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넓은 마당은 이내 작은 방죽으로 변해 버렸다. 그 위로 쉬지 않고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동그란 파문으로 번지면서 또 다른 파문과 부딪쳐 사라진다. 하늘에서 감꽃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단지봉을 흘낏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참말 어쩌려고 이렇듯 비가 퍼붓는 다냐?”
엄마의 걱정을 들으며 강냉이 한 알을 따 입에 넣는다. 그때 비에 흠뻑 젖은 외삼촌이 집으로 뛰어들며 말했다.
“아유, 뭔 놈의 비가 이렇게 퍼붓는 대요 글쎄?”
“동상은 이렇게 비가 놋낱같이 쏟아지는데 대체 어딜 댕겨오는가?”
외삼촌은 등짐을 마루에 내려놓고 엄마가 건네는 삼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누님도 참, 아침 절에 비가 어디 왔간디요? 저번 장날 황거름 황 씨가 무수 씨 쪼께 더 갖다 달라고 부탁해서 비가 좀 끄막 하기에 후딱 다녀올라고 길을 나섰는데 갑자기 비가 퍼붓지 뭐예요.”
왜소한 외삼촌이 비에 흠뻑 젖으니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다.
“아니 그래 이 비를 다 맞고 황거름까지 댕겨 왔다는 거여?”
“갈 때는 말짱했당게요.”
혀를 끌끌 차며 엄마가 아버지 옷을 꺼내 외삼촌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옷이 홀딱 젖었네. 매형 옷이라 동상한테 쪼께 크겠지만 우선 급한 대로 옷부터 갈아입게나. 그래 점심은 했는가?”
“점심은 무슨 점심, 아즉 아침도 못 먹었당게요. 황 생원이 아무 데서나 한술 뜨고 가라고 붙잡는디, 갑자기 비가 퍼부어 맘이 급해서 선걸음에 돌아왔당게요. 집에 가서 먹어야지요.”
잠에서 깬 아버지가 마루로 나오시며 말씀하셨다.
“처남도 참, 여기가 어디 남의 집인가? 아무 데서나 한술 뜨고 가. 쉽게 비가 그칠 것 같지는 않고만. 그때까지 어떻게 참고 기다릴라고 그러는가? 즈 어머니 시방 뭐하고 섰는가? 언능 정지 가서 처남 밥 차려주지 않고.”
“아 참! 내 정신 좀 봐. 동상 쪼깨만 기다리게 보리쌀 삶아 놓은 게 있은 게 금방 밥 안쳐놓고 올팅게.”
“누님 됐어요. 이따 집에 가서 먹어도 된당께 그러시네. 정 서운하면 찬밥 남은 거 있으면 그거나 한 숟가락 주던지 그도 저도 없으면 내비둬요. 이따 비가 뜸하면 집에 가서 먹을 팅게.”
“처남! 그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이리 올라오소. 방이 하도 꿉꿉해서 군불을 쪼깨 넣었더니 방바닥이 따땃한 게 그만이네, 처남도 들어와서 등 좀 지지소. 나는 논에 좀 댕겨와야 쓰겠네.”
“논에는 왜요?”
“아침 일찍 댕겨오긴 했는디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 물꼬나 살펴보고 올라고.”
“하기야, 비가 와도 엔간히 쏟아져야 말이지요. 매형! 논길 미끄러운 게 조심해서 댕겨오세요.”
언니와 오빠가 외삼촌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한다.
“오냐. 비가 와서 밖에도 못 나가고 답답허지?”
아버지 옷으로 갈아입은 외삼촌 곁에 우리는 빙 둘러앉았다.
“외삼촌 시방 황거름에 댕겨오시는 길인 가요?”
오빠가 외삼촌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물었다.
“하먼, 황거름 댕겨 왔지.”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아장사리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던가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뚱그렇게 뜬 외삼촌은 이내 정색을 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본다.
“그럼, 양호 너도 아장사리에서 이렇게 날 궂은날 애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을 들었냐?”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자 너도?”
눈을 빛내며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외삼촌이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덕이 너도?”
외삼촌의 깊고 까만 눈을 응시하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삼촌 아장 사리가 뭔데요?”
“덕이 너는 아직 어린 게 몰라도 된다.”
외삼촌의 말에 토라진 나는 등을 보이며 돌아앉았다. 어른들은 모두 하나같다.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보면 ‘너는 아직 몰라도 된다’ 거나. ‘어른들 말하는데 싸가지 없이 나선다’ 라며 질문을 봉쇄해 버린다.
“덕아, 아장사리는 아기들 묘똥이여.”
오빠의 설명에 벽을 보고 앉았던 나는 살그머니 몸을 돌린다.
