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8회 우리 외삼촌은 씨앗 장사

장편소설

by 가야

8회 우리 외삼촌은 씨앗 장사 / 신선이 사는 동네


좀처럼 낮에 눕지 않는 엄마가 몸이 안 좋다며 자리를 깔고 누우셨다. 장독대 위로 꽤 굵은 빗줄기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당을 빽빽이 채운다. 마루에 서서 덕유산 정상을 바라본다. 한 무리 거대한 빗줄기가 줄달음질 치듯 대정리 냇가 쪽으로 달려가자 또 다른 빗줄기의 행렬이 바쁘게 그 뒤를 따른다.


그 이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던 덕유산에도 지금쯤 비가 내리고 있겠지. 혹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그 예쁜 꽃들이 몽땅 다 떠내려가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모처럼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 옆에 누워 사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어느새 꿈속 아름다운 세상에 서 있었다. 그곳은 덕유산 깊은 산골짜기 외삼촌이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곳이 분명했다. 외삼촌 이야기처럼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고, 깎아지를 듯 높이 솟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때마침 서산에 지는 햇살을 받아 무지개다리를 하늘에 놓았다.


외삼촌 말처럼 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선녀들이 사는 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가 무지개가 사라져 버릴까 봐 걱정이 된다. 무지개는 절대로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무지개가 있는 쪽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이다.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비명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본다. 얼마나 놀랐던지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너 무서운 꿈을 꿨구나?”


언니가 삼베 수건으로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펴지지 않던 발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고 재빨리 발을 펴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고 말짱하다. 그러나 너무너무 무섭다. 나는 그만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무서운 꿈 좀 꿨다고 우냐?”


오빠가 그런 나를 보며 웃긴다는 듯 빈정거린다.


“아주 댑다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단 말이야!”


“우리 덕이 키 크려나 보다. 무서운 꿈을 꾼 것을 보면.”


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신다.


한동안 훌쩍거리다 꿈속에 보았던 무지개가 떠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루로 나간다. 내 그런 생각을 산산이 부수며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되고 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지개다. 그러나 무지개를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맨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의 일로 그것이 무지개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다. 너무나 예쁘고 신기한 물체가 하늘에 떠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 떠 있던 그 예쁜 물체가 바로 무지개라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안 것은 외삼촌 때문이었다.


부지런한 외삼촌은 해마다 봄이 오면 안성면은 물론 무주읍, 부남면, 적상면, 설천면, 무풍면을 등짐을 지고 가가호호 누비고 다닌다. 집집마다 필요한 씨앗들을 나눠주고 가을에 돈 대신 곡식이나 그 밖의 농산물을 받는다.


사람들은 외삼촌을 일컬어 시상에 저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하늘 아래 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탓인지 외삼촌은 방안에 있을 때도 한 곳에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한다. 그 이유를 엄마는 외삼촌의 엉덩이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군살이 전혀 없는 5척 단신의 외삼촌은 행동이 민첩하고 손놀림 또한 재빨랐다. 심지어 걸음까지도 종종걸음을 치기 일쑤였다. 그런 점은 엄마와 비슷하다.


외삼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새롭고 재미있다. 장사를 하러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다 보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을 접하기 때문이다. 이런 외삼촌 덕택에 우리는 어디에 사는 누가 보리와 감자를 많이 수확했으며, 어느 집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아 몇 마리는 기르고 몇 마리는 누구누구네 키우라고 주고, 몇 마리는 장에 내다 팔았다던 가, 또는 누구네 집 딸이 동네 머슴과 눈이 맞아 장롱 속에 넣어둔 지난 장날 소판돈을 가지고 야반도주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외삼촌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외삼촌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할아버지처럼, 또 아주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아주머니처럼 역할에 맡는 목소리와 표정은 물론 행동까지 흉내 내며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외삼촌이 만약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누구보다 뛰어난 연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외삼촌의 이야기는 절실했고 흥미진진했으며 듣는 이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지만 내 또래의 그 누구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전해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매일같이 재능이 출중한 훌륭한 배우의 일인극을 돈 한 푼 내지 않고 집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외삼촌의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소문과 전설 이야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소문이란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라고 치부하지만 그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드물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외삼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덩달아 울고 웃었다.


