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9회 전깃불과 스피커

장편소설

by 가야

9회 전깃불과 스피커


“덕아, 대정리 냇가에 가보자. 시방 대정리 냇가에 물이 겁나게 불어 집채만 한 황소가 떠내려온대”


오빠의 말을 듣고 가만히 들어보니 물소리가 굉음처럼 들려온다. 후닥닥 일어나 꿰차듯 신발을 끌고 오빠의 뒤를 쫓는다.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맑게 개어있다.


대정리 큰 냇가는 집 옆 작은 도랑을 건너 들녘을 한참 가야 한다.


오빠의 뒤를 쫓아 엎어질 듯 넘어질 듯 달려갔다. 냇가 가장자리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서서 황톳물의 도도한 흐름을 두려움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멀리서 봐도 정말 엄청난 황톳물이 넓은 내를 가득 메우고 냇가 가장자리 넓은 자갈밭과 둑 가장자리에 있는 버드나무까지 집어삼키며 거대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무시무시한 냇물을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황톳물에 섞여 가재도구나 산 가축들이 떠내려오기도 한다. 장대를 이용하여 가재도구나 나무를 건지는 어른들도 있다.


“산사태가 나 동네 전체를 싹 쓸어버렸다지 뭐예요.”


“저를 어째. 그래 사람은 안 다쳤는가요?”


“집이 무너져 저렇게 대들보까지 떠내려오는데 사람이 안 다쳤겠어요? 아까 참에는 황소 만한 돼지도 떠내려갔대요.”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오시며 말씀하셨다.


“비가 언제 쏟아질지 모른다. 얼른 덕이 데리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나 오빠와 나는 쉽게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보고 갈게.”


“어허, 그만 들어가라니까. 세상에 구경할 것이 없어 물난리를 구경한다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빠와 나는 몇 번이나 냇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쌀뜨물에 애호박과 어린 호박잎을 넣어 끓인 된장국으로 이른 저녁을 먹는다. 하늘이 다시 커다랗게 울부짖는가 싶더니 소강상태를 보이던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하늘이 이런데요. 사람들 다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어머니의 걱정에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비가 놋낱같이 퍼붓는데 용자 네는 괜찮은지 모르겠네.”


용자는 작년 가을 장안리로 시집간 큰언니 이름이었다.


“긍게 말이에요. 워낙 깊은 산골짜기라, 선동이 그 썩어 죽을 놈이 그런 못된 편지질만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촌구석으로 시집을 보내는 게 아닌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집간 큰언니 걱정에 한동안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런 엄마 아버지 마음은 아랑곳없이 빗줄기는 쉬지 않고 내린다. 마당은 빗물로 가득 차고 처마 끝 낙숫물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쏟아져 내렸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 빗줄기가 난무하는 마당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자자, 밥이나 먹자.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오는 비가 딱 그친다면 얼매나 좋겠냐?”


정말 아버지 말씀처럼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비가 딱 멎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까 이순이 엄마가 그러는 데 무주 앞섬에서는 산 밑에 있는 집 서너 채가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휩쓸고 가버렸다지요?”


“글쎄 그렇다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사람이 안 상한 거지.”


“안 다치고 살아있으면 뭐해요. 숟가락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던데, 그게 어디 살아있어도 산목숨이에요? 당장 입고 벗을 것도 없는데요. 참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그럼 어쩌겠소, 목숨이라도 부지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살아야지. 인명은 재천이라고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숟가락 한 개도 건지지 못했을라고?”


“즈 아버지도 참, 산사태가 나 순식간에 집을 덮치는 데 그럴 정신이 어디 있어요? 간신히 몸만 피했다는데. 불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불탄 자리는 타다만 끄트머리라도 남아있지요. 근데 물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니 물이 불보다 무섭다는 옛말이 그른 말 하나 없당 게요.”


“아무래도 저녁 먹고 논에 한 번 더 가봐야겠어.”


“긍게 말이에요. 비가 어지간히 쏟아져야지요.”


