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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Dec 07. 2023

세기의 천재와 함께 산다는 것…‘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영화감



위대한 예술가의 주변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6일 개봉·20일 넷플릭스 공개)은 20세기 위대한 음악가이자 미국의 역대 최고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의 영화인 동시에 그의 아내 펠리시아(캐리 멀리건)의 영화입니다.


사랑과 증오, 인정 투쟁으로 얼룩진 그들의 굴곡진 역사는 고전 영화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매혹적인 미장센과 쿠퍼와 멀리건의 인상적인 연기, 그리고 번스타인이 남긴 위대한 음악과 함께 흐릅니다. 음악과 미술, 이야기가 리듬이 되고 선율이 돼 휘몰아치는 ‘번스타인 부부 교향곡’이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흑백 부분이 좀 더 영화적으로 공들인 느낌이 나서 좋아요. 넷플릭스 제공


번스타인은 ‘팔방미인’이란 말이 딱 맞는 세기의 천재였습니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이 동유럽계 유대인은 25세의 나이에 깜짝 대타로 뉴욕 필하모닉과 카네기홀에 선 뒤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군림했어요. 또 ‘내면의 여름이 불러주는 노래’는 그를 작곡가로 만들었습니다. 클래식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음악까지 다방면에 두각을 드러냈죠. 클래식을 잘 몰라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번스타인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더해 여러 클래식 해설 프로그램을 남긴 방송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방송은 해외에 수출됐고, 우리나라에도 방영됐습니다. 미국에서 번스타인은 우리나라로 치면 마에스트로 정명훈에 백종원의 대중적 이미지가 더해진 것 이상이랄까요.


실제 레너드 번스타인과 싱크로 무엇. 넷플릭스 제공


다재다능하지만, 그런 만큼 내면이 변화무쌍했던 번스타인과 배우를 준비하던 칠레 출신 펠리시아는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펠리시아가 데려간 극장에서 주고받는 둘의 대사는 앞으로 둘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 의미심장합니다.(직접 보세요)


음악가로, 배우로 각자 승승장구하며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부부의 모습은 행복한 가정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외향적인 지휘자와 내향적인 창작자를 병행하는 번스타인의 모순은 그의 말처럼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화장실 문을 닫지 않을 정도로 내면에 불안과 외로움을 갖고 있으면서 밖으로는 쾌활한 척하는 번스타인은 모순덩어리죠. 더구나 그는 정신적으론 여성에게 끌려도 육체적으론 남성에게 끌리는 양성애자였습니다. (어쩐지 펠리시아랑 등 맞대고 기댈 때 제일 행복해 보이더라.)


연출가 브래들리 쿠퍼 영화력 무엇.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번스타인은 파국을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노년까지 지휘자이자 작곡가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불안정한 번스타인이 균열되지 않고 예술가로서 입지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영화를 통해 아내 펠리시아 덕분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펠리시아가 메마르고 갈라질 정도로 그녀의 생기를 쫙쫙 빨아들였어요. 예술가의 재능에 대한 헌신 속에는 주변인의 초인적인 헌신이 숨어 있는 법이죠.


그렇다고 번스타인을 마냥 나쁜 놈으로 묘사하는 건 아닙니다. 영화는 번스타인이란 빛을 다루면서 그림자인 펠리시아를 소외시키지 않는 동시에 펠리시아를 재평가하면서 번스타인을 폄훼하지 않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에요.


결국 모순적 성향으로 인한 내적 분열을 음악으로 승화한 번스타인에 대한 전기이자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한 펠리시아에 대한 추모의 성격을 모두 가집니다.


저 검정 마스크가 야닉 네제-세겡인듯. 넷플릭스 제공


영화 내내 번스타인이 작곡한 음악이나 그가 지휘한 전설적인 실연이 겹칩니다. 클래식 팬이라면 굉장히 기대되는 요소일 거에요. 펠리시아와 사랑에 빠질 때 흐르는 번스타인의 ‘캉디드’ 중 ‘파리 왈츠’는 행복감을 고조시키고,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될 때 흐르는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는 둘의 갈등을 예고합니다.(‘헤어질 결심’에 나왔던 그 곡이에요.)


쿠퍼는 외형은 물론 목소리까지 말년의 번스타인과 비슷합니다. 쿠퍼가 성대모사 달인이 아니라면, 인공지능(

AI)의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5악장 부분에선 온몸으로 지휘하며 팔짝팔짝 뛰기도 합니다. 원래 레너드 번스타인은 지휘할 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로 유명한데요. ‘레니 댄스’란 말이 있을 정도죠. 쿠퍼는 지휘 장면을 익히는 데 6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쿠퍼에게 지휘 동작을 알려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미국 메트로폴리탄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세겡이 자문했습니다. 네제-세겡은 캐나다 출신이긴 하지만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에요. 그는 런던심포니와 함께 OST

를 녹음했습니다.


제작엔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참여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했던 스필버그는 원래 이 작품을 직접 연출하려다 쿠퍼에게 맡겼습니다.


미국 클래식계는 번스타인이 활동하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럽 출신 지휘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북미 대륙 출신은 그에 비해 적은데요. 그런 점에서 미국 대표 지휘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문화예술계가 똘똘 뭉쳤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휘 장면 더 나오면 좋겠는데, 사실 번스타인은 공연 실황 많이 남김. 넷플릭스 제공


<제 결론은요> ‘감’

이 정도 압도적 음악과 영상미는 스크린으로 경험해야죠. 넷플릭스론 재관람 추천.


아름다움 ★★★★

인물매력 ★★★★
순수재미 ★★★★
지적허영 ★★★★
종합점수 ★★★★


※네이버 기사로도 볼 수 있습니다ㅜ

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609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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