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왕국의 굽은 초원, 프라하로 향하는 블타바 강의 옛 중세도시
오늘은 프라하가 아닌 다른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라는 도시 투어를 신청해 놨다. 이 도시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부 보헤미아의 역사가 담긴 도시였다. 체스키란 보헤미아의 소유라는 의미로, 크룸로프는 강이 지나가는 만곡부(활 모양으로 굽은 부분)의 습지라고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하기 전에 일단 오늘도 뛰어야겠지?
언제나 날씨 요정이 함께 하는 여행 일정이다
비버는 언제 한번 잘츠부르크(Saltzburg) 나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봐야겠다.
프라하에 비버가 있는지 모르겠다. 찾아봐도 죄다 뉴트리아뿐이다. 얘네가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비버인 줄 알고 먹이를 줘왔기 때문이란다.
한참을 뛰다가 소리가 굉장히 특이한 새를 봤었는데, 논문 검색해서 찾았다 이 샛기
휘파람 부르는 새라고 한다. 새소리가 되게 특이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3f9w2TuMOM
이 강가 주변에 되게 신기하게 생긴 오리 샛기도 있었는데 독일에서 본 놈이랑 비슷하다.
댕기 흰 죽지(Polák chocholačka)라는 바닷새라고 한다. 청둥오리랑 같이 공존하면서 물속으로 다이빙하여 사냥한다.
얘는 별로 울지도 않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내 인생에 이상한 새 울음소리 원탑은 물까치 울음소리이다. 내 정신도 혼미해지는 그 집단의 새소리임.
여기 편의점 사장님 아드님께서 뮌헨으로 유학을 갔다고 하셨다. 베를린에서 왔다니까 독일어 하냐고 물어보시더니 시원시원하게 독일어로 대화를 해주셨다.
가이드께서 픽업하러 오셨다. 자 이제 출발하자.
이곳 휴게소는 무료였다. 체코 고속도로는 비넷(Vignette)이라는 통행권이 필요한데, 국도 아닌 곳이다 보니 이런 큰 휴게소는 화장실비를 안 받는다고 한다. 비넷 벌금이 20~30만 원으로 좀 세다.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에 가기 전에 흘루보카 나트 블타보우(Hluboká nad Vltavou) 라는 마을의 성에 갔다. 인구 약 5500명으로, 흘루보카 성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Hluboká는 깊은 이란 뜻이며, Vltavou는 주님의 성이란 의미이다.
13세기 보헤미아 왕에 의해 지어져서, 19세기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가문으로 넘어가 네오고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이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은 독일에서 넘어온 가문인데, 부총리까지 할 정도로 뼈대 있는 가문이지만 이곳 지역에서 시장출마는 참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선글라스 하나 살 걸 그랬다. 눈뜨기가 힘들다
잠깐의 휴식을 갖고 다시 이동하는 중에 유채꽃 밭을 즐겨보기로 했다.
가족들이랑 함께 왔으면 좋았을걸, 나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다.
안에 들어가기에는 좀 그렇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프라하처럼 대도시보다 역시 유럽의 특색을 보려면 마을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유채꽃(Canola flow)의 꽃말은 쾌활, 명량 그리고 희망이다. 카놀라유를 수확하고 축산업에 사료로 사용되어 비료까지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매번 여행 올 때마다 이런 유채꽃 같은 사람이 한 명 떠오르긴 하는데, 나도 그런 에너지를 좀 갖고 싶다.
분명 말인데 어디가 머리고 꼬리냐? 분별이 안가
민들레의 꽃말은 행복과 감사임.
근처에 호수가 있었고 호수 너머로 오두막이 보였다.
나도 나이가 들면 이런 곳에서 생을 마감하진 않을 거고 초등학교 앞에서 솜사탕 팔면서 잼민이들 코 묻은돈으로 연명하고 살 거다
프라하에서 블타바 강을 가로질러 까를교를 건설했었는데, 그 블타바 강이 이곳에서 왔다고 한다.
강울 둘러싼 지형의 요새마을은 아직도 중세유럽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옛 문화를 간직하고 지키는 건 보기 좋은 것 같다. 어떤 국가들은 전쟁으로 복구하고 싶어도 복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이들은 그 수많은 전쟁에도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만약 인류가 미래 시대로 나아간다면 그때에도 이렇게 계속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이다. 프라하 같은 도시 건축물을 바꾸어 버린다면 프라하가 아니게 돼버리기 때문에 지금의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건축법도, 건물 에너지 효율의 실용성도,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후발주자로 뛰어드는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쟁력을 쥐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기존에 관광업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감상을 뒤로하고 일단 들어가 보자.
