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1회 이순 언니

장편소설 /

by 가야

에필로그


내 이야기의 시작은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때 나는 단발머리에 조금은 퇴색한 색동옷을 입은 아주 작은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그 아스라한 추억은 오래도록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소설이란 걸 쓰게 된 것도 그때의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장소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터이다.


때는 1960년대 초반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어 방금 한 일도 쉽게 잊어버리는 요즈음, 60여 년 전 일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 무모한 일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 점을 감안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자,

그럼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60여 년 전의 세월로 되돌아보자.





1회 / 이순 언니


나는 지금 샛담에 언니 심부름으로 이순 언니를 데리러 간다.

깡마른 우리 언니는 키도 크고 눈도 크다. 안성장터에 언니만큼 눈이 큰 사람은 없어 별명이 왕눈이다.


“순자 쟤는 생긴 것도 그렇지만 하는 짓도 영락없이 서울깍쟁이네.”


지난 설날 모처럼 명절을 쇠러 서울에서 내려온 금자 언니의 말 한마디에 언니의 별명은 왕눈이에서 서울깍쟁이가 되고 말았다. 장터 사람 중 서울에 가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인 서울에 산다는 것만으로 몹시 성공한 사람으로 치부되던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 서울깍쟁이란 말을 들은 언니의 기분이 어떠했었겠는가. 자신이 서울 사람과 같다는 말에 언니는 목을 빳빳이 세우고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그 큰 눈을 거만하게 치뜨고는 입술을 새침하게 꼭 다물었던 우리 언니.

그런 울 언니가 좀 모자라는 이순 언니와 친한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김제 댁의 여섯 딸들은 하나같이 인물이 훤했다. 그런데 둘째인 이순 언니만은 예외였다. 이순 언니는 네모난 각진 얼굴 부석부석한 눈두덩이 작달막한 코 두 볼은 넓적한 데다 광대뼈까지 도드라졌다. 약간 뒤집힌 것 같은 두툼한 입술은 아프리카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딸 여섯 중 제일 착하다.


이순 언니네와 우리 형제는 3년 터울로 언니와 이순 언니 그 밑의 삼순 언니와 오빠 다시 그 아래인 사순이는 나와 동갑이다.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이 대단한 언니는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가끔 옷 투정을 하였다. 그러나 딸은 시집가면 그만인 하찮은 존재로 인식하던 엄마에게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고 옷 투정을 할 때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면서도 언니는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언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면에서 유일한 국민학교 교장의 외동딸인 진자 언니다. 진자 언니와 언니는 모든 면에서 라이벌이었지만 생활 형편은 진자 언니 네가 훨씬 부자였다. 하지만 그런 일에 기가 죽을 언니가 아니었다. 영리한 언니는 진자 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게 최대한 노력을 했다. 그런 면에서 이순 언니를 언니의 친구라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친구란 모든 것에서 엇비슷해야만 성립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꼬집어 말하면 영악한 언니가 순박한 이순 언니를 이용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언니는 힘든 일이 있으면 큰 선심을 쓰는 양 이순 언니를 불렀다. 물론 이순 언니를 부르러 가는 일은 내 몫이다. 언니가 부른다는 말을 하기 무섭게 이순 언니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언니에게 달려온다.


동작이 굼뜬 이순 언니가 어찌나 빨리 뛰어가던지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뒤에 처진 내가 집에 당도해보면 어느새 이순 언니는 언니 대신 동생을 보거나 감자를 긁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순 언니가 순자 꼬붕이라는 소문은 안성장터에 파다했다. 마침내 그 소문은 이순 언니 할머니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이순 할머니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속으로 단단히 벼르며 언니를 혼내줄 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내가 이순 언니를 부르러 간 것이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이순 언니는 여느 때처럼 업고 있던 막냇동생 포대기를 끌러 마루에 팽개치듯 내려놓고 달려 나왔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저만큼 앞서가는 이순 언니와의 동행은 내게 무리다.


타박타박 이순 언니 뒤를 따라 걷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순 할머니였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은 이순 할머니는 노기등등한 얼굴로 커다란 지팡이를 질질 끌며 위태로운 걸음으로 내 앞에 당도했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시방, 느네 집에 어른들 계시냐?”


나는 눈만 깜빡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려, 어디 멀리 가셨냐?”


“밭에 가셨어요.”


“오, 그려 그거 참 잘되었다. 그럼 시방 느네 집에 누구누구 있냐?”


“언니 하고 동생 그렇게 둘이요.”


