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내린다.
아침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러 내려갔다가 우산을 쓰고 외출을 하는 아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우렁찬 소리로 우산을 펴 든 채 고개를 숙이는 그 아이는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인데,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2학년이 될 것이다.
귀엽고 야무진 아이는 똑똑하고 예쁜 그러나 조금 도도한 세 살 위 누나와 외할머니 내외와 산다.
아이의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까닭이다.
뒤이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노란 패딩 차림을 한 아이의 누나가 내려오며 인사를 한다.
"비 오는데 어디 가세요?"
"아이들이 답답해하길래 마트에 좀 다녀오려고요."
차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든 세 사람!
우산도 제각각이다.
외할아버지는 넓고 큰 검정 우산을,
외할머니는 감색 평범한 우산을,
양 갈래 머리가 눈에 쏙 들어오는 아이의 누나는 물방울무늬가 있는 투명 비닐우산을.
앞서간 아이는 투명 비닐우산을.
그들은 곧 차에 올라 차례로 우산을 접고 주차장 밖으로 사라졌다.
문득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 생각났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우산은 참으로 귀했다.
특히 학생이 5명이나 되는 우리 집에서 온전한 우산을 차지하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우산 살이 망가졌거나, 우산이 찢어져 비가 새는 그런 폼 안 나는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는 일은 정말 싫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학교에서 집이 가깝다는 핑계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우산을 쓰고 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예쁜 우산을 쓰고 모자가 달린 우비에 빨간 장화까지 갖춰 신고 소공녀처럼 우아하게 등하교를 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나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비 오는 날 아침마다 우산 때문에 소란스러웠지만, 우리 형제 그 누구도 엄마에게 새 우산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시골에서 전주로 이사를 온 우리는 집안 형편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각기 다른 아픔을 겪으면서 철이 들었던 거다. 나 또한 그러했다.
물론 우리 집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친구 중 몇몇은 나와 같은 처지였고, 그네들도 나처럼 우산을 잘 쓰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꿈에서도 그립고 부러웠던 새 우산과 우비 그리고 빨간 장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누리고 산다.
분리수거하는 날 보면 새 우산을 버리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조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모, 나는 수아에게 제일 예쁜 우산과 비옷을 사줄 거예요. 그리고 예쁜 빨간 장화도."
아직 수아가 걷기도 전이었는데, 비 오는 날 차를 타고 가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지나가자 한 말이었다. 언니 들으라고 한 말이겠지만 언니와 나는 그런 조카를 보며 웃었다.
나는 몰랐지만 조카에게도 새 우산과 우비, 빨간 장화에 대한 부러웠던 날이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