요새라고 불리기 적절한 장소인 것 같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강가는 아주 좋은 전략적 위치임에 분명하다.
지금은 시대에 맞춰 리프팅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 강을 따라 30분 정도 가는 코스가 있다.
마을이 생각보다 굉장히 아담하다. 10~15분만 걸어도 마을을 가로지를 수 있다.
요새의 위층에는 병사들이 묵었으며, 아래층은 감옥이라고 한다.
성의 군주 자식이 수감되어 죽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탑이 유명한데, 16세기에 지어진 저 고딕양식의 전망대는 360도로 마을 전체를 내다볼 수 있다고 한다. 높이 약 54.5m로 생각보다 높다.
옛 중세 유럽에는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행했다고 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유전자는 근친 시 그들의 자식은 유전적 결함(기형아)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그대로 유전적 결함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인데, 마치 그러지 말라고 신이 금지한듯한 이 유전규칙은 생물에게 주어진 특이한 형질이다.
논문에 따르면, 1-2 세대의 근친번식은 열성 유전자나, 부모의 유전병을 가질 확률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이게 3~4세대 이상으로 반복되면 문제가 된다. 대표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나, 영국 왕실의 혈우병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괜히 마을 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진지해진다.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전혀 꿀벌같이 생기지 않은 벌이 벽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걸 봤다. 너는 도무지 꿀을 채취할 거라고 생기지는 않았구나. 그래도 이런 몇백 년 역사를 가진 시골마을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을 이루며 살아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짓다 만듯한 이 집은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리모델링을 하다 발견되었다고 한다.
집주인이 실수로 벽을 깼는데, 그 안에 전 집주인이 그려놓은 벽화가 발견되었다. 마치 고대 문명을 발견한 듯한 이 상황은 재산 보호의 명분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창문이 많은 집은 그만큼 부자라는 인식이 있어서 남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창문을 숨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바로 제거하지는 못하고 벽으로 그냥 무식하게 덮은 거다. 일단 발견했으니 내버려두자는 의견으로 지금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보자
제비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생태계가 안정된 배산임수의 땅에 서식한다. 이 마을이 그런 풍요로운 곳이라는 의미이겠다. 부동산 값 꽤나 나오겠당
유럽은 흑사병이 굉장히 유명한데, 1346년 ~ 1352년 의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7천만~ 2억 명 가까이 사망에 이른 인류 역사 속 질병의 암흑기였다. 전염병인지 모르고, 서로 모여서 기도하다가 또 걸리고 옮기고 했던 것이다. 저 분수대는 마리아상으로 13개의 별을 갖고 있다. 유럽인들에게는 재채기나 기침을 하면 Bless you라고 말해주는 습관이 있는데, 병으로부터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라는 옛 표현이 이어진 것이다.
고딕양식은 신에 가까이 가기 위해 보다 높게 건축한 것인데, 흑사병이 지속되는 절망의 기간에 신에 대한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이후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바뀐 바로크의 건축법을 통해 역사를 볼 수 있다.
오묘한 감정이지만, 사람들 먹고사는데 발달된 과학의 기여만큼 효율적인 것이 있겠나
옛 중세 유럽에는 건물 번호, 지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물을 특정할 수 있는 특이한 모양의 간판들을 만들어 걸어놔서 분별하게끔 했다.
분짜 집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체코 마을까지 왔는데 전통 음식을 맛보는 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되었다.
빠네 갈릭 치즈 스프랑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 조리는 주방이 아니라 가게 내에 있는 화로로 직접 구워주기 때문에 불양 조절이 거기 화로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조리가 살짝 늦어도 맛은 환상적이었다.
요리 나오기 전에 먼저 흑맥주부터 마시장
밥 다 먹고 팁까지 쳐서 결제했다. 여기도 카드는 가능하다.
가게 바로 앞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
처마 밑의 문양은 되게 정교해 보이는데, 일반 패턴식의 벽 벽화와 좀 대조되어 보인다.
역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있다.
가이드님께서 여기는 일반 언덕길이고, 성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본다고 그랬다.
가이드님이 히든 코스라고 성에 가기 전 다른 스폿을 소개해줬는데, 중세시대 때 건설한 호텔 뒤편 테라스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제야 오래된 고풍스러운 느낌이 확 온다. 이런 시계를 사용하는 호텔은 처음 봤다.
그러나 비 오는 날에는 작동 불가하다.
조각상 뭔가 사람 문양이 있어서 좀 소름 돋았는데, 정교하니 잘 만든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날씨요정
너무 화창해서 더워 죽을 것 같지만, 비 오는 것보단 낫다. 그래도 비 오는 것도 보는 것도 맞는 것도 좋아하긴 하다.
