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한 줄기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민들레 홀씨가 불안한 듯 잠시 멈칫거린다. 그리고는 이내 미지의 세계를 향해 화려한 비상을 한다. 화분의 무게가 버겁기만 한 벌들의 날갯짓 소리로 어지럽다.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지럽다. 이내 나는 찔레 덤불로 시선을 돌린다.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한 떼의 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또 다른 벌들이 작은 꽃송이들을 흔들며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닌다. 그때마다 찔레꽃 송이들은 제풀에 자지러지며 진한 향기를 울컥울컥 토해놓는다.
자신들을 귀찮게 하는 벌들이 꽃들은 몹시 싫을 것이다. 찔레 가지에 가시가 있고 향기가 저토록 진한 것은 벌들을 쫓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찔레꽃의 방편은 전혀 소용이 없어 보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숨을 헐떡이며 오빠가 달려왔다. 오빠는 찔레 순 한 주먹을 내밀며 그만 집으로 돌아가잔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왜?”
오빠의 눈초리가 위로 치켜진다. 그건 오빠의 심사가 편치 못하다는 증거다.
“난 여기가 좋아. 쪼끔만 더 있다 가자. 오빠 응?”
“창수하고 약속했는데?”
오빠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하다.
“그럼 오빠 먼저 가, 나 여기 쪼금만 더 있다 갈게.”
“너 혼자 집까지 갈 수 있어?”
“그럼, 오빤, 내가 뭐 애긴가?”
“알았어. 그럼, 쪼금만 더 있다가 곧장 와야 된다, 알았지?”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영 못 미더운지 오빠는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쏜살같이 달려간다. 조금씩 멀어지던 오빠가 작은 점으로 가물거린다. 그러더니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텅 빈 들녘에 나 혼자 남았다. 아니, 벌과 나비, 그리고 바람과 자운영과 찔레꽃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으로 남은 것이다. 겨울에 비해 해가 많이 길어졌다. 하지만 서산에 걸린 짧은 해는 갈 길을 서두른다. 소를 몰고 논에서 나온 덕배 아버지는 개울물에 손과 발을 씻는다.
“거기 돌팍 위에 덕이 아니냐? 해거름이 다 되었는데 집에 안 가고, 너 거기서 시방 뭐 하고 있냐? 어른들 걱정하시게”
“오빠 기다려요,”
그곳에 잠시라도 더 머물 요량으로 거짓말을 한다. 소고삐를 잡고 논둑을 걸으면서 덕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오빠 애들하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 널 데리려 오는 거 잃어 뿌렸나 보다. 날 저물기 전에 후딱 일어나라. 아저씨랑 같이 가자.”
마지못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손에는 아까 오빠가 쥐어준 찔레 순이 고스란히 들려있다.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맞춰 덕배 아버지 뒤를 타박타박 걷는다. 논에서 개구리 합창소리가 들녘을 가득 메운다.
“덕이 너 몸이 안 좋다더니 이제 괜찮냐?”
논으로 들어가려는 소고삐를 힘껏 잡아당기며 덕배 아버지가 묻는다.
“네.”
너무나 아쉬워 다시 뒤를 돌아다본다. 찔레꽃이 만발한 들녘엔 여전히 벌들이 윙윙거린다. 날이 저물기 전에 벌들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끙끙 앓아야만 했다. 밤새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운 엄마가 날이 밝기 무섭게 당골 네 집으로 달려갔다. 곧 당골 네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씀하셨다.
“시상에 애가 다 죽게 생겼네, 에이고 얘야! 정신이 드냐?.”
당골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내 머리를 짚어보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는 우선 급한 대로 잠 밥을 먹어야 한단다. 당 골에는 쌀을 가득 담은 사발을 흰 천으로 감쌌다. 한 손에는 쌀이 든 흰천으로 감싼 사발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부엌칼을 들었다. 그리고 그 칼을 내 몸 곳곳을 베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그만 새파랗게 질려 자지러진다.
“내가 정성껏 치성을 드렸은 게 한숨 푹 자고 나면 좀 뜸할 거여. 만에 하나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잠 밥을 한 번 더 먹이던가.”
나는 앉아있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진다. 정신이 가물거린다. 그러나 잠 밥을 한 번 더 먹이라는 말만은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는 잠 밥 먹이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다.
당골네 말처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불덩이 같던 몸의 열은 거짓말처럼 내렸다. 그렇다고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날 밤 엄마는 당골 네가 했던 것처럼 밥공기에 쌀을 가득 담고 그것을 흰 천으로 감싸 내 몸 곳곳을 쓰다듬었다.
“안성장터에 사는 일곱 살 난 경주 이가 덕이의 사대 삭신 64마디가 모두 저리고 아픈데 강남서 나온 잠 밥 각시가 영금 코 기엄하다 해서 이렇게 불러 먹이고 웨 먹이면 다 시원하고 개운하고 은으로 세수하고 분으로 도금한 듯 그저 앉았다 섰다 거짓말 말고 진 놈 먹고 마른 놈 가지고 오든 길로 썩 물러 가렸다. 다 시원하고 개운하게 물러 가렸다.”
