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의 탄생화
12월 13일의 탄생화, 자홍색 국화는 겨울 문턱에서 피어나는 늦가을의 마지막 숨결과도 같습니다. 차갑고 고요한 계절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국화는 끝내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의 색을 더욱 진하게 밝힙니다. 그 빛 가운데에서도 자홍색은 유난히 부드럽고 고귀한 기운을 품고 있어, 오늘의 꽃을 바라보는 마음 역시 어느새 따뜻해지는 듯합니다.
꺾이지 않는 절개와 조용한 품위를 지닌 꽃, 국화는 오랫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의 감성과 정신을 담아온 존재였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피어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깊은 향을 풍기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국화는 중국 원산의 여러해살이풀로 오랜 세월 재배되며 수백 가지 품종이 만들어졌습니다. 노란색, 흰색, 빨간색, 자홍색, 보랏빛 등 색만으로도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꽃잎의 배열과 크기에 따라 대륜국, 중륜국, 소국 등으로 나뉘기도 합니다.
눈으로 즐기기 위한 관상용뿐 아니라 말려서 국화차를 만들고, 국화주로 빚거나 화전으로 부쳐 먹는 등 식용 문화도 깊게 뿌리내려 왔습니다. 국화차는 건조한 계절에 입술이 텄을 때 좋다는 옛말처럼, 겨울과 잘 어울리는 은은한 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화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함보다 ‘지조’에 가까운 성질입니다. 늦가을 서리가 내려도 쉽게 시들지 않고, 묵묵히 꽃을 피운 뒤에야 계절을 떠나보내는 품격 있는 생태는 예부터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12월 13일의 탄생화인 자홍색 국화의 꽃말은 ‘사랑’입니다. 화사함보다는 부드럽고 절제된 온기를 품은 사랑이지요. 짙지도 흐리지도 않은 자홍빛은 속마음을 조심스레 비추는 듯한 색입니다.
국화는 색에 따라 의미도 다양합니다.
빨간색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진솔한 고백을,
흰색은 ‘성실’과 ‘감사’, ‘고결’을,
노란색은 ‘실망’ 또는 ‘짝사랑’이라는 약간의 슬픔을 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국화는 붓 끝으로 섬세하게 그린 감정처럼 색마다 뉘앙스가 다릅니다. 자홍색은 그중에서도 부드럽게 스며드는 마음, 오래 지켜보고 싶은 사랑의 온도를 상징합니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불리며, 선비의 절개와 은둔의 미학을 상징해 왔습니다. 특히 서리를 맞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모습은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고고하게 세상과 거리를 둔 채 품위 있게 피어나는 선비의 마음을 닮았다고 여겨졌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관직을 벗고 자연과 가까운 삶으로 돌아갈 때 국화를 심어 스스로의 지향을 표현했습니다. 조용히 자연을 벗 삼되, 그 마음은 절대로 속되지 않은 채 곧게 서 있는 삶. 국화를 사랑한 많은 시인·화가들의 흔적 속에는 이런 정신이 오래도록 배어 있습니다.
국화는 또한 오래 사는 의미를 품은 꽃입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은 중국에서 비롯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산에 올라 맑은 바람을 마시며 국화 향이 밴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던 풍류는, 자연을 벗 삼아 마음을 씻어내는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국화주 한 잔에 담긴 기원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국화는 그렇게 사람의 삶과 소망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국화가 황실의 문장으로 쓰이며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식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오랜 재배 역사 속에서 절개와 장수의 의미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의 공식 상징으로 국화를 지정한 적은 없지만, 선비 문화와 풍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민 정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진시황이 황금빛의 불로초를 찾기 위해 서복을 동쪽으로 보냈다는 유명한 이야기 속의 불로초가 사실은 ‘황색 국화’였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인식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또 중양절의 유래가 된 설화도 흥미롭습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가족 모두 산에 올라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자, 돌아와 보니 집에 있던 짐승들이 죽어 재앙을 대신해 주었다는 이야기. 그 뒤로 사람들은 해마다 이 시기에 높은 곳에 올라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풍습을 이어 왔습니다.
오늘, 12월 13일. 자홍빛 국화를 떠올리다 보면 묘한 따뜻함이 마음에 고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기운을 정성스레 품고 겨울을 준비하는 꽃처럼, 우리도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하며 자신을 다독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홍색 국화는 화려하게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깊은 사랑과 따뜻한 정서를 건네는 꽃입니다. 오늘 이 꽃과 함께, 은은하게 마음을 덮어주는 계절의 온기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학명: Chrysanthemum morifolium
● 과명: 국화과(Compositae / Asteraceae)
● 원산지: 중국
● 개화 시기: 9~11월(늦가을~초겨울)
● 특징: 강한 생육력, 긴 절화 수명, 다양한 원예 품종 존재
● 자홍색 국화의 꽃말: 사랑
● 기타 꽃말: 빨간색–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흰색–성실·진실·고결 / 노란색–짝사랑·실망·번영
● 문화적 상징: 사군자 중 하나(절개·은일), 중양절 풍습, 장수 기원, 동아시아 문학·예술에서 상징적으로 사용
● 활용: 관상용, 국화차·국화주·화전 등 식용 문화
https://youtu.be/CHHdPyM8W-c?si=G4lqDpeUwh3yUO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