그날 저녁 우리는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저녁을 먹었다. 수저를 내려놓자마자 아버지는 삽을 들고 거적을 둘러쓰고 논으로 나가셨다.


“천지신명님, 그리고 성주 조왕님! 제발 비 좀 그만 멈춰 주십시오. 이렇듯 비를 퍼부으면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들은 다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요? 이렇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비니 부디 비를 거둬주십시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걱정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두 손을 모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마가 늦게 돌아오는 날은 언니가 가마솥에 밥을 안쳐 놓는다. 그러면 엄마는 땀으로 범벅이 된 옷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가 언니가 안쳐 놓은 밥물부터 본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은 언니 몫이다. 새카맣게 그을린 남폿불을 켜놓고 엄마는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밥 뜸 드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아궁이 속 뚝배기에 뽀글뽀글 끓는 된장 냄새가 허기진 우리를 유혹한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온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무슨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가늠하며 밥공기를 순식간에 비우곤 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자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종일 들에서 고된 일을 하신 부모님은 수저를 놓기 무섭게 곯아떨어지신다. 등잔불 아래 둥근 밥상에 머리를 맞댄 언니와 오빠가 숙제를 하기도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언제 엄마가 깨어 야단을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태 잠들 안 자고 뭐하고 자빠졌냐?”


“숙제해요.”


“숙제는 밝은 때 하지 낮에는 뭐하고 깜깜한 오밤중에 한다야? 석유 지름 닳는데 숙제는 내일 밝은 날 하고 그만 불 끄고 자거라.”


언니와 오빠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호롱불을 꺼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안성장터에 전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누님! 시상에 오래 살고 볼 일이랑 게요. 이렇게 대낮보다 밝은 전깃불 아래 살게 될 줄 우리가 언제 꿈이나 꿔봤어요. 인제 컴컴한 호롱불 밑에서 바늘귀 못 뀌어서 고생할 일이 있겠는가요? 어두워서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요? 오밤중에도 전깃불을 켜면 대낮보다 더 환한데. 안 그려요? 이런 전깃불이 들어온 것도 못 보고 일찍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


외삼촌은 너무 밝다 못해 눈이 부신 전깃불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참말 시상에 밝다 밝다 해도 이렇게까지 밝은 줄 누가 상상이나 했간디. 참말 좋은 세상이여.”


드디어 우리 집에도 전기를 가설했다.


환한 전등불 아래서 오빠가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마루에 누워 오빠의 책 읽는 소리를 속으로 따라 읽는다. 전기가 가설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언니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도 스피커 하나 달자. 응?.”


“씹어가고 자빠졌네. 스피커는 무슨 놈의 스피커!”


엄마가 언니를 흘겨보며 매몰차게 말했다.


“진자네도 찬호네도 다 달았단 말이야.”


언니가 입을 삐쭉거리며 중얼거렸다.


“쯧쯧,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진자와 찬호네가 우리하고 같으냐? 진자는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고, 찬호네는 안성장터 최고로 부자잖아.”


“스피커 다는 것하고 아버지가 교장인 것과 부자인 게 무슨 상관이 있는데?”


“시끄러. 가시나가 속 창시도 없어. 너는 대체 언제나 철이 들래?”


언니는 지금 엄마에게 스피커(라디오와 같은 용도로 그 모습이 스피커와 같아 그렇게 불렀다.)를 달자고 조르고 있다. 전기가 가설되고 얼마 안 있어 스피커도 들어왔다. 안성장터에서 스피커를 맨 처음 단 집은 언니 친구인 진자 언니 네 집과 찬호 오빠네 집이었다. 자신의 라이벌인 진자 언니네 집에서 스피커 소리를 듣고 온 언니가 엄마를 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 줄도 모른다.


“엄마! 원만하면 우리도 스피커 하나 달지 그래요?”


오빠의 말에 엄마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양호, 너도 스피커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럽대?”


