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마치 동화 속 나라 같은 멋진 유치원이 있습니다.
그 유치원의 이름은 "경성유치원"입니다.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서 산책을 하면서 어릴 적 꿈꾸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곤 합니다.
이 유치원의 특징은 건물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보다 결코 좁지 않은 유치원 대지를 온통 잔디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진귀한 꽃들을 심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른 새벽
습관처럼 그곳에 들렸습니다.
어느 남자분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셔서 잠시 말씀을 나눠보았는데
그분이 바로 유치원 원장님 부군이라고 하시더군요.
워낙 꽃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지라
꼭두새벽 꽃 시장으로 가 새롭고 진귀한 꽃을 사다 심고 가꾸는 것이 커다란 낙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맑은 눈빛에서 아이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랑이 넘실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요, 보람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제가 찍은 대부분의 꽃 사진은 신트리 공원에서 찍은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이 유치원에서 모셔온 귀한 선물입니다.
지난밤 무더위로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유치원으로 향하였습니다.
유치원 밖에서 보니 그저께 만개했던 연꽃은 어느덧 지고 그 자리에 주먹만 한 연밥이
나를 보고 살며시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세상에 태어나 그림으로만 보았던 연밥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밀치니
어라,
평소와 달리 문이 안으로 잠겨있습니다.
화단에서 할머니 한 분이 김을 매고 계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는 문을 흔들어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꽃처럼 환한 얼굴의 할머니 사장님에게 여쭈어보아야겠다고 합니다.
잠시 후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마
사장님은 이른 새벽 꽃 시장에 다녀오신 듯 유치원 뜰 앞에 주차된 봉고차 옆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담긴 화분이 놓여있습니다.
그중에 한 화분에 내 시선이 멎었습니다.
꽃 같지는 않은 데
훤칠한 키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무척 고귀하며 아름답습니다.
사장님 말씀에 그 꽃 이름이 설화라고 합니다.
설화?
우리가 흔히 설화라면 눈꽃을 일컫는데
이 여름에 설화라?
꽃의 높이가 대략 1m 가까운 이 꽃은 너무나 연약해 보입니다.
멀찍이 떨어져 보니 눈을 함빡 뒤집어쓰고 있는 듯도 해 보이네요.
분명히 꽃줄기에 설화라고 쓰여 있습니다.
설화!
여름에 핀 설화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이런 종류의 꽃은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무척 생소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정리하면서 아무리 사전을 검색해 봐도,
이 꽃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설화!
잎과 꽃이 거의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온통 눈처럼 하얀 잎 가운데 푸른 잎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꽃 역시 눈처럼 희고, 봄에 피는 노란 수선화와 비슷합니다.
설화
이제 굳이 설화를 보려 겨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설화의 정식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설악초'였습니다.
설악초 키우기에 관한 글은 내일 다시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내일 이야기에 미처 전하지 못한 설악초 전설입니다.
설악초의 전설
먼 옛날 백발 마녀가 있었습니다.
이 마녀는 가난한 남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애정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녀가 사랑했던 그 남자는 백발 마녀를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백발마녀는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지요.
천신의 노여움으로 백발 마녀와 남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다음 해
백발 마녀와 남자가 죽은 자리에 눈처럼 흰 설악 초가 피어났는데
그 잎은 백발 마녀의 흰 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설악초 줄기를 자르면 흰 액체가 뚝뚝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