“순자 고 여시 같은 년은 뭐하고 자빠졌고?”


나는 행여 누가 들을까 봐 겁이 나 얼른 주위를 살핀다. 다행히 골목에 아무도 없다.


“시방은 몰라도 아까는 감자 긁고 있었어요.”


“그려, 그럼 순덕이 너 앞장서거라.”


그러나 나는 맘 편히 앞장서서 걸을 수가 없다. 무언지 모르게 불안하다. 채 머리를 흔들며 위태롭게 걷는 할머니의 지팡이 소리가 요란하게 골목길을 울린다.


“순덕이 너 시방 뭐 하고 있냐? 언능 앞장서라니까!”


할머니가 내 팔목을 확 낚아챈다. 그 바람에 넋을 놓고 서 있던 나는 앞으로 꼬꾸라질 뻔하였다. 졸지에 죄인이 된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엉거주춤 할머니와 나란히 걷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대체 무슨 일로 이순 할머니가 저렇게 화가 났을까? 맞다! 언니가 이순 언니를 종처럼 부려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엄마가 염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놈의 가시나, 이순이가 니 몸종이냐? 툭하면 데려다 일을 시키게. 자식이라면 벌벌 떠는 이순 할머니가 이 사실을 알아봐라. 가만 안 있을 테니.”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지금쯤 이순 언니는 언니 대신 감자를 긁고 있을 것이다.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알릴 방법이 없다.


샛담에 있는 이순 언니 집에서 300미터가 될까 말까 한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열 번도 넘게 가다 쉬다를 반복한 끝에 할머니와 나는 우리 집에 당도했다. 재빨리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할머니는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사립문을 활짝 밀며 노기등등한 얼굴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이순 언니는 토방에 퍼질러 앉아 감자를 긁고 있다.


“순자 이놈의 가시내! 당장 이리 썩 나서지 못해.”


할머니가 지팡이로 땅바닥을 세차게 내려치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것은 이순 언니였다. 마루에 엎드려 노래를 흥얼거리던 언니가 발딱 일어나 앉았다. 언니는 가뜩이나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너 이년, 이 여시 같은 년, 우리 이순이가 느 몸종이냐? 왜 툭하면 불러 집에서도 안 시키는 일을 니가 뭔데 시키는 거여?”


할머니의 노기가 얼마나 컸던지, 이마에 불끈 솟은 핏대가 혹시 터지면 어쩌나 나는 걱정을 해야만 했다. 잠시 당황하던 언니가 이 심상치 않은 사태를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니는 매섭게 이순 언니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이순 언니에게 다가가 긁다 만 감자와 몽당 숟가락을 홱 낚아채며 말했다.


“인내, 너 때매 괜히 나만 느 할머니한테 욕 얻어먹잖아.”


언니의 돌변한 태도에 당황한 이순 언니가 발을 동동 구르며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할매, 시방 왜 그려? 순자가 뭘 어쨌다고.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란 말여.”


할머니는 특유의 체 머리를 썰썰 흔들었다.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혀까지 끌끌 차더니 이순 언니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으며 말했다.


“애고, 이 멍청한 것아! 어찌 이렇게 미련하냐? 가자.”


할머니가 이순 언니의 손목을 잡아끌고 삽짝을 나서려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자신의 뒷모습을 잔뜩 노려보고 서 있는 언니를 때리는 시늉을 해 보이며 말했다.


“저놈의 가시내, 저 눈구멍 좀 봐. 사람 여럿 잡아먹겠네. 니가 그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늙은이를 노려보면 어쩔래. 한 번만 더 우리 착한 이순이 꼬드겨 일을 시켰다만 봐라. 그땐 정말 가만 안 둘 테니. 확 그냥!”


졸지에 봉변을 당한 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애써 부릅뜨고 숨을 쌕쌕 몰아쉬며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에 어른들이 안 계신 것이다. 만약 엄마가 집에 있었다면 언니에게 일방적인 욕설을 퍼부어 댄 할머니를 가만 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가 누누이 다짐한 대로 나는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의 일 거수 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엄마가 그런 엄청난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날 저녁 아버지 몰래 엄마는 언니를 부엌으로 불러냈다. 엄마는 언니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 쎄가 빠질 놈의 가시내.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너 대체 이다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응, 니가 깡패냐 건달이냐? 내 언젠가 한 번 이런 사달이 날까 싶어 그동안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하대 안 하대?”

평소에도 엄마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작아지는 언니이다. 언니는 고개를 있는 대로 수그리고 잔뜩 몸을 움츠리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어.”


