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3회 봄날의 비밀

장편소설 /

by 가야

3회 봄날의 비밀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노루처럼 경쾌하게 뛰어가는 언니의 노랫소리가 드높다. 언니 소쿠리까지 두 개나 옆구리에 낀 이순 언니가 뒤뚱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며칠 전만 해도 간혹 눈에 띄던 봄나물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 밀고 있다. 두 언니는 흩어져 나물을 뜯느라 여념이 없다. 무슨 일을 하던지 욕심 많은 언니는 이순 언니에 비해 곱절은 더 해낸다. 보나 마나 오늘도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이순 언니는 오늘 뜯은 나물의 반을 언니에게 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꽃다지, 돌나물, 냉이, 돌미나리 등 봄나물의 종류는 많고도 많다. 엄마는 어린 쑥을 가장 좋아한다. 쑥은 쓰임새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물을 뜯는 두 언니 곁에서 노는 것도 시들하다. 내가 아는 나물을 뜯어 언니의 소쿠리에 담기도 한다. 봄 가뭄에 바싹 말라붙은 도랑 둑 덤불 속에 웃자라 있는 쑥을 우두둑 쥐어뜯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눈부신 삼월의 하늘을,


나는 어느새 도랑 속에 들어가 나른한 봄기운에 취해버리고 만다. 알고 있는 노래란 노래를 돌아가며 한 번씩 흥얼거리고 쎄쎄쎄와 소꿉놀이도 혼자 해지만, 그것도 이내 지루해졌다.


“언니!”


앉았던 곳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본다. 언니가 보이지 않는다. 목을 길게 늘어뜨려 큰소리로 다시 한번 언니를 불렀다. 역시 대답이 없다. 나물을 뜯느라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나? 노파심에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언니를 불러본다. 언니의 대답 대신 흙먼지를 잔뜩 머금은 봄바람만 휭 하니 불어온다. 눈에 티가 들어갈까 봐 재빨리 도랑으로 주저앉는다. 혹시 언니가 내가 집에 간 줄 알고 가버린 것은 아닐까? 까치발을 짚고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두 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와락 두려운 생각이 든다. 허둥대며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간신히 내 키보다도 더 깊은 도랑에서 올라선다. 목이 터져라 언니를 부른다 하지만 내 공허한 외침은 아지랑이 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사방으로 뛰어다녀본다. 하지만 두 언니는 흔적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뻗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한참 울다가 문득 산짐승들이 사람 소리를 듣고 산에서 내려온다던 엄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화들짝 놀라며 나는 울음을 멈추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두 언니를 찾기야 한다. 찔레나무가 있는 언덕에 이르렀다. 덤불 사이로 쑥이 꽤 웃자라 있다. 찔레 덤불 속에 있는 쑥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연하다. 손톱으로 쑥을 뜯으면서 찔레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 조심을 한다. 가만히 보니 앙상한 찔레 가지 끝마다 팥알만 한 새순을 잔뜩 움켜쥐고 있다. 나는 이제 언니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쑥이며, 달래 등, 내가 아는 봄나물을 보이는 대로 우두둑 쥐어뜯어 손에 움켜쥔다. 어느새 단지봉 중턱에 다다랐다.


다복솔이 우거진 곳에 이르렀다. 저만큼쯤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비로소 언니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만 버려두고 간 두 언니에게 앙갚음을 해 주어기로 마음먹었다.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이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간다. 박 진사네 묘 가까이 간다는 것이 꺼림칙 하지만 언니들이 그곳에 있기에 두렵지 않다. 무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커다란 봉분 뒤로 몸을 바싹 붙이고 숨을 죽인다. 그런 내 낌새를 눈치라도 챈 듯 조금 전까지 들려오던 말소리가 뚝 끊겼다.


살그머니 앞으로 나가 두 언니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나는 예상외의 사태에 재빨리 다시 몸을 숨겨야만 했다.