엄마의 사설은 당골 네에 비해 어설프긴 하지만 훨씬 더 절실하고 간절하다. 우리들 몸이 안 좋으면 엄마는 일단 잠밥부터 먹인다. 우습게도 그날 이후 나는 마루에 앉아 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봄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덩달아 농사일도 바빠졌다.
엄마와 아버지는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오늘은 우리 집에 모를 심는 날이다. 모를 심는 날은 잔칫날이나 다름이 없다. 명절 때나 생일날 빼고 유일하게 흰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아침 일찍 논에 나가 모를 찌고 내느라 여념이 없다. 엄마를 비롯한 아줌마들은 논에 내갈 새참 준비로 분주하다. 오늘같이 큰일이 있는 날은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 아침을 일찍 먹고 오전 10시쯤 가벼운 음식으로 새참을 먹고, 점심 식사 후, 3-4시가 되면 또다시 오후 새참을 먹는다.
팥을 넣은 흰쌀밥이 가마솥에서 끓고 있다. 마당에 임시로 내 건 가마솥에는 돼지고기와 두부를 듬뿍 넣은 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마당 한쪽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돼지기름으로 애호박과 부추로 전을 부친다.
논둑에 퍼질러 앉아 바가지에 담아 먹는 밥은 기가 막히다. 아버지는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락을 바라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봄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실거리던 나도 서서히 기력이 회복되었다. 안성장터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 만큼 부지런한 엄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물동이를 이고 샘으로 달려가 물을 길어오셨다. 그리고 밥을 안친 뒤 우리를 깨웠다. 엄마는 우리가 늦게까지 누워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가 뜨기 전에는 일어나 있어야 한다..
“여태 안 인 나고 뭐들 하고 자빠졌나.”
엄마의 말에 후다닥 일어난 언니가 투덜거리면서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홱 잡아당긴다. 그 바람에 나는 방구석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너무나 아프다. 소리를 냅다 지르며 일어나 앉아 언니를 노려본다.
“그렇게 째려볼 것 없네, 빨랑 세수나 하고 와. 그러고 있다가 엄마한테 혼나지 말고.”
차곡차곡 개킨 이불을 농 위에 올려놓으면서 언니는 말했다. 방안에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내 소원은 아침 해가 뜨는 것과 무관하게 실컷 누워있는 것이다. 언니는 방안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베개를 농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때까지 눈곱을 쥐어뜯으며 앉아 있는 나를 빗자루로 밀며 언니가 말했다.
“비껴! 방 쓸게.”
“알았어! 인 나면 될 것 아냐?”
언니에게 눈을 찢어져라 흘기며 방을 나서던 나는 그만 문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어찌나 아픈지 나는 이마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이마가 순식간에 혹 하나가 생겼다.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 분명하지만 나는 언니를 잔뜩 째려보면서 악을 쓰듯 소리친다.
“여기 좀 봐, 난봉났잖아!”
“지가 잘못해서 다쳤으면서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러냐? 별꼴이야,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까딱 잘못해서 눈이라도 부딪쳤어봐. 여자 애꾸가 될 뻔했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언니는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프지만 참아야 한다. 언니한테 달려든다는 것은 불 섶에 나뭇짐을 지고 뛰어드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마루로 나오며 언니에게 지지 않고 한 마디 한다.
“있다가 아버지한테 이를 거야.”
“일러라 찔러라. 하나도 겁 안 난다.”
언니가 혀를 길게 내밀고 목을 길게 내밀며 끝까지 약을 올린다. 때마침 아버지가 깔을 한 짐 가득 지고 삽짝 안으로 들어서신다.
“인제 인 났냐?”
“아부지! 나 여기 다쳤어. 난봉났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부풀어 오른 이마를 가리켰다. 지게를 한쪽으로 기울여 꼴을 비우면서 아버지는 깜짝 놀란다.
“아니 우리 예쁜 딸이 어쩌다 그랬어? 조심하지 않고. 어디 보자. 어디를 얼마나 다쳤나.”
아버지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치고 이마를 살펴보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남산만 한 난봉이 났네. 그래 어쩌다 그랬어? 조심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다가 방문 모서리에 이렇게 딱 부딪쳤어.”
방을 훔친 걸레를 들고 방에서 나온 언니가 아버지와 나를 슬쩍 바라본다. 조금 전에 아버지에게 이른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나는 그런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내가 다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조심하지 않고. 이리 오거라. 아버지가 얼른 낳게 호 불어 줄게.”
아버지가 내 이마에 입을 대고 입김을 호 불어주신다.
“이제 됐다. 내가 빨리 나으라고 약으로 불어주었으니까 금세 나을 거다. 어서 도랑에 가서 세수나 깨끗이 하고 오거라.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배가 출출하구나.”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보니 날이 꾸물꾸물한 것이 금방이라도 빗줄기가 쏟아질 것만 같다.
일찍 일어나는 날이나 맑은 날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대정리 큰 냇가에서 세수를 한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집 옆 작은 도랑에서 세수를 한다. 비단 세수뿐이 아니다. 언니가 자잘한 빨래나 걸레를 빠는 곳도, 또 푸성귀를 씻는 곳도 바로 집 옆에 있는 작은 도랑이다.