엄마가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도중 말참견을 하거나,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는 손님들이 안 볼 때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린다. 손님이 돌아가면 그날이 바로 내 제삿날이라 할 만큼 혼이 나야만 했다. 어른들 이야기 도중 배운데 없이 말참견을 했으니 그 손님이 집에 가서 얼마나 흉을 보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외삼촌이 왔을 때는 그 모든 제약에서 해방된다. 우리는 외삼촌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매일 눈만 뜨면 만나면서 할 말이 왜 그리도 많은지, 엄마와 외삼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엄마에게 외삼촌이 없고 외삼촌에게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둘 다 얼마나 심심했을까? 엄마와 외삼촌의 길고 긴 이야기는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외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 나는 덕유산 신선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외삼촌! 덕유산이 그렇게 깊어요?”


오빠가 묻는다. 엄마는 말끝마다 덕유산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다고 말했다.


“그럼, 깊다 마다 겁나게 깊지.”


“그럼 외삼촌은 호랑이도 보고 귀신도 보았겠네요?”


“하먼, 보다마다. 집 채만 한 호랭이도 보았지.”


“귀신도요?”


“귀신?”


“네, 귀신.”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지, 허지만 들은 얘기는 수도 없다.”


“외삼촌! 덕유산 신선들 이야기 좀 해주셔요?”


“그 얘기 그렇게 여러 번 듣고 질리지 않냐?”


“그래도 또 듣고 싶어요.”


“우리 양호가 듣고 싶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다시 해줘야지.”


외삼촌 말씀처럼 그 이야기를 우리는 골백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덕유산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그 신비한 동네는 우리 삼 남매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덕유산 깊은 골짜기는 하늘에서 보면 분명히 일곱 동네가 있대. 그런데 직접 가보면 여섯 곳뿐 나머지 한 곳은 아무리 찾아도 못 찾는단다. 그렇지만 덕유산 안에 그 동네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 봄이면 커다란 꽃잎들이, 여름이면 챙이(쌀 까부는 키)만 한 죽순 껍데기와 주먹만 한 복숭아가 물에 떠내려 오곤 했었다지 뭐냐.


옛날부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동네가 바로 신선들이 모여서 산다는 동네라지 뭐냐. 사람들은 이 신비한 동네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그 동네만 찾으면 자신들도 신선이 될 줄 믿고 많은 사람들이 덕유산 곳곳을 몇 날 며칠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이 동네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해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신선이 사는 동네를 찾아다니니 그 형편이 오죽했겠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른들이 신선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하니 쓸데없는 생각들 말고 열심히 일해서 살아갈 생각을 하라고 했겠지. 이렇게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고 신선들이 사는 동네 이야기는 사람들 기억에서 차차 잊히고 말았다. 그렇지만 커다란 죽순과 연꽃보다 더 큰 꽃송이가 계곡물에 떠내려오고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둠벵이에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아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는 부지런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 총각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신선들이 사는 동네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효심이 남다른 이 총각은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막연히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와 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무를 한 짐 가득해서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총각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의 학을 보게 되었다.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커다란 학을 보는 순간, 이 떠꺼머리총각은 너무나도 기뻤다.


“저 학만 따라간다면 분명히 신선들이 사는 동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총각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학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의 기척을 느낀 학은 사뿐히 날아오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총각은 학을 찾아 이곳저곳 헤매고 다녔지만 한번 사라진 학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은근히 오기가 생긴 총각은 학을 찾아 덕유산을 헤매고 다니게 되었다.


밤에는 이슬을 피해 동굴에서 나무 북데기를 덮고 자는 둥 마는 둥 간신히 눈을 붙이고, 낮이면 또 온 산을 헤매는 일을 몇 날 며칠 계속하였다. 그러다 보니 먹을 것을 제때 먹었겠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비탈에 미끄러져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


그루나 젊은이는 신선들이 사는 동네를 찾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인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사람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몇 날 며칠 솔잎과 물만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 비몽사몽 걷고 있을 때였다. 이 총각의 눈에 수염이 하얀 산신령 같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단다. “


“그래서요?”


오빠가 눈을 빛내며 외삼촌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물었다.




