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
퀴즈 나갑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나폴레옹’(6일 개봉)에 없는 것. 나폴레옹의 번뜩이는 군사 전략, 과감한 결단과 넘치는 권력욕, 코르시카섬 촌뜨기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이후 왜 프랑스 ‘시민’에게 지지받고, 어떻게 유럽을 정복했으며, ‘황제’의 지위에 올랐는지. 반대로 영화에 있는 것. 나폴레옹이 아내 조제핀에 삐지기, 조제핀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기, 전쟁터에서 구구절절 편지 쓰기.
영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찌질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데에 몰두합니다. 작전을 짜는 자리에서 졸고, 전쟁터에선 헥헥대요. 쿠데타는 동생에게 등 떠밀려 일어납니다. 촌극이 따로 없죠.
영화 속 나폴레옹의 행동은 대개 조제핀(바네사 커비)을 의식하며 이뤄지는데요. 조제핀이 외도한다는 얘길 듣고 전장을 버리고 급히 파리로 귀국하는 게 대표적이에요. 영화 속 대사처럼 나폴레옹은 조제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문제는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조차 평면적이란 점입니다. 나폴레옹의 워낙 전 유럽을 누비는 탓에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둘의 서사는 주고받는 편지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치러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폴레옹의 많은 행동이 느닷없이 느껴져요. 나중엔 조제핀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나폴레옹은 아내에게 집착하는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습니다. 어떤 면에선 운이 좋아 황제까지 된 ‘조커’ 같아요. 사실 호아킨은 감독의 전작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막시무스를 질투하는 지질한 황제 코모두스를 연기했습니다. 조제핀 역의 바네사 커비의 매력적 저음도 소모됩니다. 나폴레옹이 매력이 없는데 연인의 매력이 살아날 리 만무하죠.
대관식 장면 등 명화를 연상케 하는 영화의 비주얼은 훌륭하지만 주변적 순간만 세심하게 다루는 터라 공허합니다. 인물이 우스꽝스러운데 배경이 장엄한 게 무슨 소용일까요. 툴롱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모스크바 원정 실패, 마지막 워털루 전투까지 주요 전쟁 장면은 스펙터클 하지만 역시 나폴레옹이 승리나 패배에 이르는 과정은 생략된 채 전장 묘사에 치중합니다. 여기에 덤으로 스콧 감독은 영국인 아니랄까봐 영국이 승리한 워털루 전투 연출에 유독 공을 들였습니다.
나폴레옹을 권력에 눈먼 정복자나 군사적 천재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릴 필요는 없지만 나폴레옹을 소재로 했다면 짚어야 할 부분은 다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차라리 프랑스 혁명 이후 우왕좌왕하는 프랑스 ‘시민’들을 꼬집는 블랙코미디였다면 나폴레옹에 대한 전복적 묘사를 이해했을 거에요. 그런데 전쟁 장면은 매번 정공법으로 처리됩니다.
해외에선 역사 왜곡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파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단두대 처형 장면을 봤다거나 나폴레옹 부대가 이집트 피라미드를 향해 포를 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사실 호평을 받았던 스콧의 전작 ‘글래디에이터’도 로마사 연구자들이 뒷목 잡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극장판에 대한 아쉬움은 감독판에 대한 염원으로 이어지는 분위기 입니다. 2시간 38분의 극장판도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년에 애플TV+로 공개되는 ‘감독판’은 4시간이 넘습니다. 감독판에 대한 기대 역시 이유가 있습니다. 스콧 감독은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에서 스토리를 대폭 개선해 극장판의 부정적 평가를 뒤집은 전력이 있습니다.
<제 결론은요> ‘안 감’
‘감독판’ 만이 이 영화를 구원할지니.
아름다움 ★★★
인물매력 ★
순수재미 ★★★
역사왜곡 ★★★★
종합점수 ★★
※제가 쓴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브런치에 따로 쓸 때도 있어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609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