“외삼촌! 아장사리에서 참말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던가요?”
외삼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외삼촌은 시침을 뚝 떼고 우리 삼 남매 얼굴을 차례대로 쳐다본다.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오빠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밖에는 여전히 주룩주룩 장대비가 쏟아진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선 금세 무엇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음산한 기운마저 감돈다. 한동안 뜸을 들이던 외삼촌이 분위기에 걸맞게 착 가라앉은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황거름에 무수 씨를 갖다 주고 돌아오는데 아침나절엔 오지 않던 비가 부슬부슬 오지 않겠냐? 날 좋은 날 거기를 지나갈 때도 머리끝이 쭈뼛한 데, 오늘같이 날까지 궂은날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외삼촌은 고개를 흔들고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황 생원 집 말고 한 군데 더 들릴 데가 있어 부리나케 걷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란 말이여. 갑자기 길에서 비를 만나니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된 것이지. 체면이고 뭐고 옷을 깡똥하게 걷어붙이고 냅다 뛰다 보니 아장사리 앞이여.”
침을 꿀떡 삼키신 외삼촌이 다시 말을 이었다.
“참 별일이지, 좋은 것은 눈에 불을 쓰고 봐도 잘 안 뵈는데, 궂은 것은 바빠도 눈에 띄는 걸 보면. 아장사리 앞에 이르자 나도 몰래 머리카락이 쭈뼛서면서 꼭 뭔가가 내 뒷덜미를 잡아댕기는 것 같더란 말이여, 간이 조막만 해지면서 콩당콩당 뛰는데. 맘 같아서는 후딱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 그러면 더 무서울 것 같아 도둑괭이만치로 까치발을 들고 가만가만 걸었지. 느그들도 거기 가 보았으니 잘 알겠지만 거기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잖아?”
오빠와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 일인지 그 짧은 거리가 얼마나 멀던지 포도시 거기를 벗어났는가 싶어 겨우 한숨을 돌리려는 데, 갑자기 어디선가 응애응애 하고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여.”
가뜩이나 큰 외삼촌의 동공이 더욱더 커지며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 되었다.
“응애! 응애!”
외삼촌이 아기 울음소리 흉내를 낸다.
“어찌나 무섭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더라.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막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외삼촌이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윗목으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앗 뜨거! 느네 집엔 나무가 썩어 나나 보다 웬 군불을 이렇게 많이 넣었다냐? 엉덩이 다 타겠다.”
우리는 외삼촌을 쫓아 무릎걸음질로 윗목으로 따라간다.
“그래서요?”
오빠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아, 또 아기 울음소리가 나를 붙든단 말이여. 그 순간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싶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지!”
“거기 아기가 참말 거기 있었어요?”
언니의 물음에 외삼촌이 웃으며 대답했다.
“있긴 뭐가 있어? 암것도 없지. 애기 우는 소리도 거짓말처럼 딱 멎고. 내가 잘못 들었거니 싶어 몸을 돌리고 한 발자국이라도 발을 옮기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걸음을 멈추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참말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겠냐? 몇 번 그러다 보니 나중엔 없던 오기가 생기고 은근히 화도 나 소리가 나도 돌아보지 않고 와버렸지 뭐냐.”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신에 대해 내가 아는 상식은 극히 미약하다.
“무슨 야기를 그렇게 재미지게 해 쌌는가?”
그 사이 밥을 지어 밥상을 들고 들어오며 엄마가 말했다.
“재밌는 얘기는 무슨, 야들이 하도 이야기해달라고 졸라 싸서 아장사리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눈치 빠르기로 말하자면 안성장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외삼촌이 그만 엄마 앞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긴 한숨을 내 쉰다.
“아장사리?”
엄마의 표정을 보고서야 외삼촌은 후회하는 기색이다. 그렇지만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한 번 한 말도 다시 거두어 드릴 수 없다. 외삼촌은 얼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소리가 나도록 찰싹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누님, 내가 또 주책없는 이야기를 꺼내 누님 속을 뒤집어 놓네요. 아무튼 나는 이놈의 싼 주둥이 땜에 큰일이 랑게요. 에이 이놈의 주둥이!”
엄마는 수저를 들어 외삼촌에게 건네며 말했다.
“건건이가 별로 없네, 밥이나 먹게. 시장하겠네.”
엄마와 외삼촌은 같은 형제이었지만 생각과 행동이 너무도 다르다. 나는 늘 그것이 신기했다. 엄마가 남자보다 생각과 행동이 대범하고 사려가 깊다면, 외삼촌은 여자보다 더 화를 잘 내고 잘 삐치고 할 말이 있으면 남의 눈치 안 보고 곧바로 하는 성격이다. 오죽했으면 오빠와 언니가 외삼촌이 경망스럽고 방정맞아 어른 같지 않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다 했었겠는가.
