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꽃과 나무가 아름다운 배롱나무
배롱나무를 생각하면 옛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처음 배롱나무를 본 것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 옆에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이 있다. 고풍스러운 정문 바로 옆 건물에 사무실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고종이 유년 시절을 보낸 옛 운현궁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나는 고무되어있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곳곳에는 옛 운현궁 건물인 양관과 초소, 우물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정원수와 괴석들이 남아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둘러보는 일은 하루 일과 중 행복한 일이었다.
초보운전자였던 내가 힘들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하며 물었다.
"이 선생님 저 꽃 이름 아세요?"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가지 끝마다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일이 많아 미쳐 보지 못한 꽃이었다. 모른다고 하자 경비 아저씨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저 꽃이 백일홍입니다. 꽃이 백일 동안이나 피는 귀한 꽃이에요."
으응,
백일홍이라고. 내가 아는 백일홍은 일 년생 화초인데 이 백일홍은 나무가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였지만 경비 아저씨의 호의에 웃음으로 감사를 표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서둘러 백일홍 나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나무가 목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배롱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롱나무는 붉은 꽃도 아름답지만 줄기와 가지가 더욱 아름다운 나무이다.
그렇게 배롱나무를 알게 된 후 수시로 그 배롱나무 아래에서 서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배롱나무 옆 돌 위에 올라 보면 돌담 너머 운현궁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 건물 현판이 보인다. 그 현판 글씨가 추사 선생의 친필이기 때문이었다.
대원군이 심었을지 모르는 배롱나무는 갑작스럽게 생긴 주차장으로 원치 않는 자동차 매연에 신음하고, 구한말 한때 실권자였던 대원군의 사랑방인 노안당은 적막에 잠겨있어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나라도 차를 가지고 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누군가가 베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덕성여대 정문 안 교직원을 위한 주차장 옆에 배롱나무 꽃은 붉게 피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배롱나무는 귀한 꽃이었다.
배롱나무꽃을 보려면 유서 깊은 사찰이나 고궁을 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배롱나무는 너무 흔해서 탈이다.
심지어 길가 가로수로 배롱나무를 심은 곳도 있다. 아름다운 배롱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귀한 대접을 받던 나무가 천대를 받는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배롱나무가 몇 그루 있다. 가까운 공원에도 아주 많이 있다. 멀리서 보면 한 무더기 붉은 꽃송이로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배롱나무꽃은 수많은 꽃송이들의 집합이다. 꽃 잎 끝자락 고운 주름은 너무 아름답다.
배롱나무꽃은 여름부터 모든 곡식이 익는 가을까지 핀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고 불렀다. 또 배롱나무를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르는 데 배롱나무 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배롱나무는 사찰이나 서원에 주로 심었었다. 사찰에 심은 이유는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스님들 역시 속세의 묵은 때를 벗고 수행정진에 힘쓰라는 뜻이며, 서원에 심은 이유는 배롱나무가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에 장차 관직에 나가 청렴한 관리가 되라는 깊은 뜻이 숨어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배롱나무는 충직한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배롱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으면, 붉은 꽃 대신 마치 소복을 입은 것처럼 흰 꽃이 무려 3년 동안 핀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렇듯 충직과 기개 그리고 부귀의 상징이었던 배롱나무를 사대부들은 정원에 심어 곁에 두고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귀한 나무였다.
그러나 사대부들이 사랑한 배롱나무는 민간에서는 전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저금 타는 낭’이라며 무덤에 심는 나무라는 생각에 집안에 절대로 심지 않았다.
그것은 배롱나무의 껍질 때문인데, 회색의 매끄러운 배롱나무 껍질은 살과 피부가 없는 뼈와 같고 빨간 꽃은 핏물 같아 죽음을 연상하는 불길한 꽃이라는 속설 때문이었다. 또 남부 지방에서 귀신을 쫓는 나무라며 무덤 주변에 심는 풍속이 있었다.
같은 나무를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속설이 생긴 것은 사대부들의 농간이라고 한다면 논리의 비약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귀히 여기는 나무를 일반 백성들이 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능소화처럼 말이다.
