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괴로움을 느끼는 상황이 있다. 잔잔한 공기가 소리 없는 압박으로 느껴지는 이 상황에 편히 마음 둘 곳 하나 없지만, 애써 무덤덤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상처 받기 쉬운 이들이다. 이들은 이런 상처들이 마치 별 것 아닌 이야기 거리를 씹어 대듯이 흘러가는 시간에 숨을 돌려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간은 늘 상처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하게끔 만들어져있다.
사람의 생은 역경의 파도를 마주하도록 짜여져 있다. 어차피 겪어야될 물결들은 강력한 소용돌이든 잔잔한 유속이든 그들의 이야기로 써내려진다. 이런 이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고 있는 시간은 아무 성분도 없이 그런 이들의 곁에 머무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었을 때, 알게 모르게 길을 알려줄 때가 있다. 마치 이곳으로 가야 된다며 손길을 내미는 순간이다. 당사자는 볼 수 없는 이미 정해진 답을 가리키듯이 말이다.
사람의 몸은 그런 생의 순간들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객관적으로, 나의 지나온 시간들은 스스로 바라볼 수 없다. 나는 내가 험난한 산을 넘었다고 믿었지만 타인이 보면 뒷동산 산책이 따로 없다. 내가 도움 받았다 믿으면 덕이 많은 생, 아니면 독불장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나로인한 선택들인 것이다.
이들이 가진 이야기는 나와 다르듯 다르지 않았다. 상처 받기 쉬운 것만 좀 제외하면, 발버둥 쳐야만 하는 생을 헤쳐 나가는 것은 너도 나도 똑같은 이야기 일 수 있다. 물론, 빛이 나는 이들의 생에 등대 빛의 도움이 필요 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나에게 나비가 머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