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사람들이 들뜬 분위기 속에 그간 안부를 묻고, 상인들은 손님을 맞느라 부산하다. 이런 장터에 느닷없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왁자지껄하던 장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사람들이 눈을 멀뚱 거리며 곁에 있는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니, 대체 이게 뭔 소리래요?”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으레 장날이면 술에 취한 사람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싸우는 일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소리 나는 쪽으로 몰려갔다.
구경 중에서도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사람들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싸움 구경은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어떤 때는 무서워 손에 진땀이 날 때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신이 난다. 그런데 오늘 싸움을 재미있게 구경하기는 일찌감치 글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곳이 다름 아닌 바로 남원관이기 때문이다.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허겁지겁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남원관 집 울타리에 쭉 늘어서 있는 구경꾼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안을 살펴본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고 저걸 어째.”
“참말 별일이여. 오래 살다 보니 시상에 별구경을 다 하네 그려.”
“그나저나 저 제비 새끼들 불쌍혀서 어쩐 대요?”
나는 눈을 살며시 뜨고 그 징그럽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남원관 집은 신작로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울타리 너머로 집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그 끔찍한 일과는 무관하게 마당에는 달리아, 채송화, 분꽃 등이 방싯거린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아줌마 네 헛간이었다. 대들보에 꼬리를 칭칭 감은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목을 곧추세우고 긴 혀를 날름거리며 제비집 안의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참이었다. 어미 제비 한 쌍이 헛간 처마 끝을 오르내리며 울부짖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새끼 제비들은 고개를 내밀고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있다.
제천 댁 아줌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흰모시 한복으로 곱게 단장을 한 아줌마가 그 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미 한 마리를 잡아먹었는지 구렁이의 배가 볼록하다. 그러나 구렁이는 제비 새끼 한 마리로는 양이 차지 않는지 긴 혀를 날름거리며 새끼 제비를 노리고 있다.
“저 여편네 낯 빤대기 좀 봐요? 분으로 얼굴을 온통 칠갑을 했네. 오늘은 어떤 놈을 후려내 주머니를 탈탈 털려고.”
“근게 말이에요. 입술은 쥐새끼라도 잡아 처먹었나? 어째 저리 빨갛대요?”
아줌마들은 불쌍한 제비 새끼의 목숨보다, 술집 여자를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즐기고 있었다.
구경꾼 중에는 더러 남자들도 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곳이 말 많고 탈 많은 술집(남원관 집은 싸구려 대폿집이 아니라, 면소재지에서 드물게 기생도 두어 명 있었다) 인지라, 안성장터 인근에서 가장 예쁘다고 자타가 공인한 아줌마에게 호감을 살 절호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사이 죄 없는 제비 새끼 한 마리가 구렁이의 제물로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아줌마가 고무신을 벗어 구렁이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나 아줌마의 흰 고무신도 구렁이가 무서운 듯, 중간쯤에서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구경들만 하고 있지 말고 누가 좀 도와줘요.”
아줌마가 울타리 너머에 쭉 늘어선 사람들을 휘 둘러보며 마치 애원이라도 하는 듯 소리쳤다. 그러나 모여선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며 힐끔거릴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줌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을 하였다. 체념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 풀이 죽은 아줌마가 사람들 틈에서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줌마는 반색을 하며 손으로 나를 부르며 말했다.
“덕아, 너 얼른 가서 버버리 아저씨 좀 불러올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몸을 돌려 버버리 아저씨네 집을 향해 달려간다. 때마침 저만치 소꼴을 한 짐 가득 진 아저씨가 비척비척 걸어온다.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저씨의 소매를 붙잡고, 남원관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 큰일 났어. 남원관 집 아줌마가 아저씨 빨리 오래.”
버버리 아저씨는 남원관 집이라는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아저씨가 얼마나 빨리 내 달렸는지 모른다. 우리가 남원관 집에 당도했을 때 아저씨 지게에 가득했던 꼴은 고샅에 다 흘려버리고 반 지게도 남지 않았다.
아저씨의 나이는 스물여덟, 사람들은 소금식이란 이름보다 버버리로 즐겨 부른다. 사람들 말처럼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것 빼고는 아저씨는 똥도 버릴 것 없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아저씨는 안성 장터에서 가장 부자인 대성상회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 주인인 박 생원이 아저씨를 가상히 여겨 새경으로 받은 쌀을 장리 쌀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불린 돈으로 구입한 논과 밭이 결코 적지 않아 알부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터였다.
아저씨 어머니인 양악 댁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들의 혼사 문제 때문이었다. 먹고사는 것은 걱정 없다. 그런데 신랑이 벙어리인 데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다 보니 정상적인 여자를 데리고 오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아저씨에게 혼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마마를 앓아 얼굴이 살짝 얽은 이목리의 정 서방 댁 둘째 딸 분이, 황거름에 사는 약간 모자란 희분이 가 그런 경우였다.