무덤 앞에 있는 사람은 언니가 아니었다.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어 무덤 앞을 바라본다. 무덤 앞에 있는 사람은 버버리 아저씨였다. 버버리 아저씨라는 사실에 용수철처럼 달려가려던 나는 또 한 번 흠칫 놀라며 몸을 숨겨야 했다.


천만뜻밖에 버버리 아저씨 혼자가 아니었다. 한 짐 가득한 나무 지게를 무덤 옆에 바쳐놓고, 따사로운 봄볕이 참을 수가 없었던지 아저씨는 상석 위에 윗저고리를 훌렁 벗어 내던져놓았다.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버버리 아저씨는 털이 듬성듬성한 앞가슴을 훤히 드러내 놓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다. 그 옆에 치마를 마치 요처럼 깔고, 때가 꼬질꼬질한 적삼 고름을 풀어헤쳐 젖가슴이 훤히 드러난 여자가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다.


나무를 다 했으면 얼른 집으로 돌아갈 것이지, 왜 버버리 아저씨는 웃통까지 벗어젖히고 남의 무덤 앞에 앉아 씩씩거리고 있는 것일까? 버버리 아저씨는 힘이 들어 잠시 쉰다고 하자, 그럼 해괴망측한 행색으로 남의 누워있는 저 여자는? 내 작은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버버리 아저씨는 지금 화가 몹시 나 있다는 것이다. 평소 만년 가득 웃음 띤 아저씨가 마치 성난 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생소하다. 내 모습을 아저씨에게 들키고 싶지가 않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살그머니 몸을 돌려 막 걸음을 옮기려 바로 그때였다. 여자의 목소리가 나를 붙든다.


“배고파. 밥 줘?”


여자가 부스스 일어나면서 버버리 아저씨 팔을 흔들었다. 그 바람에 아줌마의 커다란 젖이 마구 흔들린다.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두 눈까지 질끈 감는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손을 내린다. 혹여 두 사람에게 들킬까 봐 몸을 더 깊숙이 숙이고 그 여자가 누구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소한 얼굴이다.


어쨌든 그날 나는 한참을 헤맨 끝에 가까스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욕심 많은 언니의 소쿠리는 그 귀한 달래가 수북하다. 달래를 캘 욕심으로 언니는 산속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엄마가 기뻐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달래는 좀처럼 캐기 힘든 귀한 봄나물이었으므로.


그날 저녁 나는 박 진사네 무덤 앞에서 버버리 아저씨를 보았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광경은 내 기억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다 길에서 버버리 아저씨를 만나기라도 하면 그때 그 일이 생각나 화들짝 놀라며 슬금슬금 도망을 친다. 그러나 아저씨는 나를 보기만 하면 금세 환한 표정으로 반갑다며 어버버버 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행여 참꽃(진달래꽃) 따먹는다고 혼자 산에 가지 마라. 문둥이가 잡아 갈팅게. 문둥병 특효약이 애들이라고 하는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알았지?”


엄마는 누누이 강조를 하였지만 잠시라도 짬이 나면 우리는 참꽃을 따러 단지봉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듯 참꽃 가지를 들고 의기양양 돌아오곤 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사월 어느 날. 철쭉에게 자리를 빼앗긴 참꽃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뒤뜰 장독대 옆 자두와 살구나무 가지엔 밤새 함박눈이라도 퍼부은 듯 온통 새하얗다. 하지만 자두와 살구꽃은 먹을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그 꽃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대신 좋은 간식거리인 찔레나무를 좋아했다. 찔레꽃 향기를 단 한 번이라도 맡아본 사람은 그 진하고 은은한 향기에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올망졸망 새하얀 찔레꽃이 앞 다투어 하나둘 피어날 때면 꿀을 따느라 분주한 벌들 못지않게 덩달아 우리도 바빠진다. 삐죽이 솟아난 찔레의 새순 때문이었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으로 완연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밖에 나가 노는 날보다 앓아눕는 날이 많아졌다. 내 몸 안에 있던 모든 기운은 아지랑이와 함께 하늘로 승천을 했는지 온 몸이 나른하고 자꾸만 눈이 감긴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면서 춥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것보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따사로운 봄볕을 쬐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따스한 봄볕에 황홀해진 나는 어느새 꿈속을 헤맨다. 꿈속의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기도, 때론 선녀가 되기도 한다. 그 꿈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두 시간을 넘어, 한나절을 지속할 때도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면 간신히 깨어난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겨우 보고 나는 병든 병아리처럼 곧추 쓰러져 달콤하고 황홀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봄볕이 너무나도 좋았다. 햇볕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 볕에 흠뻑 취했는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내 몸은 여위어갔다.


