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아줌마의 고향은 사과로 유명한 경산이었다. 지도상으로 본다면 경상북도 경산은 무주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다르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무주까지 차가 다니지 않아 대구에서 대전이나, 영동으로, 대전에서 무주로, 영동에서 무주로, 여러 번 차를 갈아타기 때문에 하루는 족히 걸린다. 그만큼 경산과 무주는 매우 가깝지만 막상 가려면 까마득히 먼 곳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서른 살에 불과한 아줌마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라 일컫는 무주군 안성면까지 흘러와 술집을 하게 되었을까? 아줌마에겐 실로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핏기가 전혀 없는 희고 갸름한 얼굴에 눈이 유난히 깊은 아줌마의 얼굴에는 이방인처럼 까닭 모를 슬픔이 깃들어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덕유산 정상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스산하면서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겉모양만으로 아줌마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아줌마를 처음 보는 사람은 두 번은 놀란다. 오동보동하면서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모습의 아줌마의 나이가 서른이라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남원관이란 술집 주인이라는 사실에 거듭 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나타난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정작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일은 지난 10여 년 동안 굴곡과 파란으로 점철된 아줌마의 과거였다.
안성장터에서 아줌마의 과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줌마와 가장 친한 우리 엄마까지도. 다만 부산 영도 어디에 있는 술집에 있었다는 사실밖에는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믿기 힘든 희한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아줌마의 이름은 김경희, 그녀의 고향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사과와 대추로 유명한 경북 경산이다. 아버지가 경산 면장을 지낸 유복한 가정의 5남매 중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로 아줌마는 태어났다. 그동안 갖은 풍상을 겪었지만 여전히 어여쁜 아줌마가 소녀 시절 얼마나 예뻤을지 상상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꽃이 예쁘면 예쁜 만큼 탐내는 사람도 그만큼 더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줄 모른다.
경북 경산군 경산 면 면장의 셋째 딸은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미모가 출중한 셋째 딸은 뛰어난 외모는 물론 마음 씀씀이 또한 남달랐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 딸을 부모님들이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귀히 여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부친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예쁜 셋째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면 오빠들처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고 하였다.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녀에게 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그렇게 엄청난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줌마를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안성장터에서 가장 예쁘고, 나를 친딸처럼 아끼는 아줌마를 영원히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한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아줌마가 평생 행복 살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내할 수도 있다.
만약 과거로 역류하는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티켓이 내게 생긴다면 나는 그 티켓을 기꺼이 아줌마에게 줄 것이다. 언젠가 아줌마의 여고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낙엽 모양의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아줌마는 곱게 땋은 머리를 양쪽으로 늘어뜨리고 두 손은 얌전히 포개 치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열여덟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그 아래 ‘잊을 수 없는 학창 시절’ 단기 4283년 5월이란 글씨가 흘림체로 쓰여 있다.
단기 4283년이라면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발발한 바로 그 해였다. 전쟁은 경상도 작은 시골 마을 꿈 많던 여고생이었던 아줌마도 비껴갈 수 없었던 숙명이었다. 아줌마는 그날 그 치욕스러운 일을 죽을 때까지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죽고 난 영혼이라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일은 아줌마의 행복했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서울이 이미 함락되었고 인민군이 빠른 속도로 남하한다는 소식은 경산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뭔지 모르게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학교는 서둘러 수업을 마쳤고 학생들은 귀가를 서둘렀다. 아줌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아줌마가 다니는 학교는 대구 남산동에 있었다. 집이 있는 경산 남천면으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만 한다. 바삐 서둔다고 서둘렀지만 아줌마가 경산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한낮의 땡볕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그만그만한 가게들이 늘어선 번화한 곳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했다. 거리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선 사람들은 불안한 표정이 뒤숭숭한 상태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둑길 대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과수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에 있는 작은 쪽문을 밀치고 과수원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복숭아 수확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과수원은 텅 비어있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책가방을 든 손에 저절로 힘이 주어진다. 가슴과 등줄기는 땀으로 축축하다. 작렬한 땡볕에 흰 고깔모자를 쓴 포도는 그만 검게 타버리고, 수확을 앞둔 복숭아 열매는 하얗게 거품을 물고 까무러친다.