도랑은 어제 내린 비로 가득하고 졸졸졸 물소리까지 경쾌하다. 누군가 아침 일찍 꼴을 베었는지 엊저녁까지도 무성하던 풀들은 단정히 머리를 깎고 있다.
도랑 가에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오빠가 요란스럽게 세수를 하고 있다. 나는 오빠의 세수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덕아! 아부지 시장하시다고 안 하데, 해찰 그만하고 얼른 낯이나 씻어. 아무렇게나 대강대강 씻지 말고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빡빡 문질러 깨끗이 씻어.”
언니가 내 등을 툭 치며 말한다.
“알았어.”
나는 고무신을 신은 채 도랑 속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갔다. 두 손 가득 도랑물을 퍼 올려 언니 말처럼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고 또 씻는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저절로 신이 난다. 세수를 마치고 막 허리를 펴려는 순간 소금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얼른 잡으려고 하였으나 소금쟁이는 내 굼뜬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벌써 저만큼 달아나 버렸다.
모내기를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논에는 짙푸른 나락이 내 종아리에 육박할 만큼 부쩍 자랐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서둔 탓도 있지만 오늘은 장날이다. 때문에 부지런한 외삼촌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말과 되를 옆구리에 낀 외삼촌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누님! 나 왔어요.”
우리는 차례대로 외삼촌을 반기며 아침인사를 건넨다.
“동상, 어서 오게. 그래 아침은 먹었는가?”
“시방이 몇 신데 여태 아침을 안 먹었는가요. 나는 벌써 아침 먹고 되재 가서 일을 보고 오는 참인데.”
짐을 마루에 내려놓으며 외삼촌이 말했다.
“아욱국이 시원한데 한 술 더 뜨지 그러나? 아침 일찍 먹고 되재까지 다녀왔으면 배가 다 꺼졌지 그게 여태 남아 있겠는가?.”
외삼촌이 밥상을 둘러보았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먹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쪼끔 출출하긴 하네요. 장날이라 점심을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한술 가락만 더 먹어볼까?”
“그려, 이리 와 앉어.”
엄마가 수저 한 벌을 상에 올려놓았다.
“순자야, 뭐하냐? 언능 정지(부엌)에 가서 살강 위에 밥 퍼놓은 소쿠리 하고 국 한 대접 퍼 오지 않고.”
“쬐끄매만 퍼 와.”
외삼촌이 상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나는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섰다. 비로 인해 지난번 장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가 밥상을 물리기도 전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하나 둘 집안으로 들이닥친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한낮의 땡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장을 보기 전 장터 초입에 있는 우리 집부터 들른다. 외삼촌이 우리 집을 임시점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팔려고 가지고 온 쌀이나 보리를 비롯해 콩과 팥 등의 잡곡의 흥정이 우리 집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두툼한 전대를 배에 두른 외삼촌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쌀과 보리를 되는 동안, 엄마는 쌀자루를 벌리거나 돈을 받기도 했다.
“무수 씨를 쪼게만 심었드니 지난 비에 모두 씻겨 떠내려갔는지 싹이 하나도 안 났당게. 아무래도 씨를 다시 심어야 될 것 같네요. 박 생원 공고리에 들리면 무수 씨 쬐게 더 갖다 줘요. 이거 제사 때 쓸려고 아끼고 아낀 팥 인디, 값이나 잘 좀 쳐줘요.”
모시 적삼으로 한껏 멋을 낸 할머니가 머리에 있던 자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찌나 꽉 묶었던지 외삼촌은 이빨까지 동원해 어렵사리 자루 주둥이를 끌렀다. 붉은팥이 팥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제사 지낼라고 둔 것을 팔면 제사는 뭘 가지고 지낸 당가요?”
팥을 쥐고 세밀히 살펴보며 외삼촌이 물었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게 생겼으니 별 수 있는가요?”
할머니가 긴 한숨을 내 쉬시며 말씀하신다.
“참말로 팥이 좋고만요. 세 되에서 쬐끔 빠지겠는데요?”
“제사 때 쓸라고 역부로 좋은 것만 골라 놨당 게 그러네. 아무튼 박 생원! 값이나 잘 쳐서 줘요.”
“몇 되나 되는지 한 번 되어 봅시다.”
외삼촌이 자루에 있는 팥을 멍석에 쏟아부었다. 그런 뒤 되에 수북하게 담더니 둥근 막대기로 되 윗부분을 깎아내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내 눈대중이 틀림없지요. 큰되로 하나 작은되로 하나 합해서 세 되네요.”
“하먼, 박 생원 눈이 저울이나 진배없지. 그럼 모두 얼마치나 되는가?”
외삼촌과 할머니의 흥정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담벼락에 기대서서 오가는 사람들 구경에 나는 여념이 없다. 생긴 모습도 행색도 걸음걸이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어쩌다 나를 알아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아는 체 하는 어른들을 만나는 일은 더더욱 신이 난다.
“덕이, 그 동안 못 본새 참말 많이 컸구나. 이따 들리마.”
그 들이 누구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