엄마의 목소리가 언니를 대할 때와 달리 나긋나긋하고 한결 부드럽다. 오빠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피커 달면 시방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래?”


“응.”


“그래, 알았다. 이따 아버지 들어오시면 말씀드려보자.”


엄마는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나이에 비해 사려가 깊은 오빠가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언니는 오빠에게 지원을 요청해 둔 것이다. 그러나 오빠가 언니를 돕기로 작정을 한 것은 언니의 부탁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었던 오빠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유행에 민감했다. 특히 오빠는 학교 운동장에서 이따금 공짜로 보여주는 활동사진(영화)에 광적일 만큼 심취해 있었다.


어쩌다 군에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 주는 날이면, 남녀노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안성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사는 우리는 화면이 잘 보이는 앞쪽에 가마니나 비료 포대 등을 깔아놓고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놓았다.


얼마나 오래된 필름인지 비가 흘러내리는 흐릿한 화면에서 우리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화면 속 배우와 함께 울고 웃을 때면 밤하늘 가득한 초롱초롱한 별들도 깜빡거렸다. 그에 질세라 꽁무니에 환한 불을 밝힌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덩달아 신이 났다.


그때 본 영화로는 성춘향. 단종애사를 비롯한 사극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또한 김용만 고춘자의 배꼽 쥐는 만담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꿈이 유난히 많은 오빠는 영화광이었다. 아주 가끔 담배창고 앞 공터를 빌려 천막을 쳐놓고 유료로 영화를 상영할 때도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날 안성장터는 축제를 하는 것 같았다. 소달구지에 확성기를 매달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사람들과 몇몇 악단들이 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하였다.


언니나 오빠는 다른 아이들처럼 새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영화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물론 연소자 입장이 가능한 영화는 거리낌 없이 관람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영화가 성인 영화인지라 공식적으로 관람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장터에 영화가 들어오면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영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담배창고 앞 빈 땅에 가설극장을 만들어 영화를 상영하는 지라 직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맞추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기 때문에 간이 영화상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안성장터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평소 잘 아는 지인들이라 아이들은 통사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몰래 숨어 들어가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된 다음날, 누구누구가 숨어들어 공짜 영화를 보았으며, 아무개와 아무개는 몰래 들어가려다 들켜 극장 앞에서 손을 들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운 좋게 몰래 공짜 영화를 보고 온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서 영웅처럼 대접을 받았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에워싸고 공짜 영화를 구경하게 된 무용담을 듣고 또 들었다.


“야, 말도 마. 내가 담배창고 변소 옆에 납작 엎드려 망을 보면서 숨어 들어갈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천막 안에서 애국가가 끝나고 영화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냐? 참말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영화가 더 이상 진행되기 전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가긴 들어가야 하겠는데, 당최 그럴 틈이 있어야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디, 그때 마침 뒤쪽을 지키던 놈 하나가 오줌이 마려웠던지 변소 뒤로 어슬렁거리며 돌아가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안 들키게 엉금엉금 기어 천막 가까이 다가가 숨도 안 쉬고 기다렸지.”


“왜? 얼른 들어가지 않고.”


“이 병신! 그럼 나 여깄으니 잡아가요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그 사람이 오줌 누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 거지.”


“어째서?”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오줌을 누다가 어떻게 쫓아오겠냐, 양호야 안 그냐?”


진혁 오빠가 흘끗 오빠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오빠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진혁 오빠의 무용담이 계속되었다.


“잠시 뒤 오줌 누는 소리가 들려오더라. 이때다 싶어 쏜살같이 일어나 천막을 걷고 들어가려는데 오줌을 누던 사람이 ‘어어, 야 인마 너 거기 못서?’라며 소리를 지르더라. 서란다고 서는 그럴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냐, 안 그냐”


“맞아! 그러려면 첨부터 몰래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오줌을 누는 놈이 무슨 수로 나를 잡겠냐? 나는 잡으려면 어디 한번 잡아봐라. 약을 올리며 천막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 틈에 섞여 버렸지. 그 자식 오줌을 누면서 약이 올라 어쩔 줄 모르던 것을 느네들이 봤어야 하는 건데.”