과수원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시끄러워야 할 곳은 시끄러워야 하고, 적막해야 할 곳은 적막해야만 어울리는 법이다. 그런데 시끄러워야 할 곳이 고요하고, 적막해야 할 곳이 시끄럽다면 필연코 무슨 변고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감지 능력이 있어서 그런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녀 역시 그러했다. 뭔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온몸에 엄습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냐, 아무 일도 아냐. 난리가 일어난 마당에 누가 남의 집 일을 하러 오겠어?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 뭔지 모르게 이상하다. 사람들이 일을 하러 오지 않은 것은 전쟁 탓이라고 하자. 그렇지만, 원승이 아범은 과수원을 지키고 있어야 마땅하다.
이른 아침을 먹으면서 아버지는 분명히 말하였다.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한 판에 사람들이 과수원에 일하러 오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자넨 과수원 비우지 말고 단단히 단도리를 하고 있어야 하네.’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말에 ‘하믄요. 면장님 아무 염려 마십시오.’라고 원승이 아범은 대답하였다.
그런데 원숭이 아범은 대체 과수원을 비워놓고 어디를 갔단 말인가? 혹시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 적막한 분위기가 주는 섬뜩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그녀는 원두막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원두막도 텅 비어있다. 왈칵 무서운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친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귀가를 서둘렀다.
바람 한 점 없는 과수원은 지열로 후끈하다. 긴장을 한 탓에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빨라진다. 그녀는 이제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어서 빨리 이 으스스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 마음이 그렇다 보니 묘목 사이에 있는 곡괭이 자루에 걸려 넘어진 것도 그런 불안함 때문이었다. 평소 침착하고 얌전한 여학생인 그녀가 칠칠맞은 아이들처럼 백주 대낮에 길에서 넘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수습할 겨를도 없다. 자신의 몸이 아픈 것보다 행여 누가 보았을까 봐 재빨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일어섰다. 손바닥과 무릎에 피가 비친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과수원 이랑에 흩어져있는 책과 노트를 주섬주섬 가방 안에 주워 담는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원승이 아범이 모로 누워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 원승 아범 가까이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재요’ 하고 불렀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써 두려운 마음을 달래며 원승이 아범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자 모로 누워있던 원승이 아범의 몸은 하늘을 보면서 반듯이 눕혀진다. 뜻밖에 원승이 아범은 두 눈을 허옇게 뜨고 죽어있었다. 정수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에 낭자하다.
오! 맙소사.
그녀는 허둥지둥 그곳을 벗어난다. 그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에워싸는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황급히 그들을 피해 몸을 돌리려는데 우악스럽게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채었다.
그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낚아챈 남자와 얼굴이 스칠 듯 가깝게 마주한다. 거침없이 그녀가 입고 있는 교복 앞자락을 거침없이 잡아 뜯는 녀석의 입에서 확 술기운이 풍긴다. 우두둑 교복 단추가 뜯어져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녀의 뽀얀 앞가슴과 슈미즈가 그대로 드러났다. 수치심과 공포심에 새하얗게 질린 그녀가 재빨리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는다.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웃옷을 강제로 벗겨 과수원 바닥에 내팽개쳐버린다. 녀석은 새파랗게 질린 채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엷은 슈미즈를 사정없이 잡아당기자 그만 찢어져 버린다. 그녀의 뽀얀 속살과 가슴을 겨우 가린 손바닥 만한 브래지어와 속치마만 남는다.
다급해진 그녀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땡볕이 뜨겁게 내려 쬐는 과수원 안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녀석이 그녀를 끌어안으려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왼쪽 어깨를 감싸 쥔다. 녀석이 소매를 걷어 젖히자 어깨 위로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고 피까지 비친다.
