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탄생화
12월 10일. 달력의 숫자는 이미 겨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지만, 이 계절은 의외로 붉은 심장을 가진 한 꽃을 세상 위로 밀어 올립니다. 눈과 바람의 매서움을 뚫고 피어나는 동백(Camellia). 차갑고 깊은 계절 속에 피어난 붉은 한 송이는 마치 추운 날 들숨처럼 선명하며, 살아 있는 열기처럼 느껴집니다.
12월 10일의 꽃말 ‘고결한 이성(理性)’이라는 말처럼, 동백은 그 어떤 풍파 속에서도 과장 없이 단정하고, 고요하지만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오늘은 이 겨울의 꽃을 조금 더 다층적으로 들여다보며, 동백이 품은 시간과 상징, 이야기들을 더 보탠 한 편의 산문으로 풀어내어 보고자 합니다.
동백이 특별한 이유는 피어 있음 너머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꽃잎들은 바람에 실려 서서히 흩날리며 시들어 가지만, 동백은 절정을 이루는 순간 봉오리 그대로 ‘툭’ 떨어집니다. 그 단호한 낙화는 마치 한 생이 예고 없이 끝나는 순간 같아, 오히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지는 순간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한 장 한 장 흩어지는 여백도 없이, 붉은 꽃 전체가 땅에 닿는 소리는 작지만 확실하며, 그 고요함은 찬란합니다.
이 모습은 조선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절의(節義), 무사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한 명예에 견주어지곤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봉오리째 떨어진 꽃을 ‘마지막까지 온전했던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모양 그대로 끝나는 그 결말이야말로, 동백이 지닌 가장 극적인 순결입니다. 떨어짐은 소멸이 아니라 완결이며, 아름다움은 피어나서가 아니라 사라지는 방식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동백은 보는 기쁨을 넘어선, 손에 잡히는 효용을 가진 꽃입니다. 화려한 존재감 뒤에는 조용히 맺히는 열매와, 그 속에서 나오는 귀한 기름이 있습니다. 동백기름(Camellia Oil)은 조선 시대 여인들이 검고 윤기 흐르던 머릿결을 위해 사용하던 대표적인 미용 오일이었고, 겨울바람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주던 자연 보호막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헤어 오일과 스킨오일, 요리에 쓰이며 오래 머무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눈앞에서 산란해 사라지는 꽃과 달리, 열매는 계절을 지나 인간의 삶 속으로 스며듭니다. 가장 빨리 떨어지는 꽃이면서, 가장 오래 인간 곁에 남는 존재 – 그 모순 속에 동백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눈 위의 붉음은 짧지만, 머릿결에 스며든 광택은 길게 남는 것처럼.
동백이 서양에 전해진 것은 18세기, 필리핀 출신 선교사 게오르그 요셉 카멜의 탐구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 학명 Camellia가 붙었고, 유럽은 동양의 우아하고도 기품 있는 꽃에 열광했습니다.
그 열병의 절정에는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La Dame aux Camélias)》가 있습니다. 주인공 마르그리트는 사랑을 허락할 수 있는 날에는 흰 동백을,
허락할 수 없는 날에는 붉은 동백을 달았습니다. 꽃은 그녀의 마음, 운명, 그리고 끝내 다다른 비극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동백은 하나의 문장이었고, 하나의 침묵이었으며, 어떤 날엔 ‘예’였고 어떤 날엔 ‘아니오’였습니다. 꽃이 말을 대신한 사랑의 시대 — 그 시대의 가장 뜨거운 언어가 바로 동백이었습니다.
12월 10일의 동백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가장 매서운 계절에도 가장 뜨거운 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바람은 차갑지만 꽃은 포기하지 않고, 떨어질 때조차 흐트러짐 없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고결함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용기라 부르며, 또 어떤 이는 마지막까지 품어낸 붉은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하루가 겨울처럼 차갑더라도, 동백처럼 당신의 안에는 뜨거운 중심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바람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떨어짐 속에서도 온전함을 지키는 그 꽃처럼.
당신에게도 오늘, 작은 붉은 심장이 하나 피어나기를.
〈 동백(Camellia) 요약 정보 〉
• 개화 시기: 늦가을~겨울
• 특징: 봉오리째 떨어지는 낙화, 상징성 짙은 붉은 꽃
• 꽃말: 고결한 이성, 겸허함, 변치 않는 사랑
• 활용: 동백기름(헤어∙피부∙식용), 관상수
• 대표 문화: 뒤마 피스 《춘희》, 순정과 비극의 상징
https://youtu.be/QXB-QpciZbE?si=wn1pAmBtisGE4y-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