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언니는 요즘 학교 갈 때마다 옷차림에 부쩍 신경을 쓴다. 한쪽 면이 허옇게 변해 잘 보이지도 않는 색경(거울)을 날 보고 들고 있으란다. 그런 뒤 색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왜 그러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시쳇말로 언니는 요새 봄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이다. 그런 언니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여자와 접시는 밖으로 내돌리면 깨지기 마련이고, 또 여자와 무는 바람이 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던 엄마의 말 때문이다.
귀밑까지 단발로 싹둑 자른 언니의 숱 많은 머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깡똥해 보인다. 소매 없는 긴 검정 원피스에 흰 블라우스를 곱게 받쳐 입은 언니는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해 보인다.
“순자 너는 나물 뜯으러 간대며 그 옷 그냥 입고 갈래?”
나물바구니를 들고 한껏 모양을 낸 언니를 보고 이순 언니가 불쑥 내던진 말이었다. 순간 언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순 언니를 아래위로 한번 째려본 언니가 말했다.
“이 옷이 어때서?”
눈치 없는 이순 언니는 언니의 원피스 자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치마가 이렇게 치렁치렁한데 땅바닥에 치마를 끄시고 다닐래?”
이순 언니의 거침없는 말에 나는 얼른 언니를 본다. 그런데 언니가 이순 언니 뜻에 동의했다.
“하긴 그래. 아무래도 치마를 입고 가면 나물 뜯을 때 거추장스러울 거야. 잠깐만 기다려. 내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게.”
바지로 갈아입고 나온 언니를 따라 들로 나선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겨울의 흔적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햇볕은 마냥 따뜻하고 아지랑이는 하늘거리며 승천에 승천을 거듭하고 있다.
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벼 그루터기가 박힌 논을 지나친다. 짙푸른 자운영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논둑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언니가 멈칫거리면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촐랑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흘낏 돌아보며 눈을 끔쩍거린다.
언니가 왜 그러는지 잘 안다. 오늘 아침 자운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말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오늘 아침 새벽일이다.
“아니 도대체 어떤 썩을 년의 손모가지가 애써 키워 논 자운영을 왕창 다 비어 갔다냐? 손모가지가 썩어 문드러져서 뒈질 년, 어느 년인지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 두 번 다시 그런 짓 못하게 손모가지를 작신 분질러 놓고 말팅게.”
장터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악담을 퍼붓는 사람의 쉰 목소리에 쇳소리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다. 식전 댓바람의 고요를 흩어버린 쌍소리에 장터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소리 나는 논 쪽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 나와 오빠는 울타리 너머가 보이지 않아 세수하러 가는 척 도랑으로 달려 나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성상회 안주인이었다. 두 손을 허리에 떡 짚고 서서 사람들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떠드는 것이다. 요즘 들어 대성상회 안 주인의 악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잦아졌다. 사람들 머리가 슬그머니 하나둘 울타리에서 사라졌다.
안성장터에서 양식 걱정 없이 사는 집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쌀밥은커녕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인 시절이었다. 더구나 보릿고개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양식이 떨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보리가 수확하려면 두어 달은 족히 더 기다려야 한다. 나물이라도 흔하면 다행이지만 아직은 철이 이르다. 그런데 장터 바로 옆 넓은 논 가득 짙푸른 자운영이 넘실거린다. 사람들 시선이 그리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세상은 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도 있다. 대성상회는 후자에 속했다. 퇴비로 사용하려고 심어놓은 자운영을 몰래 훔쳐 가는 집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아침이면 논은 마치 쥐가 뜯어먹은 것처럼 보기 흉하다. 논 주인은 자운영을 몰래 훔쳐 가는 사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면 며칠 동안은 잠잠해진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곤 하였다. 장터 사람들 대부분은 자운영을 훔친 공범이었다. 양식이 떨어진 사람은 죽이라도 끓여 먹기 위해, 그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은 야들야들한 자운영 나물 맛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운영 나물이 밥상에 보란 듯이 올라온 것이다. 그건 엄마가 어젯밤에 자운영을 몰래 훔쳐 왔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자운영은 안성장터에 오직 대성상회 논에만 있기 때문이다.
자운영 나물을 보는 아버지와 오빠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엄마는 밥그릇에 얼굴을 묻고 아버지와 오빠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하얀 접시에 도도하게 올라앉은 자운영 나물은 우리 여섯 식구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말없이 그저 수저만 바쁘게 움직인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불안하다. 이럴 땐 남동생이라도 깨어 웃고 보채면 이 어색한 분위기가 많이 가셔질 것이다. 꿈나라에 빠진 남동생은 일어날 줄 모른다.
아버지가 헛기침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그러더니 아버지 앞에 놓인 자운영 나물 접시를 거칠게 밀어 버린다. 훔쳐 온 것은 먹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시였다. 오빠 역시 자신의 앞에 떠밀려온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버렸다.
“차라리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애꿎은 접시는 왜 밀고 그래요?”
엄마는 화를 버럭 내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린다.
“사람도 참, 밥 먹다 말고 어디 가는 거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가 물었다.
“숭늉 떠 올라고 정지에 가요. 왜요?”
