지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저기 있는 것은 산 오이풀 꽃이고, 그 뒤에 핀 꽃은 흰송이풀 꽃,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엉겅퀴.”
나는 아버지가 일일이 지게 작대기로 가리키며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는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 꽃 이름을 묻지 않는다. 설사 아버지가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해도 내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설사 꽃의 이름을 외운다 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걷는 동안 꽃들의 세상은 끝이 없었다. 아름다운 꽃들은 눈과 마음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꽃길을 걷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지가 계시고 시원한 바람이 함께 있으며 아름다운 들꽃이 지천으로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렇게 많은 크고 작은 꽃들 중에는 거짓말 좀 보태서 내 얼굴만큼 큰 탐스러운 꽃도 있었다. 바람은 시원하게 살랑살랑 불어와 내 뺨을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갔다. 더위란 단어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탐스럽게 커다란 꽃이 요강에 그려진 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꽃 이름이 궁금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물어볼 기력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덕유산에서 보았던 그때 꽃 이름을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후로 나는 그 어디서도 그 꽃을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힘들지? 이제 다 왔다.”
좁은 샛길로 접어들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곧 산의 한 부분 같은 야트막한 초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인기척을 두어 번 하셨다. 그 소리에 마당에 엎드려 있던 아줌마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시곤 깜짝 반긴다.
“아이고 어서 와요. 용자 엄니! 꼭두새벽에 길을 나섰는가 벼. 이렇게 일찍 당도한 걸 보면.”
“별일 없었지요? 걱정이 되어 당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안녕하세요?”
지게에서 내린 나는 잠시 비틀거리다 아줌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냐, 어서 오너라. 근디 야는 누구여?”
“성님도 참, 애가 바로 우리 막내딸 순덕이잖아요. 따라오겠다고 어떻게나 떼를 쓰는지 할 수 없어 델꼬 왔당게요.”
“아, 그렇지, 이제 보니 니가 바로 그 순하디 순했던 순덕이로구나, 그새 이렇게 컸어? 어서 오거라.”
내 등을 토닥거리며 아줌마가 말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마루에 걸터앉으며 아버지가 재차 안부를 묻는다.
“하먼요. 나야 뭐 특별히 있을 일이 있간디요.”
이른 점심을 서둘러 먹은 뒤 밭으로 나가며 엄마가 말했다.
"덕이 너는 여기서 놀고 있거라. 나하고 아버지는 밭에 가서 일 보고 올 테니 알았지? 행여 산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 덕유산이 워낙 깊은 산이라 사방에 큰 짐승이 우글거리니까. 알았지?”
엄마는 산에 가지 말라고 거듭 당부를 했다. 생각 같아서는 엄마 아버지와 함께 밭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지게 위에 앉아 온 것도 일이라고 몹시 피곤하다. 때문에 나는 순순히 엄마 말에 따른다.
두 분이 떠난 뒤,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개떡을 먹고 있을 때였다. 덕석(멍석)에 널어놓은 것을 뒤적거리며 아줌마가 말했다.
“먼 길 오느라 고단 하지? 방에 따뜻하게 불 지펴놓았다. 졸리면 들어가서 한숨 푹 자거라.”
아닌 게 아니라 몹시 피곤하다. 나는 조느라 몇 번이나 들고 있던 개떡을 놓칠 뻔했는지 모른다. 못 이기는 체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약초가 가득하다. 아줌마가 방바닥에 널려있는 약초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베개와 삼베 이불을 내려놓는다. 방에 불을 지핀 것은 약초를 말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절절 끓는 방에 눕자마자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잠에서 깬 나는 낯선 방안 풍경에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잠시 내가 둠벵이에 왔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문에 붙어있는 손바닥만 한 유리에 얼굴을 바싹대고 밖을 살펴보았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방에서 나와 집을 둘러본다. 일자형 작은 초가엔 마루를 마주하고 두 개의 방이 나란히 있고, 부엌은 옆에 위치해 있다. 장터에 있는 우리 집보다 약간 작았으나 여러모로 엇비슷했다. 토방으로 내려선다. 텅 빈 외양간과 헛간을 차례로 둘러본다.
고요하리만치 텅 빈집은 너무나 적막하다. 신나는 일이 없을까 마당을 두리번거린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덕석 가득 널어놓은 더덕이었다.
이따금 엄마는 아버지가 산에서 캐온 더덕을 껍질을 벗겨 고추장에 발라 숯불에 구워주곤 하셨다. 양이 많지 않아 양껏 먹지는 못했지만 그 맛은 각별했다.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사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재빨리 멍석 위의 더덕 하나를 집어 들고 혹여 들킬세라 방으로 들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서있는 데 자꾸만 가슴이 쿵쾅거린다. 난생처음 도둑질을 한 것이다. 남의 물건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가지고 오면 안 된다는 말을 골백번도 더 하던 엄마의 말이 귓가에 커다랗게 울린다.