청동으로 써서 그런가 녹이 흘러내렸다.
1309년에 지어진 이 고딕양식의 성당은 프라하 성의 비투스 대 성당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내부가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시원했다. 안에서만 있고 싶을 정도로.
무언가 영험한 이 느낌은 뭐지
시원하면 된 거야 너무 좋았다. 에어컨 틀어놨나
예수와 네포묵 성인의 조각상이 있는 이 다리는 사연이 있다. 이발사가 이 다리에서 죽었기 때문인데,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서자 루돌프 2세가 본인이 사랑하는 연인을 직접 죽여놓고 범인 색출을 위해 애꿎은 주변인들만 괴롭혔다. 이 서자가 정신질환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군주이기 때문에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발사가 본인이 죽였다고 자수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발사도 흰가운을 입는데, 의사처럼 시술도 하고 치료를 했었다고 한다. 서자가 사랑한 연인의 아버지임에도 죽어가는 딸을 살리지 못해 죄책감에 나섰다고도 여겨진다. 이 서자는 지금에서는 근친혼의 영향으로 정신질환을 가졌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볼거리가 상당히 많은 마을 같다. 이날 결혼하신 분들이 웨딩 스냅숏을 찍으러 왔었는데, 우리가 동선을 방해할까 봐 더 빨리 이동했다.
조금 가다가 기념품점이 보여 마그네틱을 샀게 되었다. 가격이 살짝 있긴 하지만 뭐 어떤가 아무튼 이제 진짜 성으로 가보자.
성에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님이 설명을 하나 더 해주셨다.
마을을 둘러싼 강가 그리고 성안에 군주들을 지키기 위한 강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해자라는 물을 채워 넣는 공간인데, 적이 오지 못하게 쳐놓은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 마을의 상징이 곰이기 때문에, 곳곳에 곰의 문양들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지금은 해자에 물을 채워 넣진 않고, 곰 2마리가 지키고 있다.
아니 그런데 생각보다 좁은 공간인데, 스트레스 안 받나 모르겠다.
곰이 잡식성이긴 하나 당근까지 먹어댈 줄은 몰랐네
원래 아버지, 아들 이렇게 두 마리 곰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한 마리는 퇴근했나 보다
이젠 진짜로 성 전망대로 가보자
살짝 경사진 길을 걸어 올라가 보게 된 뷰
사진 찍기 좋게 해 놓은 중세시대 큰 그림인가
위로 더 걸어 올라가 봤다.
전체를 볼 수 있는 턱이 있다. 바로 옆에 카페도 있어서 마실걸 구매할 수 있었다.
침입하는 적이 들어오기 힘들었을 것 같다.
이 마을 주민으로 나고 자랐으면 참 소중히 여겼을 것 같다
같이 투어온 일행분들께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눈에 띄는 건 40대로 전혀 안 보이시는 두 친구분이셨다.
이 여자분들 둘이 그동안 해외여행을 4~5번이나 오셨다고 한다.
마음 맞는 친구랑 함께 온다는 것도 부러운 요소이지만, 본인 속마음을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보기 좋았다. 덕분에 이런 곳은 누군가와 꼭 함께 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지난 모험에서도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함께 하게 되는 때가 언제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래 아무튼 이제 다시 투어를 마치고 프라하로 복귀하자
가이드님께서 친절히 구시가지 광장에 내려주셨다. 언제 또 인연이 되어 만나 뵙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참 감사한 인연이었다.
검프 하나 때문에 다시 오게 된 박물관인데, 초콜릿은 뭘 사야 될지 모르겠네
이 영화 속 주인공의 순수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애 이야기는 빼고 말이지.
다음날 있을 약속을 대비하여 초콜릿들을 좀 사갔다. 멀리서 오신 분들인데 빈손으로 가면 예의가 아니지
짐캐리 인형도 있었다.
이제 숙소로 복귀해서 저녁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로 맥주가 잘못 나왔다 그냥 마시지 뭐
흑맥주만 마셨었는데, 라거도 좀 먹어보라는 의미이겠다 흐흐
짜장면 + 탕수육을 시켰었다 560코루네였었나 더럽게 비쌌는데 비싼 값어치를 했었다.
와 아직도 진짜 잊히지 않는 맛이었네
무언가를 철 지지대에 묻혀놓은 거 같은데 소금인가? 뭘 자꾸 핥고 있지 했다
이날은 내일 일정을 위해 바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많이 수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뭐 어쩌겠나 마음의 부담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체코 여행 5일째의 밤이 마무리가 되었다.
3줄 요약
1. 체코의 또 다른 매력,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로 향했다.
2. 중세유럽 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3. 체코는 내가 너무 편협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괜찮았던 국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음식은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