“근디, 어미 말이 말 같지 않아서 그런 거야? 왜, 허구 헌날 그 착한 이순이를 데려다 일을 시키긴 시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린다더니 시방 꼭 그 짝 났당게. 왜 애먼 느그 아버지와 나까지 낯을 못 들고 다니게 만드는 거여. 조막만 한 것이 벌써부터 이렇게 속을 썩이니 이담에 조금 더 크면 그땐 어떻겠어.”


언니는 두 번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또 빌었다. 언니는 엄마에게 팔뚝에 새파란 멍이 들도록 세 군데나 꼬집힌 뒤 간신히 용서를 받았다.


한동안 언니는 자신이 그런 모진 일을 당한 것이 이순 언니 때문이라는 듯 이순 언니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곤 반장인 진자 언니와 숙제를 같이 한다, 환경미화를 한다며 전에 없이 어울려 다녔다. 이순 언니와 어쩌다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이순 언니가 발걸음을 뚝 끊으니 당장 아쉬운 것은 언니였다. 언니는 엄마 몰래 나한테 일을 시킨다. 그렇지만 나는 이순 언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언니는 내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일을 하게끔 상황을 연출했다.


그렇지만 날 때부터 일하고는 인연이 먼 나였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일곱 살이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오죽했었겠는가. 어설프게 내가 해 놓은 일은 엄마는 한눈에 알아봤다. 언니에게 이제는 하다 하다 어린 동생까지 부려먹느냐며 혼이 나곤 했다.


때문에 언니는 이순 언니가 아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언니는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언니의 그런 쌀쌀한 태도에 오히려 몸이 단 것은 이순 언니였다.


“순자야,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나랑 같이 놀자, 응?”


아침마다 등교 시간에 맞춰 삽짝 앞에서 서성거리다 애걸복걸하는 이순 언니의 모습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언니에게 서울깍쟁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건 결코 아니었다. 언니는 이순 언니가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냉정하고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한 날이 계속되자 이순 언니가 놀라운 선언을 하였다. 학교에 가면 순자가 상대도 하지 않으니 학교에 안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이순 언니는 얼핏 보면 좀 모자라 보인다. 항상 웃고 있어 마음이 태평양보다 더 넓은 듯하지만 한번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자식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벌벌 떠는 이순 언니 할머니가 언니에게 통사정을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우 같은 언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이순이와 놀지 말라고 하신 건 할머니였잖아요. 할머니가 접때 우리 집에 와 난리를 피우고 가신 뒤, 그날 내가 우리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아셔요? 아무튼 저는 이순이하고 놀고 싶은 맘 눈곱만큼도 없어요.”


언니의 말은 군더더기 없었다. 너무나 당당한 언니의 태도에 기가 질린 이순 언니 할머니는 혀를 길게 빼물고 특유의 채 머리를 썰레썰레 흔들었다. 이순 할머니는 언니의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손녀를 생각하고 간신히 화를 참았다.


“순자야, 나이 드신 어르신이 힘든 걸음을 하셔서 부탁하시는데,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하지 어른한테 대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어서 잘못했다고 빌어라.”


나무라는 듯 엄숙하게 언니를 타이르면서도 엄마는 내심 언니의 당당한 태도가 흐뭇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그랬잖아, 이순이와 두 번 다신 놀지 말라고?”


“그땐 그때고, 좌우 당간 접때 일은 내가 잘못했다. 됐냐?”


엄마가 못 이기는 체 사과하자 언니는 그제야 새침한 얼굴에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물더니 짐짓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할머니가 이렇게 특별히 찾아와 부탁하시니 그렇게 할게요. 할머니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순이는 학교에서 친한 동무가 별로 없어요. 저는 그런 이순이가 안 되어 보여서 같이 놀아 준 것뿐이라고요. 근데 할머니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저한테 전후 사정은 묻지 않으시고 다짜고짜 욕부터 퍼부어 댔잖아요?”

언니는 눈도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래, 미안하다. 집구석에만 틀어 박혀있는 상 늙은이가 뭘 알겠냐. 접때 내가 한 말은 없던 걸로 하고 앞으로 우리 이순이와 사이좋게 지내거라. 알겠냐? 내가 이렇게 부탁 하마.”


할머니는 주름 투성이인 손으로 언니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부여잡으며 거듭 부탁했다.


“할머니가 이렇게 부탁하시니 그럴게요.”


다음날부터 이순 언니는 비굴할 정도로 언니의 심부름은 물론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