그것을 본 녀석의 손이 힘껏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동시에 녀석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그녀의 몸이 나란히 포개진 채 그대로 땅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녀석은 몸으로 그녀를 단단히 누르고 손이 치마를 들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녀석은 주먹으로 그녀를 힘껏 후려치자 그녀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다. 녀석을 필두로 다섯이나 되는 건장한 녀석들은 차례로 그녀를 윤간한 뒤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그녀의 행복한 시절은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부친은 자신의 체면에 손상이 갈까 쉬쉬하며 주위 사람들 입단속을 했다. 하지만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리 퍼지는 것이 그런 일의 특성이었다.
면장님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셋째 딸이 과수원에서 나쁜 놈들에게 윤간을 당했다는 소문은 면 전체에 파다했다. 그 엄청난 사건은 대대로 지방 유지로 행세를 하며 살아온 집 안에 먹칠을 한 것은 물론, 면에서 가장 높은 어른인 그녀의 부친에게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전쟁 때문에 뒤숭숭한 마을 분위기가 과수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더 어수선해졌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그녀가 실눈을 뜨고 보니 적삼 앞자락을 풀어헤친 어머니가 부채를 활활 부치고 있다.
“아이고, 이 불쌍하고 미련한 것아! 차라리 그런 더러운 일을 당할 바에야 그 자리에서 혀라도 깨물고 자결을 하지, 느 아버지 앞으로 어떻게 낯을 들고 다니라고 살았단 말이냐?”
그녀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때의 악몽이 환영처럼 떠올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돌아눕는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연신 애꿎은 부채만 부친다. 흐느끼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들고 있던 부채를 획 내던지고 일어나 툇마루로 나가 앉으며 말한다.
“어이구. 속 터져. 간을 꺼내 오독오독 씹어 먹어도 분이 안 풀릴 이 나쁜 놈들.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남의 집 귀한 딸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내 이놈들을 그냥.”
툇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아 뒷마당에 만개한 꽃들을 노려보며 입술을 악물고 치를 떠는 어머니는 평상시 인자하고 덕성스럽던 면장님 사모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매미는 고욤나무 그늘에서 맴맴 여름을 노래한다.
때마침 땀을 뻘뻘 흘리며 숯불 위에 끓인 미음 그릇을 쟁반에 받쳐 들고 정지에서 나오던 식모 명자는 주인마님의 노한 모습을 보고 재빨리 정지문 뒤로 몸을 감춘다. 그리고는 고개만 겨우 내밀고 툇마루에 나와 앉은 마님의 동태를 살핀다.
마치 자신이 더러운 오물이라도 되는 듯 가족과 친척들의 냉랭한 질시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이 세상에 살고 싶지가 않았다. 꿈도 이상도 모두 사라졌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북한 괴뢰군이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피난민 행렬이 줄을 이어 마을로 밀려왔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 그녀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잊힌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피난민 대열에 조그마한 보퉁이 하나를 달랑 품에 안고 오뉴월 삼복더위에 어울리지 않는 스카프로 얼굴을 싸맨 여자가 있었다. 피난민 행렬을 따라 무작정 부산까지 내려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반겨준 곳은 기지촌 술집이었다.