두 번 다 여자 쪽에서는 아저씨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 두 사람을 모두 거절했다. 그러자 이목리 정 서방과, 황거름 희분이 부모는 적반하장 격으로 분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버버리 주제에 언감생심 제 놈이 감히, 우리 딸을 넘보길 어딜 넘봐. 달라고 사정을 하며 싹싹 빌어도 줄까 말까 한데.’ 라며 자신들의 제의가 일언지하에 거절된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도 하였다. 아무개가 버버리와 선을 보았는데 퇴짜를 맞았다는 소문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급기야 정 서방 댁 둘째 딸과 황거름에 이 서방 큰딸 희분이는 창피해서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살 수 없다며 어느 날 집을 떠나고 말았다.
“용자 엄니! 우리 금식이 내일 모래면 서른인데 이일을 어쩌면 좋대?”
그제 저녁에도 버버리 아저씨의 어머니인 양악 댁이 엄마에게 하소연하였다.
“금식이가 어디가 어때서요. 말이 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인물이 남만 못합니까? 그렇다고 먹고 살 전답이 없습니까? 다만 한 가지 말을 못 하는 것이 옥에 티이긴 하지만.”
엄마는 말끝을 흐리면서 양악 댁 아줌마 눈치를 슬쩍 살피고 나서 말을 이었다.
“왜? 요샌 중신이 안 들어와요?”
양악 댁 아줌마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중신이야 가끔 들어오지.”
“그럼 됐지 대체 뭐가 걱정인데요?”
“선이 암만 많이 들어오면 뭘 하는가? 당사자가 당최 볼 생각을 하지 않는데.”
“아니, 성님! 대체 그게 뭔 소리래요? 금식이가 볼 생각을 않는다니요?”
“용자 엄마는 말 날 자리가 아니라서 내가 하는 말인디, 금식이 그 자식이 내 참, 기가 막혀서.”
양악 댁 아줌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손사래를 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아니 됐네. 암 것도 아녀. 나, 그만 가 볼라네.”
“아따 성님도 참, 하실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한번 해 보세요,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면 병 생긴다니까요. 대체 뭔 말인데 성님답지 않게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요?”
엄마가 양악 댁 아줌마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양악 댁 아줌마는 기골이 여자답지 않고 장대하다. 5척 단신에 체구와 얼굴이 작고 아담한 엄마에 비해 키도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다. 얼굴 또한 남자처럼 넓적하고 코도 우뚝하고 눈도 부리부리하다. 버버리 아저씨의 잘 생긴 외모는 양약 댁을 고스란히 닮은 것이다. 양악 댁 아줌마는 못 이기는 체 다시 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자네도 아마 귀가 있은 게 소문은 들었을 거야.”
“성님도 참, 답답하게 그렇게 말을 빙빙 돌려 어렵게 하지 말고 무슨 말인지 속 시원히 털어놔 봐요.”
“우리 금식이가 남원관 댁 여자를 좋아한다는 얘기 말이여.”
엄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또 무슨 이야기라고, 성님도 참, 그거야 실없는 사람들이 금식이를 놀리느라 하는 말이지요.”
“아녀, 나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당게. 우리 금식이가 형제도 없이 외롭게 자라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원관 집 여자한테 잘해주는 것 갑다,라고. 근데 그게 아니더랑게. 그런 일 같으면 내가 걱정할 것이 뭐 있겠는가?”
“그럼, 고것이 참말이란 말입니까?”
양악 댁 아줌마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깜짝 놀란 엄마가 물었다.
“설마? 근디 성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데요?”
“금식이가 직접 그렇다고 한 게 내가 알지, 내가 무슨 수로 알았겠는가?”
“참말로 금식이가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에요?”
“그렇당게. 우리 금식이는 남원관 집 여자가 아니면 차라리 혼자 살면 살았지, 아무한테도 장가를 안 가겠다는 거여. 참, 그라고 이건 아무래도 태몽 같은디,”
“왜요,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었는가요?”
“하먼, 내가 어젯밤 집 채 만한 호랭이를 안 보았는가?”
“호랭이요?”
“그려,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디 갑자기 어흥! 하는 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리더랑게. 그러더니 집 채 만한 호랭이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나를 노려보고 있는디. 꿈속에서지만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란 생각에 사지가 벌벌 떨리지 뭐여, 그때 갑자기 호랭이가 내 품으로 확 달라 들지 않겠어. 깜짝 놀라 깨어본 게 꿈이여. 얼매나 노랬던 지 지금도 선 하당게. 어떤가, 태몽이 분명허지?”