배롱나무(crape myrtle)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쌍떡잎식물 도금양목 부처꽃과의 낙엽 소교목으로 학명은 Lagerstroemia indica이다. 다 자랐을 때 높이는 약 5m에 이르며, 줄기는 곧게 자라지 않고 굽어지면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꽃의 개화기가 백일 가까이 되어 백일홍 나무라고 하며,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즈름 나무 또는 간지럼 나무라고 부르는 데,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어서 잎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 배롱나무 잎은 미세한 진동에도 잘 움직인다고 한다.
특히 배롱나무 줄기의 연갈색의 껍질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얇게 벗어져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 흰색의 무늬가 생긴다.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없는 배롱나무 줄기는 아주 매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는 나무'라고도 부른다.
타원형의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길이 2.5∼7cm, 나비 2∼3cm이다. 겉면에 윤이 나고 뒷면에는 잎맥에 털이 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양성화로서 7∼9월에 붉은색으로 피고 가지 끝에 원추 꽃차례로 달린다. 꽃차례는 길이 10∼20cm, 지름 3∼4cm이다. 꽃잎은 꽃받침과 더불어 6개로 갈라지고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로서 가장자리의 6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서 타원형이며 10월에 익는다. 보통 6실이지만 7∼8실인 것도 있다.
꽃은 분홍에 가까운 붉은색이 가장 많고 드물게 흰색과 붉은 보라색 꽃이 있다. 희 배롱나무(for. alba)는 붉은 배롱나무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이 흰 배롱나무를 목동 고등학교에서 보았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하게 피어있는 새하얀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배롱나무 번식
실생이나 휘묻이 또는 포기 나누기, 물꽂이와 삽목으로 한다.
실생은 가을에 종자를 채취하여 땅에 묻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남부 지방에서는 자연 발아도 잘 된다. 파동 묘는 발육이 빨라 2~3년에 1m 이상 자란다.
삽목은 이른 봄 싹트기 전에 지난해 자란 굵은 가지를 15~20cm 길이로 잘라 1/3 정도 밭이나 진흙에 꽂아두었다 뿌리를 내리면 그대로 두고 키우다 이듬해 봄에 이식하면 된다.
재배방법
배롱나무는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부식질이 많은 비옥한 사질 양토에서 잘 자란다. 옮겨 심는 적기는 봄에 잎이 싹트기 전과 꽃이 모두 진 10월~11월이 좋다. 심기 전 구덩이를 뿌리보다 더 크게 파고 퇴비나 부엽토를 많이 넣고 심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거나 비료가 부족하면 꽃이 잘 피지 않으므로, 겨울에 소똥이나 계분, 퇴비 등을 뿌리 주위에 듬뿍 주면 좋다.
자료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배롱나무 [crape myrtl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배롱나무 전설
오랜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마을에 사는 사룡과 소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섬에 사는 이무기가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를 하자 사룡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무기와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사룡은 싸움에 나가기 전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이무기가 사는 섬으로 떠났다.
“내가 이무기와 싸워서 지면 뱃전에 붉은 깃발을 걸고, 이기면 흰 깃발을 걸고 돌아오겠소”
사룡이 섬으로 떠난 뒤 소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앉아 사룡의 배가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며칠 뒤 절벽 위 소녀의 눈에 저만치서 사룡의 배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깃발을 보니 이게 웬일인가? 뱃전에 붉은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이무기와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한 소녀는 절벽 위에서 바다로 몸을 날리고 말았다.
잠시 후 사룡이 탄 배가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배가 도착했을 때 소녀는 이미 바다에 빠져 죽은 뒤였다. 자신이 이기고 돌아왔는데 소녀가 왜 절벽에서 떨어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룡은 너무나 슬펐다.
그러다 사룡은 자신의 뱃전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소녀가 죽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명 자신은 흰 깃발을 매달았는데 사룡이 찌른 칼에 찔려 이무기가 몸부림을 치면서 그 피가 흰 깃발을 물들였다는 것을....
사룡은 슬퍼하며 소녀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다. 이듬해 봄 소녀의 무덤에서는 소녀를 닮은 나무가 솟아나 자라더니 여름이 되자 붉은 꽃이 피었다. 그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이다.
배롱나무 꽃말은
'부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다.
흰 배롱나무 꽃말은
'수다스러움', '웅변', '꿈',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