인생을 자포자기한 그녀는 미모 덕분에 자신의 꿈과 이상을 모두 앗아가 버린 남자들의 노리개로 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살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술집 여자가 되어 술과 웃음과 몸을 거리낌 없이 팔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철칙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 남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인기는 미군들에게 연예인 못지않았다.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 회화가 가능하고 동양 사람 답지 않게 늘씬한 키에다 육감적인 몸매 덕분이었다.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 그녀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신을 원하는 미군 병사들은 언제나 나래비를 섰고 화대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더라도 그날로 번 돈을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거리를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옷이 걸려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입했다. 길을 걷다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주어버렸다. 이런 이유로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술집 여자가 된 다른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티나(아줌마의 술집이름) 저년은 남자를 너무 밝혀 이 짓을 하고 있다며 쑥덕거리며 그녀를 매도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의 이목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녀가 미군 장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양공주 생활로 몸은 망가졌지만 그 미군 장교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한국에서의 복무기간이 끝나자 데이비드는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초청장을 보내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하고 떠나갔다. 그러나 가는 즉시 보내겠다던 초청장은 한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꼬박 삼 년을 미친년 소리를 들어가며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신의 사랑을 믿고 기다렸다. 다시 반년을 더 기다렸지만 그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그녀는 기다린 흔적을 거짓말처럼 훌훌 털어 버리고 양공주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젊고 팽팽하여 탄력이 넘쳐 누구나 탐을 내던 그녀의 몸뚱이는 세파에 지치고 찌들어버린 지 오래였다. 가슴은 늘어지고 피부는 윤기를 잃고 부석거렸다. 나날이 느는 것은 술과 욕뿐이니 미군들은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급기야 남자들이 그녀를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여덟에 시작한 양공주 생활도 벌써 11년이 넘었고 어느새 28살이 되었다.
싸구려 대폿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썩어도 준치라고, 비록 세파에 찌들어 망가지고 늙었어도 그녀의 타고난 미모는 빛이 약간 바랬지만 고운 자태는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 출장을 온 박 과장을 만나게 되었다.
어쨌든 아줌마가 한때 잘 나가는 기지촌 양공주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박상천 과장의 눈에 자신의 이상형인 여자를 보고 적극적인 구애를 하기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아줌마는 못 이기는 체 박 과장을 따라나선 것이다.
‘내가 비록 군청의 과장에 불과하지만 이래 봬도 무주에서는 알아주는 천석꾼 집안의 장손이여,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 하나 호강시켜 주는 일은 일도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여. 당신 같이 고상한 여자가 이런 싸구려 술집에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우리 고향에 가서 살자니께. 내가 시방 아들이 없당게. 그라니께 당신이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호적에도 올려주고 평생 떵떵거리고 살게 해 준당게. 참말이여.’
이 뜻밖에 청혼에 아줌마는 기가 막혔다. 청산유수같이 말을 뻔지르르하게 잘하는 박 과장은 키가 헌칠하고 천석꾼 집안 아들답게 생긴 것도 여자처럼 곱상했다.
독신이라는 박 과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절실히 필요했던 아줌마에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천만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여하튼 아줌마는 박 과장을 따라 부산을 떠나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라 일컫는 무주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무주에 와 보니 사고로 죽었다던 마누라와 두 딸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아줌마는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박 과장이 얼마나 자기 부인을 다잡아놓았던지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싫다 좋다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간 아줌마처럼 밖에서 데리고 왔던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때문에 부인은 너처럼 도시 물을 먹고살던 년이 다른 년들처럼 이 시골 바닥에서 몇 달이나 버티겠느냐며 오히려 측은한 눈으로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부인과 시댁 어른들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줌마의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나니 푸석하기만 하던 얼굴도 점차 생기가 돌고, 그간 형체를 잊었던 아줌마의 외모가 점차 되살아났다. 원래 태생이 부지런하고 깔끔한 탓에 집안 어른들은 물론 집에서 부리는 사람들의 신임까지 한 몸에 얻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오랫동안 멀리했던 책을 다시 펴 들고, 털실로 박 과장과 시어른, 본부인과 그 딸들의 조끼까지 떠 주어 가족들과 흉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무주 읍내에서 이 우아하고 교양 있는 박 과장의 첩인 아줌마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줌마의 편안한 시절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워낙 경솔하고 행동이 가벼워 사소한 일에도 파르르 성질을 내는 박 과장의 성정이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박 과장의 절친한 친구로 읍내에서 약국을 하는 정삼수 때문이었다. 평소 정 약사가 아줌마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을 떨떠름하게 생각하던 박 과장의 눈에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란히 웃고 서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두 사람 관계를 의심하던 박 과장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아줌마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뺨을 힘껏 내려쳤다. 그렇지 않아도 아줌마가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집중된다. 그런데 박 과장의 느닷없는 돌출 행동에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갑자기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눈앞에 번개 불이 번쩍거렸다. 아줌마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 과장이 얼마나 모질게 후려쳤으면 아줌마의 왼쪽 뺨은 금세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줌마는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박 과장을 잠시 노려보았다. 성질만 급했지 뒤가 무른 박 과장은 아줌마의 그런 모습에 움찔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사내 체면을 세우려는 듯 아줌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 꼬라지가 시방 그게 뭐시여?”