“꿈으로 봐선 태몽이 분명헌디. 아직 장가도 안 간 금식이 태몽을 꾼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어디 좋은 자리서 중신이 들어온다는 꿈이 아닐까요?”
“참말로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엄마의 해몽에 양악 댁 아줌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양악 댁 아줌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안성 장터에 버버리 아저씨가 남원관집 아줌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남원관 집 아줌마는 아저씨의 그런 일방적인 구애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아저씨는 남원관집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올 만큼 관심이 대단하다. 아줌마가 누구와 언성이라도 높일 때면 득달같이 달려와 아줌마 역성을 들었고, 멀리서 아줌마 그림자만 얼씬거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도 어른들 공경 잘하고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아저씨는 유독 아줌마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소소한 체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때문에 짓궂은 장터 사람들은 아저씨를 놀리느라, 아줌마가 저기 쓰러져있다느니, 혹은 울고 있다며 놀리기 일쑤였다. 깜짝 놀란 아저씨가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곧 사람들이 자신을 놀리느라고 한 말인 줄 알고 씩 웃으며 돌아서서 하던 일을 계속할 따름이었다.
아저씨는 자신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절대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성 장터 사람들은 아저씨가 얼마나 힘이 장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사소한 일로 아저씨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스스로들 자제하고 삼갔다.
"금식이가 비록 말은 못 하는 버버리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당게. 남원관집 여자가 어디 보통 인물이여? 술집 여자라 그렇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만한 인물 이 안성 장터는 물론 무주군 안에서도 찾기 힘들걸.”
아무튼 내가 버버리 아저씨 뒤를 따라 남원관으로 달려갔을 때, 구렁이는 네 마리의 제비 새끼를 모두 잡아먹고 헛간 대들보에 감고 있던 몸을 풀고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잘 왔어. 저어기”
허겁지겁 남원관 집 마당으로 들어선 버버리 아저씨를 보고 아줌마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렁이를 가리켰다.
아줌마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아저씨의 순하디 순한 얼굴에 순간 야릇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것은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아줌마에게 자신의 남자다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표정의 아저씨가 왠지 섬뜩하기만 했다. 지난봄 박 진사네 무덤 앞에서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숨을 씩씩거리던 때가 다시금 떠올랐다.
아저씨가 땅으로 내려오는 구렁이 머리를 잽싸게 손으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먹이를 삼킨 포만감으로 천천히 기어가던 구렁이는 민첩하게 아저씨의 손을 피해 버렸다. 아저씨가 다시 구렁이 뒤를 쫓았지만 그런 아저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구렁이는 돌담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유유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아저씨는 한동안 구렁이가 들어간 돌담 곳곳을 가느다란 나무 꼬챙이로 찌르며 씩씩거렸다. 그러자, 다시 안 나올 줄 알았던 구렁이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뿔뿔이 흩어지던 사람들이 우르르 다시 울타리 곁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의 어깨를 툭 치면서 저것 좀 보라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장터 사람들은 물론 장을 보러 온 사람들 중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자들은 아저씨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남자들은 ‘아무리 얼굴이 잘 생기고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해? 말도 못 하는 버버리인데’‘ 겉으로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아저씨의 장부다운 기질과 용모에 저절로 움츠려 들었다.
여자들은 아저씨에 대한 동경과 아줌마에 대한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며 입을 삐죽거린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아저씨와 구렁이에게 쏠려있었다. 나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저씨와 구렁이의 숨 막힌 대결을 주시했다.
어느 순간 아저씨의 몸과 동시에 구렁이도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결은 너무나 싱겁게 끝이 났다. 아저씨의 듬직한 손에 목이 잡힌 채 버둥대는 구렁이를 볼 수 있었다.
“어이, 금식이! 옛날부터 집 구렁이는 집을 지켜주는 업이라네, 그냥 놔주게.”
“하먼 하먼, 그래야지. 제 갈 길로 가게 그냥 내비둬. 건드리면 큰일 난당게”
그러나 버버리 아저씨는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리품인 배가 볼록볼록 한 구렁이를 손에 쥐고서 대문 밖으로 휭 하니 나가 버렸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얼굴이 질린 아줌마는 마루에 털썩 주저 않았다. 잠시 후 어디서 그 말을 들었던지 엄마가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타났다.
“아니 동상, 구렁이가 새끼 제비를 몽땅 다 잡아먹었다는 게 참말 이어?”
“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줌마가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런, 그건 그렇고 그 구렁이 금식이가 잡았다며 금식이는 시방 어디 갔는가?”
“구렁이 잡아가지고 절로 나갔어, 엄마!”
그 말에 엄마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는가 싶더니 아줌마 곁에 털썩 주저 않으며 말했다.
