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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뗄라 May 05. 2024

집이라는 세계

우리의 작은 우주에 정착하며

이사를 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떠서 열린 방문 너머로 부엌 싱크대를 가로지르는 빛줄기를 보면 아직도 설렌다. 마루의 고운 나뭇결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깨끗하고 아늑한 집이 우리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어나서 아무것도 한 게 없어도 뿌듯하다. 2년 뒤에 또 이사할 집을 안 찾아봐도 된다고 생각하면 든든해지기까지 한다. 어떤 공간에 이만큼 애착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이 집에 살기 전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이 집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결혼 후 두 번째 월세 집을 얻어 살던 우리 부부는 2월 중순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올해의 기금이 벌써 절반 가까이 소진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알아보니 우리의 소득 수준이 대출 자격 요건에 턱걸이로 맞아들었다. 연말에 또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 내집마련의 기회 같았다.


그때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집을 보러 다녔다. 남의 집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종종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적당히 수리가 잘 된 집은 교통편이 불편했고, 위치가 마음에 든다 싶은 집은 예산을 초과했다. 마음 속 저울질이 멈추지 않았다. 별 수확 없이 동네 아파트들을 거의 다 섭렵했을 즈음, 결혼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아파트 단지에 매물이 나와서 큰 기대 없이 보러 갔다. 우리가 살던 집의 바로 앞 동이었다. 베란다 밖으로 키가 큰 가로수들이 일렬로 내려다보였다. 입주 이후로 25년 동안 아무것도 수리하지 않았지만 이전까지 살던 사람들이 깨끗하게 쓴 티가 났다. 바로 계약을 했다. “내 집이다 싶은 집은 딱 알아보게 돼 있다“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집은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인테리어에 문외한인 나는 공사를 업체에 맡겨서 쉽게 해결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워낙 인테리어 사기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 계획에 없던 대출을 받았으니 공사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했다. 계약금을 넣은 날부터 남편은 유튜브를 보며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셀프 인테리어 카페에 들어가 정보를 얻었다. 마루, 목공, 타일, 전기 등 각각 업체에 직접 연락해 계약을 했고, 화장실 방수 공사와 베란다 페인트칠은 직접 했다. 문 손잡이, 조명 스위치 하나까지 직접 정해야 할 때 그는 심드렁한 나의 반응을 이겨내고 가장 멋진 것을 골라 새로운 집을 만들어갔다. 나중에는 화장실 공사 업체 사장이 그의 안목을 알아보고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할 정도였다. 남편은 확실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고생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나는 늘 아니라고 대답해왔다. 성인이 되면 다들 하나씩 만든다는 청약통장조차 만들지 않았다. 집을 가진다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것은 경제적인 형편과 더불어 불안정함에 익숙해진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어릴 때 살던 집을 떠올리면 방의 삼 분의 일을 채운 상자들이 생각난다. 아빠가 팔던 번호키 도어락의 재고였는데, 정작 우리집 현관문엔 달 수 없는 것이었다. 상자로 쌓아올린 벽 옆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종이 상자 특유의 눅눅한 냄새가 났다. 우리 가족은 철마다 바뀌는 아빠의 사업 아이템과 함께 이사를 다니다가 여덟 살 무렵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후에는 대화가 없었다. 서로를 없는 사람처럼 여기거나 지나치게 악한 사람으로 몰았다. 할아버지 댁은 해가 잘 드는 남향이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늘 냉랭했다. 나는 그 집에서 10대를 버텨내고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집‘이라는 감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탓에 올해 일어난 이 사건은 더욱 더 놀랍게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이제 집에 있는 게 제일 행복한 집순이가 되었다. 좋은 집을 갖게된 것도 있지만, 그 집에서 함께 웃고, 울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금방 꼭 안아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머무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익숙했던 나를 유주택자로 정착시켜 더 열심히 살게 해준 남편에게, 당신이 있는 곳이 나의 집이며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집에서든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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