“근디 누님! 무슨 놈의 밥을 이렇게 고봉으로 눌러 담았는가요. 상머슴 밥보다 더 많네. 야들아! 너그덜 밥 더 먹거라. 외삼촌 이거 다 못 먹는다.”
외삼촌이 뽀글뽀글 끓는 된장 한 수저를 뜨면서 우리를 보며 말했다.
“많기는, 장정이 이만큼은 먹어야지. 여직 아침도 안 먹고 황거름까지 댕겨 왔담서 얼매나 배가 고프겠는가? 야들은 쪼께 전에 점심 다 먹었은 게.”
“누님네 장맛은 이렇게 좋은데 우리 집 장맛은 올해도 그른 것 같아요. 장이 이렇게 달아야 하는데. 이 정구지 무침 양호가 좋아하잖아요. 이따 양호나 두었다줘요.”
“양호가 정구지를 잘 먹길래 올해는 좀 많이 심었네. 양호 걱정 말고 동상이나 어서 많이 먹게나.”
빗줄기는 좀처럼 멎을 줄 몰랐다. 외삼촌은 따뜻한 방에서 한숨 늘어지게 주무시고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장마가 끝날 때도 넘었는데 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비가 퍼붓는 다냐?”
저녁을 먹던 엄마가 숟가락을 입에 물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럽게 한동안 쳐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마 말처럼 세상이 온통 빗속에 잠긴 것 같다.
며칠 전만 해도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줄기가 신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엄마 말처럼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우르릉 쿵쾅 갑자기 하늘이 요란하게 뇌성벽력을 치더니 날카로운 광선이 세상을 가른다.
“에구머니!”
언니와 나는 재빨리 아버지에게 달려들며 눈을 꼭 감는다.
“아부지! 무서워.”
“죄지은 거 없으면 무서울 것 하나 없다.”
아버지가 언니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하였다.
“즈 아부지! 내가 죄를 짓기는 겁나게 많이 지었는가 봐요. 요렇게 뇌성벽력이 치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두근거리는 걸 보면요.”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다.
“시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간디. 그런디 어른이 되어 가지고 간이 고로코롬 적어 어따 쓸랑가?”
“긍게 말이에요. 어른도 어른 나름이지 아까 만수 안 봤어요? 천둥소리에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꼼짝도 못 하잖아요.”
“하긴 그려. 처남은 여자 맹키로 간이 너무 짝아.”
“어디 만수가 적은 게 간 뿐인가요? 쏘가지는 밴댕이 속보다 더 좁아 무슨 말 만하면 삐쳐서 뽀르르 가 버리고.”
“그래도 처남은 뒤끝은 없잖아!”
“그건 그렇네요. 이부자리 필까요?”
“아즉 초저녁 인디, 벌써 자게?”
“비가 와서 그런지 사지 삭신 어디 한 군데 안 쑤시는 데가 없당게요. 방도 꿉꿉한 데 군불이나 좀 더 넣지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시방 막 나가려는 참이네.”
아버지는 군불을 지피러 나갔다. 엄마는 방을 대충 훔치고 삼베 이불과 베개를 순서대로 쭉 늘어놓았다.
“엄마! 옛날이야기해줘.”
오빠가 베개를 깔고 엎드리며 말했다.
“잠 안 오면 책 한자라도 더 보지 얘기는 무슨 얘기. 옛날부터 얘기 좋아하는 사람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다. 너는 가난하게 사는 게 좋냐?”
“치! 거짓말, 얘기 좋아하는 것하고 가난한 거하고 뭔 상관이 있어?”
“참말이여.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해도 성공을 할까 말까 한데, 허구 헌 날 옛날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아까운 시간만 축내는 거지. 그래서 그런 말이 다 생긴 거여.”
“엄마! 그러지 말고 얘기 하나만 해줘? 응. 이번 딱 한 번만. 그럼 다신 옛날이야기해달라고 안 그럴게.”
“참말이다. 그럼 딱 이번 한 번뿐이다.”
참 이상한 것은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고 무더운데 방바닥이 따뜻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나는 언니 옆에 누워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엄마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는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내용도 다양하다. 오늘은 엄마가 또 어떤 신비로운 이야기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줄까, 그 상상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진다.
엄마는 실눈을 뜨고 실에 침을 묻혀 바늘에 실을 꿰지만 번번이 빗나간다. 오빠가 일어나 바늘에 실을 꿰어준다. 우리 여섯 식구는 모두 한방에서 잔다. 맨 아랫목이 아버지와 오빠 그다음이 엄마와 동생, 그 옆으로 내가 눕고 맨 윗목에 언니의 자리로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집 서열이기도 했다.