“뭐시여, 금식이가 잡아갔어? 아이고 이를 어째, 동상! 큰일 났네. 자네 얼른 가서 그 구렁이 모셔오게.”
“구렁이를 모셔 오다니요?”
아줌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물었다.
“자네 시방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당게. 어서 금식이가 큰 일 내기 전에 그 구렁이를 얼른 모셔 와야 한다니께.”
“언니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당최 모르겠네요.”
“자네 참말 그걸 몰라서 이러는가?”
“네. 저는 무슨 말씀인지 참말 모르겠어요.”
“알았네. 그럼 자네는 암말 말고 쪼깨만 기다리게.”
잽싸게 몸을 돌려 뛸 듯이 걸어가는 엄마의 뒤를 나는 정신없이 쫓아갔다. 엄마와 내가 버버리 아저씨의 집 고샅으로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마침 버버리 아저씨가 지게에 있는 꼴을 비워놓고 빈 지게를 지고 터덜거리며 집에서 나오고 있다. 엄마가 버버리 아저씨 앞을 막아서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버버.”
아저씨가 엄마를 보고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금식이 니가 쪼께 전에 남원관 집 헛간에서 잡아온 그 구렁이 어쨌냐?”
엄마는 손으로 남원관 집을 가리키며 잡아온 구렁이를 어쨌냐고 손짓 발짓 온몸으로 물었다. 아저씨가 구렁이를 땅바닥에 내 팽개쳐 죽였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뭐시여, 그 영물을 그냥 죽였어? 에구 이 일을 장차 어쩐다냐.”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저씨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어버버?”
“아무리 시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말도 알아 못 알아듣는 자네를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어서 가서 하려던 일이나 하게.”
엄마는 체념을 한 듯 아저씨에게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며 손짓을 하셨다.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엄마와 나를 돌아다보고 또 돌아보더니 고샅을 벗어났다.
“엄마, 왜 그러는데?”
그때까지도 땅바닥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내가 물었다.
“너는 몰라도 돼. 시상에,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두 손으로 싹싹 빌어 제발 다시 들어가 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사람을 시켜 잡아 죽이기까지 했으니 장차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라고 그럴까? 에고 내 일도 아닌데 나도 모르것다.”
엄마가 체념한 듯 몸을 발딱 일으키더니 몸빼 바지에 묻은 흙을 손으로 탈탈 털었다. 아저씨가 아줌마네 업인 구렁이를 잡아 죽였다는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안성장터는 물론 면 전체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 사람만 모이면 구렁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말끝에 ‘금식이 그 사람 술집 여자 일에 공연히 끼어들어 업을 잡아 죽였으니 큰일 나지 않겠는가?’ 하는 비웃음 반, 걱정이 그 뒤를 따랐다.
그날 저녁 평상시처럼 엄마가 남원관 집에서 일어난 일을 빠뜨리지 않고 아버지에게 고한다.
“시상에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본다니께요. 가뜩이나 윗집 여자 몸도 좋지 않은데 업까지 덜컥 잡아 죽였으니 큰 일 아닌가요?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만. 몰라.”
장터에 계셨던 아버지도 그 소문을 못 들었을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싫은 내색 하지 않으신다. 이럴 때 보면 엄마는 영락없는 외삼촌과 너무나도 닮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는 아버지에게 그날 일어난 모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셨고 우리는 안성 장터에서 일어난 빠짐없이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버버리 아저씨와 많이 닮았다. 그러고 보니 생긴 모습과 키까지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버버리 아저씨는 말을 하지 못해 침묵할 뿐이지만, 아버지는 꼭 필요한 말만 한다는 점이다.
“아무 해코지도 안 한 구렁이를 죽일 것까지는 없었을 텐데, 아무튼 밥 먹는 자리에서 그런 흉측한 이야기 그만 하소.”
“엄마, 구렁이가 어째서 업이야?”
언니가 물었다.
“구렁이는 영물이여. 어떤 집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집에는 집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구렁이가 한 마리씩 있는데 사람들이 업이라도 부른다. 업은 보통 때에는 사람들 눈에 절대로 띠지 않아, 옛날부터 어른들 말이 있다. 그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형편이 기울어지려면 업이 먼저 알고 사람들 눈에 뜨인다고 안 혀냐?”
“그럼, 우리 집에도 구렁이가 살고 있겠네?”
“시방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를 돌봐 주시고 계시겠지.”
엄마의 그 말에 우리 형제의 얼굴은 우거지상이 되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구렁이가 숨어 지낼만한 장소로 지붕보다 좋은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을 잘 때, 구렁이가 방으로 슬그머니 기어 내려온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남원관 집처럼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겠네?”
벌레 씹은 표정이 된 오빠가 물었다.
“업은 절대 사람들 눈에 띠지 않는 법이여,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밥이나 먹거라.”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구렁이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