“너 나중에 잡혀서 혼나면 어쩔래?”


“알긴, 어떻게 알아. 깜깜한 밤중에,”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것에 의하면 진혁 오빠의 무용담은 말짱 거짓말이었다. 영화가 거의 끝날 때쯤 극장 앞에서 얼쩡거리는 진혁 오빠가 하도 안 돼 보여 매표소 직원이 들여보내 준 것을 한껏 부풀려 허풍을 떤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빠 역시 영화를 보지 못하면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안달을 하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빠는 아직 초등학교 3학년 10살에 불과했다.


여하튼 오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성장터에서 상영되는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섭렵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안성장터에 새 영화가 들어왔다.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우리 집 건넛방에 세를 들었다. 당시 1960년대 초반 안성장터에 변변한 숙박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임시 영화 상영 장소인 담배창고 앞 우리 집 방 한 칸을 빌린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오빠가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어느 날 밤 그 사람들을 찾아간 오빠는 참으로 엉뚱한 제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공짜로 영화를 보게 해 준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으니 제발 일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은 이 당찬 소년의 제의에 난감했던 사람들은 오빠를 따돌릴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 방법이란 영화 홍보 포스터를 목에 걸고 동네마다 다닐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학교에 입학한 이래 삼 년 동안 일등과 반장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우등생인 오빠에게 무리한 요구가 분명했다. 당연히 안 하겠다고 할 줄 알았던 오빠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더니 그들의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를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단서를 덧붙이고. 여하튼 오빠는 앞뒤로 극장 포스터를 목에 걸고 공진동, 이목리, 가옥리, 호로리, 골고리. 사전, 금평, 되재 등 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엄마의 자랑이며 희망인 오빠가 그러고 다닌다는 해괴한 소문을 듣고 엄마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단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아쉬운 소리는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하지 않는 오빠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오빠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르자 호미를 밭에다 내팽개친 엄마가 오빠를 찾아 나선 것이다.


엄마가 오빠를 만난 것은 사전에서였다. 더위에 빨갛게 얼굴이 익고 하도 많이 걸어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오빠를 보는 순간 엄마는 그만 억장이 무너지더란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빠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음을 터뜨린 엄마는 오빠에게 그런 일을 시킨 어른들을 나무랐다.


“이 양반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해도 참말로 너무하네. 당신들도 이만한 자식 키우고 있을 것 아녀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주머님,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제발 아드님 좀 데려가셔요. 우리가 그만하라고 아무리 말려도 약속을 한 일이니까 오늘 하루는 끝까지 채워야 한다고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뭡니까.”


그렇지만 오빠는 한번 약속한 일이라며 그날 저녁까지 샌드위치 맨 홍보를 마쳤다. 사람들은 그런 오빠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오빠는 그들과 약속했던 것처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매일 저녁 영화를 보러 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일로 인하여 오빠는 우등생에 지독한 독종이라는 수식어를 부수입으로 얻게 되었다.


오빠는 영화 못지않게 유행가에도 관심이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스피커는 어쩌면 언니보다 오빠에게 더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체면 때문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차에 언니의 간곡한 부탁을 하자 못 이기는 체 들어준 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언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긋지긋하던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환한 햇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대야에는 장마로 하지 못한 빨래가 수북하다. 그러나 아직은 빨래를 할 수가 없다. 황톳물인 냇물이 맑아지려면 앞으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빗물로 질퍽거리던 마당도 오후가 되자 뽀송뽀송해졌다.


오늘은 경사가 두 가지나 겹쳤다. 모처럼 날이 개었고, 점심때 아저씨가 언니가 그렇게 원했던 스피커를 마루 기둥에 달아준 것이다. 아저씨는 스피커 트는 방법과 주파수를 맞추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아저씨가 가르쳐 준 것처럼 언니가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가로세로 약 20 × 30cm의 나무 상자에서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 스피커 안에 난쟁이 같이 작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긍게 시방 우리가 이렇게 재밌는 연속극과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 때문이여.”