총각은 이제는 살았구나 싶은 마음에 그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다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젊은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곳에 자신이 누워있는 것 아니겠냐? 깜짝 놀란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좀 전에 바위 위에 앉아 부채를 부치고 있던 수염이 허연 노인 한 분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젊은이!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대체 여기가 어디입니까?”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몸을 함부로 하면 쓰나? 자네 그동안 몸을 너무 혹사하여 그 몸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네. 이곳에 잠시 머물면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게나.”


총각은 그 할아버지가 결코 범상치 않은 노인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노인의 몸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품과 이 세상 그 어떤 꽃보다 은은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고 목소리 또한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총각은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찾아 헤매던 동네를 찾은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총각이 감격에 겨워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하자, 노인이 대나무 발을 걷어 올리면서 말했다.


“얘야! 약 다 다려졌으면 가지고 오너라.”


노인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사발을 든 한 소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힐끔 고개를 들어 소녀를 바라본 젊은이는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본 그 어떤 여자도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은 없었다. 잠자리 날개 같이 하늘거리는 하얀 옷으로 몸을 감싼 소녀의 얼굴은 붉은가 하면 희고, 흰가 싶으면 붉은 것 같았다. 초생 달 같은 눈썹은 그린 듯 단아하고, 별이 내려와 소녀의 눈이 되어 버린 듯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는 거울처럼 맑고 고요했으며, 높지도 낮지도 않게 알맞은 코는 앵두같이 붉은 입술과 어울려 도저히 이 세상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젊은이는 자신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그려왔던 여자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약을 드시면 아픈 곳이 말끔히 낫을 겁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소녀가 말했다.


젊은이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음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해졌으며, 근심과 걱정 또한 그런 단어가 언제 자신에게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약 한 사발을 단숨에 마신 젊은이는 그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이 일시에 쏟아졌다. 그대로 쓰러져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젊은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던 몸은 감쪽같이 나아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젊은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평소 부지런했던 그는 늘 해뜨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가 지금까지 맞닥뜨린 새벽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날 새벽은 그가 예전의 풍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밤새 켜켜로 내려앉았던 새벽안개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서서히 일으키더니 기지개를 켜고는 훠이훠이 산 정상을 향해 미끄러질 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 계곡을 베개 삼아 누워있던 안개들도 얇디얇은 옷자락을 이끌고 서둘러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게 쓴 마당 한쪽에 연꽃이 가득 핀 연못이 있다. 그 옆에는 마치 평상처럼 생긴 편편하고 넓은 바위가 자리해 있었다. 바위 옆으로 노송이 의젓한 자태로 서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머물렀던 아담한 초가 뒤에는 아름드리 대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젊은이는 그 집이 남의 집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안개가 깨끗이 쓸고 간 정갈한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연못에 활짝 핀 연꽃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거리며 활짝 웃고 있다. 연못 옆으로 세상에 진귀한 갖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가 땅에 닿을 듯한 나무가 즐비하다.


젊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 곁으로 다가가 크고 잘 익은 열매를 따 덥석 베어 물었다. 단물이 줄줄 흐르는 열매는 맛과 향은 기가 막혔다. 그가 열매를 한 개 다 먹고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입안 가득 향기가 그윽하고 침이 가득 고여 있다.


문득 젊은이는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홀어머니가 생각났다. 젊은이는 열매 가운데 가장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따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바로 그때 자신을 이곳까지 인도한 학을 앞세우고 뒷짐을 진 노인이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젊은이는 노인의 옆에 엉거주춤 앉았다. 미소년은 찻주전자를 화로에 올려놓고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찻주전자 물 끓는 소리가 대 바람 소리와 어울려 마치 천상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젊은이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신선들이 사는 동네를 찾았다는 행복함에 그 자신도 신선이 된 듯 지그시 눈을 감고 노인이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인의 단호한 음성이 그를 퍼뜩 깨어나게 하였다.


“자네는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네. 어서 이 차를 마시고 돌아가게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오직 자신만을 바라고 살아오신 어머니가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을 생각하자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서며 노인에게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됩니까?”


노인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시던 차나 마저 마시고 가지, 그러나?”


젊은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됐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쯤 우리 어머니는 제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시며 눈물로 지내고 계실 겁니다.”


“그럼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말인가?”