평소 숭늉은 언니의 일이다. 불을 지펴 가마솥에 하는 밥은 누룽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밥을 푼 다음 적당히 물을 부어놓으면 밥을 얼추 다 먹어갈 때쯤 아궁이에 남은 열기로 먹기 좋은 상태로 끓어있다.
아버지가 밥을 그대로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와중에서도 언니와 나는 아버지가 고스란히 남긴 쌀밥에 눈독을 들인다. 우리가 맘껏 먹는 날은 매우 드물다. 손이 저울과 같이 정확한 엄마가 약간 부족하다 싶게 밥을 짓기 때문이다.
물에 불린 보리를 확독에 갈아 아시(슬쩍 한번 삶는 것을 말한다.) 삶는다. 이렇게 삶은 보리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쌀이나 잡곡을 얹어 밥을 짓는다. 위에 얹힌 쌀은 아버지와 오빠의 몫이다. 우리 세 모녀는 거의 꽁보리밥과 다름없는 밥을 먹어야만 했다.
엄마가 숭늉을 들고 돌아왔을 때, 고스란히 밥을 남긴 아버지는 이미 출타를 하신 뒤였다. 오빠 역시 밥을 절반도 더 남기고 책가방을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왜, 배부르게 더 먹지?”
하늘같이 여기는 두 남자가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엄마는 심사가 편치 않다.
“배불러.”
“엄마가 눌은밥 긁어왔다. 이거라도 따습게 더 먹고 가거라.”
엄마는 오빠의 수저를 집어 들며 다정하게 말한다. 오빠는 대꾸도 없이 마루로 나간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오빠의 소리.
“학교 댕겨 올게요.”
이래저래 몹시 속이 상한 엄마는 자운영 나물 접시를 들었다 거칠게 내려놓으며 푸념을 한다.
“그 썩어 죽을 놈의 여편네, 그깟 자운영 쪼께 비어왔다고 식전 댓바람부터 갖은 악담을 다 퍼붓더니, 내 새끼 아침도 굶고 학교 가게 만드네.”
“엄만, 그러니까 왜 남의 것을 몰래 비어 오고 그래?”
그 말에 엄마의 독기 서린 눈초리가 언니를 향했다.
“가시내가 터진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네. 그래 니 동생 양호가 요새 통 입맛이 없어 끼니때마다 젓가락을 들고 깨작거리는 걸 보고도 시방 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작년에 보니께 양호가 자운영 나물을 잘 먹던 것이 생각나 엊저녁 늦게 쪼깨 아주 쪼께 비어 왔는디, 암만 생각해도 참 요상하단 말이여.”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상 하긴 뭐가 요상 해?”
숭늉 대접을 들며 언니가 물었다.
“나는 분명히 아무 표시도 안 나게 한쪽 구석 데기에서 쪼끔만 속아 왔단 말이여, 근디 아까 보니께 논 가장자리 한쪽이 낫으로 빈 것처럼 휭 하더라니까. 어떤 미련한 인간이 그렇게 멍청하게 비어 갔는지 몰라. 나 여기 도둑질해가요! 차라리 소리를 지르지. 그 여편네 화낼 만도 하당께. 내가 주인이라도 가만 안 있었을 거여. 오나가나 사람 멍청한 것들이 공연히 애먼 사람들까지 싸잡아 욕먹게 한당게.”
아무도 먹지 않은 자운영 나물은 뜻밖에도 내 차지가 되었다. 뜻하지 않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자운영을 똑바로 보기 민망해 딴 곳을 바라보며 걷는다. 갑자기 이순 언니가 사방을 휘휘 둘러보더니 언니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린다. 언니의 가뜩이나 큰 눈이 놀란 토끼 눈처럼 더더욱 커진다.
“뭐시여? 긍게 너그 집 아침에 자운영 나물을 먹었다고?”
언니가 일부러 소리를 높인 것은 나 보고 들으라는 것이다. 이순 언니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언니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야,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 어떻게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이순이 너네 시방 큰일 났다. 그래서 오늘 새벽 찬호 엄마가 그 난리를 쳤었구나!”
“그게 참말이냐?”
하기야, 샛담에 사는 이순 언니네 집까지 그 소리가 들렸을 리 만무하다. 그거 참 잘 되었다는 듯 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오늘 새벽 찬호 엄마가 자운영을 비어 간 사람 잡기만 하면 손모가지를 작신 분질러 버린다고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우리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다니까.”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자운영 나물 반찬하고 아침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데. 어쩐다냐? 근데, 순자야! 찬호네 엄마가 훔쳐 간 사람 잡으면 참말로 손목을 분지를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언니를 빤히 바라보는 이순 언니의 큰 얼굴이 요즘 들어 더 커진 것 같다.
“걱정 마. 내가 안 이를 테니까. 그 대신,”
이순 언니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언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대신 이순 언니가 뜯은 나물의 절반을 언니에게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왜냐면 지금부터 자운영을 몰래 훔쳐간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니라 이순 엄마이기 때문이다.
봄바람이 살랑 불어오자 자운영은 고운 물결이 되어 일렁인다. 오늘따라 넘실거리는 자운영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 3부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