언니의 말을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스피커 안에 있는 사람들도 배가 고플 거란 생각에 밥을 몇 숟가락 덜어 작은 종지에 담아 스피커 앞에 갖다 놓았다. 그런 나를 보고 식구들은 모두 허리를 쥐고 웃어댄다. 스피커를 달자고 보챈 사람은 언니였지만, 연속극 듣는 재미에 요즘엔 세상사는 재미가 절로 난다며 엄마가 오히려 더 좋아하셨다.


스피커를 달고 난 뒤에 생긴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밤마다 우리 집으로 마실을 와 이야기를 들려주던 외삼촌의 왕래가 뜸해진 것이다. 워낙 이야기를 좋아하는 외삼촌도 저녁이면 라디오 연속극을 듣느라 꼼짝도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꼬끼오!


오늘도 어김없이 스피커에선 수탉 울음소리가 들리고 닭표 간장 CM송이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닭이 운다 꼬끼오

집집마다 꼬끼오

맛을 낼 땐 닭표 간장 꼭 낀다고 꼬끼오.


닭표 간장 선전이 끝나자 뒤이어 동백아가씨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헤 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언니와 오빠와 함께 마루에 누워 이미자의 구성진 노래를 듣는다. 별안간 밖이 떠들썩했다. 오빠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나는 고무신을 질질 끌고 오빠를 따라 나간다.


담배창고 앞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며 깔깔거린다.


“야! 이 미친년아!”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피해 두 손으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그때 여자가 분명했다.


올봄 나물을 뜯는 언니를 따라갔다가 무덤에서 옷을 풀어헤치고 아저씨와 나란히 누워있던 그 여자! 나는 나도 몰래 흠칫 놀라며 뒤로 한발 물러선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다가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죽은 듯 앉아있는 여자를 찬찬히 바라본다.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일까? 순간 고개를 든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는 흰 이를 드러내며 씽긋 웃는다.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여자의 머리 위엔 어울리지 않게 들꽃이 꽂혀있다. 오색 색실로 땋은 끈을 질끈 동여매어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때로 덕지덕지한 찢어져 너덜거리는 치마허리를 새끼줄로 질끈 묶었다. 그 모습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처연하다.


아이들이 여자의 몸 여기저기를 나무 꼬챙이로 찌르며 놀리기를 계속하자, 여자는 울 듯한 표정으로 오빠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순간 아이들이 하던 짓을 멈추고 뒷걸음질 치며 오빠의 눈치를 살핀다.


오빠가 손을 들어 아이들을 제지했다. 아이들은 모처럼 재미있는 놀이를 그만두는 것이 못내 아쉽고,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돌아선다. 여자가 오빠를 보고 씩 웃더니 보따리를 옆구리에 꼭 낀 채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여자의 머리에 묶여있던 오색의 머리띠가 휘날린다. 언뜻 바라보니 여자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오빠의 눈이 한동안 여자를 뒤쫓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오빠가 집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여자의 뒤를 다시 따른다. 순간,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획 몸을 돌려 아이들을 돌아본다. 뜻밖에 여자의 얼굴에 노기가 서려있다. 의외의 사태에 당황한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멈칫거린다. 여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화들짝 놀란 아이들을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친다. 그러다 여자가 돌아서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함성을 지르며 여자의 뒤를 쫓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여자는 그만 지쳤는지 보퉁이를 옆구리에 끼고 뒤도 안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좀 전보다 더 큰 함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야, 이 고얀 놈들! 너그덜 시방 뭣 들 하는 짓거리냐?”


