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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Mar 22. 2024

햇살은 정하게 하는 힘이 있을 테니까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98일 차, 20200623

2년 만이다. 햇빛을 쬐러 공원 들판에 들어 누운 지.

바쁨으로 힘겹게 지냈던 2019년 여름. 한량이처럼 보냈던 2018년 여름.

그 2018년 여름에는 자주 오후 여름 햇살을 받으며 몸을 태우고 마음도 태우고 감정도 태우고, 햇빛 아래 부정적인 감정을 다 태워버리길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마음속에서부터 피어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따금씩 나 자신조차 햇빛에 증발되어 사라지길 바라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여유롭고 편해 보였던 그 해 여름. 2년이 지나가는 지금 되돌이켜봐도 불쌍할 만큼 위태위태한 걸음을 매일 내딛고 있었다.


서쪽을 향해 펼쳐있는 호숫가 근처 공원의 잔디밭은 오리 똥으로 흙과 잔디가 잔뜩 뒤덮여 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지나다니는 오리들 그리고 그들이 남겨놓은 똥과 털들을 교묘하게 피하여 독일인이 된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스카프를 피고 자리를 잡는다.

어림잡아 200명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또 아무렇지 않고 옷을 훌러덩훌러덩 벗는다.

예전 서울의 양재 시민의 숲에서 웃통을 벗고 자전거를 타다가 공무원에게 발견되어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모두에게 경고장을 보내고 싶어 할까.


똥 사이사이로 교묘하게 피해서 자리를 잡고 나면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따뜻하다. 햇살이 참으로 따뜻하다.

온몸으로 눈물을 흘린다. 햇살을 받으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피부 속까지 햇살이 파고들어 오래 묵은 안 좋은 것들을 내 몸에서 다 소독시켜 주길 바란다.

햇살이라면 그런 힘이 있으니까. 햇살은 정하게 하는 힘이 있을 테니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2018년 햇살 가득 받던 그 시기와 다르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햇살을 받아 피부를 태우는 내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제는 그 여름과는 다르다.

희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하루. 비록 의지가 약해서 뜻한 바는 다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속에 자리한 작은 소망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빛으로 달궈진 내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새로운 에너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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