대부분 여자들이 머리를 쪽을 지어 비녀를 꽂고 다니던 시절, 길게 기른 파머 머리를 자연스럽게 말아 올린 아줌마의 헤어스타일이 다른 여자들의 머리에 비해 조금 튄 것은 사실이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여자들의 입가에 고소하다는 미소가 물결처럼 번졌다. 남자들은 그런 박 과장을 부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어이, 상천이 대체 이게 뭔 짓인가? 백주 대낮에 교양 없게.”
한껏 고상한 태도로 자신을 훈계하는 소꿉친구 정삼수의 그 말은 사위어 가던 박 과장의 성정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섣부른 행동을 후회하고 있던 박 과장이었다. 그래도 천석꾼 집안의 장남으로 읍내의 유지이며, 군청 산림과장인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만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둘이서 짜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 망신을 주었다고 박 과장은 생각한 것이다.
“그래, 이 새까! 나 교양 없는 놈이다. 너는 그렇게 교양이 철철 넘쳐서 남의 여편네 하고 백주대낮에 대로변에서 낮빤대기를 맞대고 시시덕거리고 있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박 과장이 씩씩거리며 양복저고리를 벗어 신작로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와이셔츠 소매까지 걷어 부친다.
“허, 이 사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참말.”
박 과장의 이런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아줌마가 신작로에 팽개쳐진 박 과장의 양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줌마는 박 과장의 위아래를 한번 훑어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너 따위와 유치해서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너무나 의연한 행동이었다.
아줌마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구경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 입을 벌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 같은 남편이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과 싸우고 있는데, 말리는 시늉은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린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래서 첩 년은 뭐가 달라도 다르당게요. 시상에 저것 좀 봐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홱 돌아서서 가 버리잖아요.”
“긍게 말이에요. 여자를 사흘 도리로 갈아 치우던 박 과장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먼요.”
여기저기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박 과장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 만무했다.
“야! 너 거기 못 서.”
박 과장이 구경꾼들 들으라는 듯 손으로 아줌마를 가리키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눈을 위아래로 희번덕거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람들 시선은 다시 아줌마에게 향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발걸음이 빨라지지도 않았다.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란 노래의 가사 말처럼 발걸음만 또박또박 헤매 가는지 앞만 보고 또박또박 걷고 있을 뿐이다.
“너, 당장 거기 안 서.”
박 과장의 불끈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더니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아줌마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시니컬한 웃음을 짓더니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지금 당신 화 너무 많이 나셨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집에서 하시지요.”
너무나 공손하고 지아비를 배려하는 교양이 철철 넘치는 지어미의 음성이었다. 이 뜻밖의 상황에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박 과장이었다.
“뭐, 뭐시라고? 아니 저년이 시방 병 주고 약 주고 있네.”