만약 그때 덕구 할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그 여자를 언제까지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을는지 모른다. 안성장터의 호랑이인 덕구 할아버지의 출현에 아이들은 혼비백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 버렸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낮에 보았던 미친 여자의 머리에 꽂혀있던 들꽃과 오색 색실로 쫑쫑 땋은 머리띠가 좀처럼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또옥 똑 낙숫물이 떨어진다. 너무나 지루하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너무나도 따분하다. 밖에 나가 땅따먹기도 할 수 없고, 소꿉장난도 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받으며 놀고 싶다. 하지만 엄마에게 한차례 호되게 혼이 난 터라 그럴 수 없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마루 끝에 걸터앉아 발을 까닥거리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셔츠의 사나이란 노래에 박자를 맞춘다.


“노란 셔츠 입은 말 없는 그 사내가 어쩐지 맘에 들어 어쩐지 나는 좋아.”


엄마 눈치를 보며 속으로 따라 부르던 언니가 ‘어쩐지 맘에 들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명숙보다 더 큰 소리로 불러 젖힌다.


군불을 지핀 따뜻한 아랫목에서 아버지는 낮잠을 주무시고, 심란한 표정의 엄마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럽게 흘낏거리며 해진 옷을 깁고 있다.


언니의 노랫소리, 오빠의 책 읽는 소리가 빗소리를 잠재운다. 엄마가 깁던 옷을 주섬주섬 한쪽으로 밀어놓고 칭얼거리는 남동생에게 젖을 먹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본다. 나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을 하며 처마 끝으로 다가가 낙숫물을 손에 받았다.


“이놈 가시나! 당장 못 들어와. 낙숫물을 맞으면 사마귀 생긴다고 그렇게 말해도 말을 안 듣고 그러네, 손에 사마귀가 덕지덕지 생기면 꼴좋겠다.”


엄마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며 얼른 마루로 올라선다. 혹시 사마귀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 두 손을 활짝 펴 앞뒤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사마귀는 생기지 않았다.


나는 안도하며 마루에 엎드려 양손으로 턱을 괴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을 본다. 그것도 무료해지면 반듯이 누워 고개만 마루 끝에 내려놓고 거꾸로 하늘과 처마를 바라보기도 했다. 텃밭 옆 노란 키다리 꽃이 빗줄기에 처량하게 고개를 숙이고 빗물만 흘리고 있다.


언니는 공책에 옮겨 적은 ‘노란 셔츠의 사나이’ 가사를 외우느라 노래를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나까지도 노란 셔츠의 사나이란 가사를 다 외우고 말았다.


“하~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 본 심정. 아~ 아, 아,”


언니가 다음 가사를 미쳐 따라 적지 못한 듯,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서 맴을 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답답하다. 무슨 일이든지 딱 부러진 언니가 유독 무엇을 외는 것에는 취약한지 모르겠다. 나는 힐끗 언니를 돌아다본다. 마루를 이리저리 뒹굴거리던 언니가 답답했던지 발딱 일어나 앉는다. 보다 못한 내가 다음 소절 가사를 일러준다.


“아~ 그이도 나를 사랑하고 계실까!”


“맞다. 맞아. 아휴 왜 그 가사가 그렇게 생각나지 않았지?”


언니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한참 동안 호들갑을 떤다. 그러더니 아직 학교도 다니지 않는 나에게 가사를 배웠다는 사실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지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덕이 너는 어떻게 그 노래 가사를 다 아냐?”


“맨 날 맨 날 스피커에서 나오잖아!”


일을 시키면 당차게 하지 못해 좀 모자란다고 믿는 내게 그런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그런데 노래 가사나 이야기는 한 번 들으면 잃어버리지 않는다.


“덕이 머리 겁나게 좋은가 벼,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몇 번 듣고 다 외우는 걸 보면.”


오빠가 놀랍다는 듯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생에게 젖을 물린 채 깜짝 앉은 채로 잠이 들었던 엄마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머리가 좋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신뢰하는 오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내 머리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닌가 보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은 민망하다. 언니는 기분이 상했는지 노란 셔츠의 사나이가 적힌 공책을 한쪽에 획 밀어놓고 아버지 곁에 발딱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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