“양호야! 덕이가 병든 병아리처럼 허구 헌 날 비실거리고 잠만 퍼 자고 있으니 속상해 딱 죽겠다. 오늘은 아무리 공부가 바쁘더라도 조금 일찍 와 느 동생 데리고 들에 나가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너라.”


엄마의 당부를 잊지 않았던지 오빠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다. 오빠의 따스한 손에 이끌려 도랑을 건넌다. 그동안 못 본 사이 들녘은 봄빛이 완연하다.


마냥 무르익은 봄바람에 드넓은 대성상회 논은 온통 자운영 꽃이 보랏빛 물결처럼 일렁인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가득 대어놓은 논도 꽤 많다. 저만큼 쯤 바지를 둥둥 걷어 부친 덕배 아버지가 소를 몰고 써레질을 하고 있다.


“덕이 너는 허구 헌 날 잠만 자냐? 엄마하고 아부지 걱정하시는데.”


“안 잘라고 해도 자꾸만 졸려.”


걸음을 걸으면서도 자꾸만 하품이 쏟아진다.


“그렇게 맨 날 잠만 자니까 몸이 비쩍 마르고 기운이 없지.”


이럴 때 보면 오빠가 엄마 같다.


“이제부턴 낮에는 잠이 와도 자지 말고 밤에만 자야 한다. 알았지?”


공연히 오빠에게 미안하다.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찔레꽃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은데도 불구하고 다른 꽃보다 벌이 유난히 많이 날아든다. 윙윙거리는 벌에게 쐴까 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서 있다. 오빠가 껍질을 벗긴 찔레 순을 내민다.


벌들의 날갯짓소리와 따뜻한 봄볕, 찔레꽃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자 오빠가 재빨리 나를 부축하며 묻는다.


“왜 또 어지러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웃어 보인다. 오빠가 사방을 살피더니 가까이 있는 넓적한 바위를 가리켰다.


“옳지! 너 저기 가서 잠깐 앉아 있어라.”


오빠는 못 미더운지 내 손을 잡고 바위 위까지 데려갔다.


“여기에 꼼짝 말고 앉아 있어.”


허리를 구부리고 새순을 찾는 오빠는 연신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내 걱정을 하는 오빠가 안타깝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빠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빠의 표정이 이내 환해지더니 두 손을 높이 흔들며 답례를 해준다.


온종일 햇볕을 쬔 바위는 마치 군불을 지핀 듯 따뜻하다. 오빠를 따라 들로 나오기를 정말 잘했다. 만약 집에 있었으면 해바라기를 하느라 아침나절엔 앞 마루에, 점심때가 지나면 뒷마루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들녘엔 해를 가리는 그 어떤 방해물도 없다. 때문에 내 뺨을 와닿는 바람의 움직임도 훨씬 더 세세히 느낄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따스한 봄날 쏟아지는 볕을 쬐며 살랑거리는 바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게 바람은 유일한 친구였다. 바람은 다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술궂다. 들녘에 나오니 바람은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넓은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아아, 어디든지 달려가는 바람으로 가득한 봄날은 얼마나 황홀하고 또 아름다운가. 할 수만 있다면 몇 날 며칠 동안 계속 그렇게 봄볕에 취해 그곳에 머물고 싶다. 그곳에 잠이 들어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오래전에 잃은 두 오빠를 엄마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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