박 과장은 아줌마의 침착한 행동에 기가 질려 차마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자신의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삼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잠시 노려보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박 과장은 그렇게 스스로 자초한 일에 사람들 앞에서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 사건이 있은 뒤 무주 읍내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박 과장과 아줌마 사이에 있었던 그 이야기는 한동안 최고의 화제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야, 그 여자! 참말 당차고 대단하데. 눈을 이렇게 아래로 착 찬바람이 나도록 내리깔고 ‘지금 당신 화 너무 많이 나셨어요. 무슨 일 때문에 화가 그렇게 나셨는지 모르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집에서 천천히 듣기로 하지요.’ 그렇게 말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홱 돌아서는데. 그때 어쩔 줄 모르던 박 과장 꼴을 직접 눈으로 봤어야 하는데. 참말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더랑게. 참말 대단한 여자야. 내 여편네가 만약 내게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발모가지를 작신 분질러 놓고 주저앉히고 말았을 거야. 하기사 무식한 내 여편네가 그럴 째비도 안되지만. 하여간 그 여자 박 과장 세컨드로 살긴 아까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늘 저녁에 그 집에서 곡소리 나게 생겼당게”
그러나 사람들 예상과는 달리 그날 밤 아줌마의 집은 너무나 조용했다.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기를 내심 기대하며 사람들은 박 과장 퇴근 시간에 맞춰 이 핑계 저 핑계로 아줌마네 집 앞을 뻔질나게 오고 갔지만 자정이 다 되었어도 아줌마네 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골목 주위를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공연히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고 투덜거리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아줌마네 집에서 정작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그건 결코 아니었다. 여고 3학년 여름 그런 엄청난 사건을 겪은 뒤 양공주 생활을 거쳐 인생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싸구려 대폿집 접대부 생활까지 한 아줌마에게 낮에 일어난 일쯤은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줌마는 가끔 양은 냄비처럼 파르르 화를 내었다가도 제풀에 스러져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상한 박 과장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박 과장의 첩으로 평생을 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박 과장을 따라 무주까지 흘러왔었다. 그동안의 생활이 아줌마가 까마득히 잊었던 여자로서의 생활을 덤으로 찾게 해 준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아줌마는 박 과장이 자신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가 그렇게도 원하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안겨주고 식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그것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온 아줌마의 직감이었다. 아줌마는 모처럼 행복했던 지난 반년을 차분히 정리했다.
남자들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다가설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좋아할 때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만, 반대로 애정이 시들해지면 잔소리와 함께 욕을 하고 종국에 이르러 손찌검에 이르게 된다. 박 과장에게 예전처럼 따뜻한 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줌마는 너무나 차분했다. 물론 아무런 준비가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부산 기지촌의 티나가 아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면서 새롭게 변신을 한 것이다. 다 잊은 줄만 알았던 학창 시절 꿈이 다시금 가슴에 모락모락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자신을 유혹했다.
나이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선생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딱히 학교 선생이 아니라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일은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양공주와 싸구려 대폿집 색시까지 두루 거친 자신을 세상 사람들이 과연 받아 줄 것인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지금 당장 박 과장과 헤어진다면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처지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불현듯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가족들이 생각났다. 거짓말 같지만 옷 보퉁이 한 개를 달랑 들고 피난민 행렬을 따라 집을 떠난 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생각이 난 것이다. 그들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오빠는 난리 통에 무사할까? 아줌마는 비로소 마음을 굳힌다.
낮에 있었던 일로 미루어 박 과장이 퇴근을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박 과장에게 맞았던 뺨을 어루만져 본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털실이 모자라 털실을 사러 가던 중 때마침 밖에서 볼일을 보고 약국으로 들어가려던 정 약사와 인사를 나눈 것밖에. 거기까지 생각한 아줌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박 과장이 그토록 화를 낸 이유가 바로 질투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박 과장이 자신을 그만큼 사랑했단 말이 아닌가.
사랑?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던 아줌마는 무주에 온 뒤 독하게 마음먹고 끊었던 담배를 뽑아 들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설사 박 과장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정 약사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 때문에 화가 났다 치자, 그렇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수시로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빤한 이치가 아니던가.