만약 엄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손목을 잘라버리겠다고 할 것이다. 와락 겁이 난다. 얼른 다시 갖다 놓을까? 그러나 너무나 아깝다. 갑자기 기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그건 누가 오기 전에 더덕을 후딱 먹어치워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더덕을 훔쳐 먹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설마 저 많은 더덕을 일일이 세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계획에 만족하며 그래도 미덥지 않아 문고리 옆에 붙어있는 색경에 얼굴을 붙이고 밖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고리를 안으로 걸었다. 다급한 마음에 들고 있던 더덕 껍질을 이빨로 대충 벗기고 덥석 베어 물었다.
그런데 더덕 맛이 이상하다. 전에 없이 너무 아리다.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있었다. 엄마와 아줌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덕아 정신이 드냐?”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 흐릿한 눈에 엄마와 아줌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고 이놈의 가시내 때문에 내가 미친다니까! 혹시 이런 일이 생길지 싶어 그렇게 집에 있으라고 하니까 기를 쓰고 따라오더니만, 그래 이런 일을 저지르려고 그랬냐, 응?”
엄마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있다.
너무나 졸려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팔다리도 꼼짝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더덕을 훔쳐 먹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큰일이다! 엄마의 말투로 미루어보아 엄마는 내가 더덕을 훔쳐 먹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결코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용자 엄니!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데, 참말 면목 없네요. 제발 덕분에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야가 이제 깨어났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맹감(청미래덩굴) 달인 물이 정말 효험이 있군요. 이렇게 깨어났으니까 별 탈이야 있겠는가요?”
아버지가 나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입을 강제로 벌리게 하고 맹감 달인 물을 수저로 연신 떠 먹이셨다. 그러나 내 의식은 깊고 깊은 나락 속으로 침잠해 버리고 말았다.
“가시나가 별나도 참말 별나다니까요. 세상에 뭐 먹을 게 없어서 그래 초오를 다 먹는단 말이여.”
“그래도 입안에 물고 있어 천만다행이지. 그냥 꿀꺽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꼴 난 팔 밭(화전 밭) 좀 부치려다가 생때같은 애만 잡을 뻔했잖아.”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이 모든 게 다 내 불찰이구만요. 어린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비상이나 진배없는 초오를 덕석에 잔뜩 널어놓고 집을 비웠으니,”
어렴풋이 어른들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정신을 찾았을 때, 내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마에 땀을 손으로 훔치며 간신히 일어나 앉는다.
“괜찮냐?”
“응, 아부지.”
“그럼 내가 누구냐?”
아버진 지금 두 살짜리 동생에게 해야 할 질문을 나한테 하고 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런 내 모습이 오히려 아버지는 초조하셨나 보다. 아버지가 내 양팔을 붙잡고 거세게 흔들며 거듭 묻는다.
“내가 누구냐니까?”
“아부지 왜 그래? 이거 놔. 팔 아프단 말이야,”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와락 나를 끌어안으셨다.
“그럼 됐다. 덕아! 이제 됐어.”
대체 뭐가 됐다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일을 대충 마무리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가 보이지 않더란다. 놀란 나머지 집 안팎을 샅샅이 찾아다니셨다. 그래도 보이지 않자 낙담을 한 어머니는 토방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마루 밑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내 고무신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내가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을 했다. 혹시 미더운 마음에 방문을 잡아당겨보니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놓았더란다. 문에 붙은 새경(방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해 문에 붙여놓은 손바닥만 한 유리를 일컬음)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희미하게 내가 방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엄마와 아버지는 창호지 문을 찢어 문고리를 열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한 입 베어 문 초오 뿌리를 여전히 손에 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는 것이다.
놋젓가락 나무는 투구꽃 혹은, 바 꽃, 그늘돌쩌귀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다년생 초본으로 높이 1m 내외, 깊은 산 숲 속에 자라며 꽃은 자주색으로, 투구의 관모처럼 생겼다.
놋젓가락 나무뿌리를 말린 것을 초오라고 부른다. 초오는 사극에서 나오는 사약의 원료인 독초이다. 그러나 초오는 독초이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힘이 나게 하는데 더할 수 없이 좋은 약초이기도 하다. 신경통, 관절염, 중풍, 당뇨병, 냉증 등에도 효험이 크다. 초오를 많이 먹으면 중독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조금씩 먹으면 기운이 세어지고 뱃속이 더워지며 위와 장, 간, 신장이 튼튼해진다. 너무 일찍 캐면 알이 없고 6-7월에 가장 알이 차며 8월이 되면 알이 빠져 버린다. 그런 까닭에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모처럼 해가 나자 아주머니가 놋젓가락 나무뿌리를 채취해서 말리려고 덕석에 널어놓았던 것이다.
“설사 그게 더덕이었다 치자, 정 먹고 싶으면 아줌마한테 먹고 싶다고 달라고 말을 해야지, 어디서 앙큼하게 그걸 몰래 훔쳐 먹을 생각을 다 했을까? 어디 한 번만 더 그랬다 봐라. 다신 그런 짓을 못하게 손모가지를 끊어 버리고 말 테니까.”
엄마의 말은 절대로 엄포가 아니다. 그 일을 나는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