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위 사진에서 보는 꽃은 설악초 즉 눈꽃이다.
꽃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름을 이렇게도 어울리게 지었을까 하고.
이 멋진 꽃을 본 것은 3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 식사 후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를 걷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었다. 14단지 앞을 통과해 양천공원을 한 바퀴 돌아 시간은 1시간, 도보로 약 6000보가 목표였다.
14단지 초입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 눈부신 한 무더기의 꽃!
내 눈을 한눈에 사로잡은 그 흰 꽃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거기서 이 꽃을 보았다. 아니 그 보다 더 아득한 10여 년 전 경성유치원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론 이름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희다 못해 눈이 부신 이 꽃 앞에서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너무 아름다운 사물을 만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거,
나뿐이 아니라 경험해보았을 테니 그때의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 꽃을 감상하면서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이따금 씩 웃고 지나는 바람뿐.. 나는 무모한 기다림을 멈추고 최종 목적지인 양천공원을 향해 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는 그 꽃 이름이라도 물었을 텐데..
양천공원을 돌면서 내내 그 꽃이 떠올라 어떻게 돌았는지 모르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14단지 그 흰 꽃 앞으로 다가갔다. 역시 아무도 없다. 허망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매일 저녁 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그곳을 찾아 그 흰 꽃을 만났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꽃 옆에서 물을 주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나는 인사를 하며 그 꽃 이름을 물었다.
"아, 이 설악초요?"
"설악산 할 때 설악초요"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꽃만큼이나 흰 미소로 대답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설악초는 원래 미국이 원산지인데 화단에 심거나 꽃꽂이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들여왔다고 한다. 잎 전체가 눈처럼 하얗고, 처음 잎이 돋아날 때는 녹색이지만 위쪽 잎은 가장자리가 하얘서 언뜻 보면 흰 꽃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마치 산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다는 뜻에서 설악초가 되었단다.
그다음 해 고척도서관에 가는 길에 다시 설악초를 만났다.
14단지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우람하고 가지도 풍성하다. 마치 한 여름에 흰 눈이 내린 듯 환한 빛으로 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다시 이 설악초를 보려고 운동코스를 바꿔 고척도서관으로 향했고, 오며 가며 그 꽃을 흠뻑 마음에 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설악초 가지에서 씨앗을 발견했고 몇 꼬투리 따 올 수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꼬투리를 베란다 책상 위에 두고 익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베란다 쪽에서 딱! 하고 무엇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일어났다. 다시 들리는 딱! 하는 소리. 서둘러 일어나 불을 켜고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딱! 하는 소리는 설악초 씨앗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꼬투리 속 씨앗이 튕겨나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에 감격스러웠다.
동글동글 까만 씨앗이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다.
나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씨앗 꼬투리를 대형 봉투에 넣었다. 씨앗이 사방으로 퍼져 찾을 수 없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동안 퍽! 퍽! 퍽!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봉투 안에서 씨앗 꼬투리가 터지는 소리였다. 그렇게 풍성한 씨앗을 받을 수 있었고 이듬해 화단에 그 씨앗을 소중하게 뿌렸다.
씨를 파종하고 한참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 발아가 실패한 줄 알고 나를 질책했다. 따로 모종판에 파종하지 않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설악초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른 꽃들을 심고 가꾸느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여기저기서 못 보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대체 저 싹이 무얼까? 뽑아내기도 뭐해 몇 개는 두고 보기로 했다. 발아된 모종은 여느 꽃모종보다 튼실하다. 며칠 지나 모종이 어느 정도 자란 다음 나는 그 모종이 설악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뿌린 설악초 씨앗이 발아를 한 것이다. 너무 기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설악초는 우리 화단에 자리 잡았고, 그 해 멋진 눈꽃으로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설악초의 무서운 번식력을 말이다.
나는 번식력이 왕성한 꽃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 꽃 애호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꽃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듬해 씨앗을 따로 뿌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설악초 모종들!
뽑아내서 이웃에게 나누고, 다시 뽑아 버리고.....
한 번은 설악초 가지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러진 가지에서 이차돈이 순교할 때 솟구쳤다는 흰 피처럼 흰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나는 그 희고 끈적끈적한 액체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비볐던 모양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 액체의 독성은 상당해 나는 곧바로 엄청난 통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구입해 임시방편으로 넣어야 했다. 약사는 말했다.
"이것 넣고도 낳지 않으면 곧바로 안과에 가보셔야 합니다."
다음날 간신히 진정된 통증!
그 후로 나는 설악초 근처에 얼씬도 않는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좁은 화단에서 좋아하는 식물을 키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많이 뽑아냈지만 올해도 설악초는 화단 곳곳에서 여름을 눈처럼 흰 등불을 켜들고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나는 꽃에 대해 갚을 빚이 많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내가 밉다.
설악초의 꽃말은
'환영', '축복'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