자신의 첫사랑이자, 결혼까지 약속했던 데이비드도 그러했다. 맨 처음 자신에게 손을 댄 뒤 팔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하나님과 성경 앞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도 더 세고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이 뒤따랐다.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데이비드는 시간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 놓고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면서 결렬한 성행위를 요구했다. 온몸에 난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줌마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행위는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그런 일이 날마다 지속되었지만, 그때는 그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떠난 뒤, 비로소 데이비드가 지독한 사디스트 환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면 성질이 가랑잎에 불같은 박 과장이 그 이상의 행동을 자제해 주었다는 것이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본다. 박 과장과 살림을 시작하면서 새로 산 가재도구들이라 하나같이 새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의 소유라고는 달랑 몸뚱이 하나뿐이다. 아줌마는 떠날 만반의 태세를 준비해놓고 박 과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박 과장은 감감소식이다. 지난 반년 동안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생각 같아서는 큰집에 가보고 싶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재떨이에 아줌마가 그동안 피운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가을이 목전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집을 떠난 뒤 계절의 변화를 이렇게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 처음이다. 도저히 방 안에 있을 수 없어 스웨터를 걸치고 마루로 나선다.
서늘한 바람이 텃밭 옆 대추나무를 사정없이 흔들고 지나간다. 고즈넉하기 짝이 없는 밤이다.
팔짱을 낀 채 마당을 서성거리던 아줌마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고향을 떠난 뒤 처음으로 바라보는 밤하늘이다. 무더운 여름밤 매캐한 젖은 쑥 연기를 맡으며 평상에 누워 밤하늘 가득하던 별자리를 누가 빨리 찾나 오빠들과 내기하던 때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줌마는 용케 북두칠성을 금방 찾아낸다. 그리고 오리온을 비롯한 별들과 차례로 눈인사를 나누고 그 이름을 배울 때처럼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별을 본다.
자신이 세상의 모진 세파에 시달리고 부대끼는 동안, 밤하늘을 지키며 자신을 기다려 준 별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딧불이 별처럼 반짝이며 주위를 서성거린다.
그날 새벽 동이 훤하게 터 오를 때까지 그녀는 모처럼 소녀 시절 감성으로 돌아가 밤하늘 가득 떠 있는 별들과 아직 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듯 반짝이는 반딧불을 보면서 앞으로의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과수원에서 그런 일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피난민을 따라 집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남자들로 인해 인생을 망친 여자가 왜 하필이면 그 넌더리 나는 남자들에게 몸을 팔게 되었는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런 식으로 남자들을 철저히 농락하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과거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너무나도 추하고 더럽다. 과거를 깨끗이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을 떠난 뒤, 그녀는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볼 시간을 보냈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그런 시간을 제공해준 박 과장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날이 밝자 아줌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당을 깨끗이 쓸고 텃밭에 심어놓은 꽃들을 돌보고 물을 주고 미련 없이 집을 나섰다. 6개월 전 박 과장을 따라올 때 들고 왔던 커다란 가방 한 개를 달랑 들고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아줌마의 뇌리에 고통스럽고 치욕스럽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덕아! 너 시방 밥을 먹는 거냐 장난하는 거냐, 가시나가 복 달아나게 젓가락으로 깨작거리지 말고 숟갈로 푹푹 퍼서 먹어!”
엄마가 왜 나한테 신경질을 내는지 잘 안다. 그건 아줌마가 밥을 먹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담배만 피우고 있어서 은근히 짜증이 난 것이다. 이럴 때는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짐작하고 언니와 오빠가 미리 줄행랑을 친 것이다.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내가 먹은 빈 공기와 국 대접을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묻는다.
“엄마! 정지 가서 숭늉 가져올까?”
“그러던지.”
부뚜막에 걸터앉아 가마솥 뚜껑을 두 손으로 잡고 한쪽으로 민다. 대접 가득 뜬 숭늉을 엄마에게 갖다 주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