“오늘 저녁은 비도 오는데 구렁이 여자 이야기를 해 주마.”
“구렁이 여자?”
“그래 벼락을 맞고 구렁이가 된 여자!”
“치, 그런 여자가 세상에 어딨어?”
“있었으니께 이야기가 생겼겠지. 잠자코 이야기나 들어봐라. 덕유산 밑 어떤 동네에 욕심이 많고 심술궂은 여자가 살았더란다.”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랭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살았더란다.’ 아니면 ‘옛날 어떤 동네에 늴리리 가락으로 날아갈 듯한 기와집에 부자가 살았더란다.’ 엄마의 이야기는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가 다르다.
“그 여자는 어찌 된 일인지 해마다 장을 담그면 맛이 없어 도저히 먹기가 힘들더란다. 예로부터 그 집안이 잘 안 풀리려면 장맛부터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던 어느 해, 그 여자가 장을 뜨려고 장독 뚜껑을 여는데 전에 없이 단내가 확 풍기더란다. 이상하게 생각한 여자가 손가락으로 장을 찍어 맛을 보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장맛이 맛이 있었다. 그 여자는 너무 이상해 다시 한번 간장을 찍어 먹어 보았다. 역시 장맛이 기가 막히더란다. 세상에 아무리 맛있는 간장도 이렇게 맛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자는 이제야 자신의 집 형편이 피려나 싶어 어찌나 좋은지 어깨춤이 절로 났다. 그날부터 여자는 간장을 금쪽같이 여겨 아끼고 또 아껴서 먹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간장을 뜨려고 단지 속을 들여다본 그 여자는 기겁을 하고 나자빠지고 말았단다.”
“왜, 엄마?”
언니가 물었다.
“장 단지 속에 커다란 구렁이가 뻣뻣하게 굳어있었기 때문이지.”
“으악, 징그러워. 근데 왜 하필 구렁이가 장독에 빠져 죽었을까?”
“뱀이 허물을 벗으려면 소금기를 먹어야 한다더라, 짠 것을 찾던 뱀이 마침 열린 간장독을 보고 간장을 먹으려다 실수로 빠졌겠지. 구렁이가 빠진 줄 까맣게 몰랐던 여자는 항아리 뚜껑을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오빠가 베개를 끌어안고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반쯤 넋이 나간 이 여자는 다음날부터 자기는 그 간장을 한 방울도 먹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품삯을 간장으로 퍼주었단다. 구렁이가 빠져 죽은 간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맛있는 간장을 얻어먹으려고 서로 그 집일을 하려고 나래비를 섰단다.”
“설마? 간장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그래 간장 좀 얻어먹겠다고 일을 해?”
엄마가 언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가시나가 잘 알지 못하면 죽은 듯이 가만히 나 있어. 옛날에도 그렇지만 요새도 가난한 사람들은 철철이 장(간장, 된장, 고추장을 말한다.)을 담아 먹을 수 없어. 맨 소금을 먹을 수는 없은 게 남의 집 일을 해주고 품삯으로 장을 얻어다 먹었다니께.”
“아이참, 누나 말 좀 그만하고 얘기나 마저 들어. 엄마!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오빠가 언니를 돌아보며 짜증을 낸다.
“그 여자는 구렁이가 빠져 죽은 간장을 이웃에게 모두 나눠줬고 장독에는 간장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여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장독대 뚜껑을 덮고 돌아서려는 데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그 여자를 내려쳤고 여자의 다리가 구렁이로 변해버렸다.”
“참말?”
“하먼, 참말이고 말고. 구렁이로 변한 여자를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어 어리둥절하는 사람들에게 여자는 지금까지 있던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용서를 빌었더란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었겠냐, 이미 엎어진 물인데?”
“엄마! 참말로 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너네 만할 때 끌임명 재에 사는 우리 큰어머니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세상에 구경도 그런 희한한 구경이 어디 있건냐? 큰어머니를 비롯한 인근 사람들이 다리가 구렁이로 변한 여자를 구경하러 갔는데 나처럼 나쁜 죄를 짓지 말라며 철철 울더란다. 큰어머니 말씀이 계집년이 지가 지은 죄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징그러운 구렁이로 평생 살아야 할 여자가 너무 안 되어 보이더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도 직접 가서 봤어?”
“애들은 그렇게 흉한 것 보는 게 아니라고 해서 못 가봤지. 긍게 너그들도 절대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하늘이 시퍼렇게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 다 보고 있은 게.”
그날 밤 나는 하반신이 구렁이로 변한 아줌마를 꿈속에서 몇 번이나 보고 기염을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