노인이 다짐하듯 그에게 물었다.


“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평생 후회하며 살 텐데, 그래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그럼, 됐네.”


노인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있던 학이 사뿐히 날아와 노인의 곁에 내려앉았다.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를 보며 말했다.


“뭘 그리 멍청하게 서 있는가? 어서 학의 등에 타지 않고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학의 등에 올라타자 노인이 말했다.


“이 젊은이 집까지 데려다주고 오너라.”


학이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날아오르자 노인이 말했다.


“자네, 이곳에서의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자네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게나. 그래야만 앞으로 자네의 남은 여생이 행복할 테니까. 어머니 모시고 행복하게 살게나,”


젊은이는 어렴풋이 노인의 그 말을 귓가로 들으며 다시 혼미한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젊은이가 다시 의식을 찾았을 때, 그는 자신의 집 뒤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있었다. 해거름 때가 다 되었는지 서편 하늘에 붉은 노을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젊은이는 자신이 낮잠을 너무 오래 잤다고 생각했다. 낮잠을 오래 잤기 때문인지 몸이 날아갈 듯 가볍기만 하다.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야야! 대체 어딜 갔다 이제야 오는 거냐?”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한 그의 어머니가 깜짝 반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나무를 하러 간다고 나간 뒤 소식이 끊긴 지 오늘로써 꼭 사흘째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너무 피곤하여 낮잠을 잔다는 게 그새 며칠이 지났나 봅니다. 어머니 그동안 걱정 많이 하셨겠군요?”


“시방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난 며칠 동네 사람들과 너를 찾아온 산을 찾아 헤매고 다녔어도 너를 찾지 못해 얼마나 상심했는지 아냐?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물려 가 죽었을 것이라며 그만 잃어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너를 찾을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길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젊은이는 자신이 삼일 밤낮으로 잠을 잤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잘못 먹어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얘야? 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볼록한 것이 대체 무엇이냐?”


어머니의 말에 그가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을 꺼내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과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가 노인의 집 마당에서 따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천도복숭아였다.


“시상에 먹음직스럽기도 하지, 아니? 대체 이런 귀한 과실을 어디서 났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 과실은 생전 처음 보는구나. 어디 이리 좀 줘 봐라.”


어머니가 과실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도 생전 처음 보는 과일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과실일까? 어디 한번 잘 생각해 보거라. 어디서 났는지. 아유, 향기도 어찌 이리 좋을꼬, 단내가 이렇게 진동하는 것을 보면 달기도 엄청 단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여기까지 단내가 진동하는 걸 보니 세상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과일이 분명해요. 어머니 어서 한 입 들어보세요.”


“이렇게 귀한 것을 어떻게 나 혼자 먹냐? 우리 둘이 반씩 나눠 먹자.”


어머니의 말에 그는 황망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한 개를 먹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 드리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그게 참말이냐?”


“그럼요. 어서 드셔 보세요.”


노인과 만났던 일을 깡그리 잊어버린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거짓말로 둘러대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단지 그가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것일 뿐. 천도복숭아를 먹은 젊은이와 그의 노모는 그 흔한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오래도록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외삼촌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덕유산 계곡 어딘가에 숨어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다는 신선들만이 산다는 동네, 그곳을 일컬어 청학동이라고 부른단다. 외삼촌 말에 의하면 청학동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죽지 않으며, 근심 걱정은 물론 서로 싸우는 법도 없다고 했다. 그들은 무지개를 다리 삼아 하늘나라로 마실을 가기도 한단다. 무지개는 신선들이 하늘로 마실을 가고 싶을 때 신선들이 만들어놓는 것이라고.

나는 외삼촌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무지개를 볼 때마다 신선들처럼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외삼촌이 훨씬 더 강했던 것 같다. 장사에 있어 탁월한 수완이 있었던 외삼촌이 한낱 씨앗 등짐장사에 만족하셨던 것도 언젠가 청학동을 찾아 그 자신이 직접 신선이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외삼촌은 참으로 바보다. 신선들이 사는 동네를 찾아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고 다닐 것이 아니라, 무지개가 뜰 때를 기다려 무지개를 쫓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런 결론에 도달한 나는 무지개가 뜨면 무지개를 좇아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을 마음속으로 거듭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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