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년서원 Aug 14. 2024

가업을 접고 떠난 통 큰 해외여행

안식년 좀 가질게요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으신가요? 저의 경우엔 "여기 주인 바꼍습니까!"였습니다. 수없이 들어 그냥 웃음으로 대신한 쓸쓸한 말이죠. 지난 일을 돌아볼 때 가장 밟히는 말입니다. 인접한 나라 일본의 경우엔 대를 이어 가업을 꾸려 나가는 게 전통이며 자부심입니다. 그 집을 찾는 매니아들은 그 집만의 차별화된 음식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키워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화일 뿐입니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면서 자주 오시는 단골손님들께는 일일이 인사를 남겼습니다. 모월 모일 자로 가게를 닫기로 했다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 모두가 한결같이 하는 말은 "아니 왜요?", "이제 우린 어디 가서 식사를 해야 합니까?", "정말 영원히 먹을 수 없는 것입니까?"였다. 그러면서 역시나 일본을 빗대며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음식문화 생태계는 변화하고 진화하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업주로서 부족했을까요? 자부심이 없었을까요?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이젠 그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되었기에 담백하게 정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며 자영업이 가야 할 방향도 알게 되고 시장을 분석하는 안목도 생겼습니다. 그냥 하지는 않았네요. 그렇게 숙고를 거쳐 50년의 전통을 우리 손으로 거두고 안식년을 맞았습니다.

 



아일랜드 속담에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한쪽문을 열어 두신다.'라고 했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생의 시작에서가 아니라 생의 끝에 가서 자신의 영혼을 돌본다고 합니다. '통 큰 해외여행'도 그런 취지에서 나왔고 내면의 치유를 위한 휴양이었습니다.


'통 큰 해외여행'이라고 말하고 보니 대단한 월드 투어 같지만 순전히 주관적 나의 느낌표입니다. 다른 이유를 다 차치하더라도 자영업으로 매인몸이 되고 보니 변변한 국내여행에 대한 기억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큰 시누님 직계가족 3대가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이 있었고 우리도 그 코스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장녀를 여행 가이드로 한 '베트남 자유여행 5박 7일'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여행 피로도가 높은 나에게 맞춤형이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빈펄' '다낭' 풀빌라에서 먹고, 자고, 일어났던 기억은 신혼여행보다 달콤했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면 저녁마다 큰 시누님 네로 건너가 이브닝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사는 게 바빠 얼굴볼일이 쉽지가 않았는데 여행이란 테마로 만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곳에서 나의 생일도 보냈으니 그 여행의 의미는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부족합니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던,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이유가 있다면 그때 그 순간에 내 마음이 어떠한가 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여행자의 행복지수가 여행지의 퀄리티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가족여행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이 좋았던 건 어제까지 나를 묶고 있던 백가지 옵션에서 놓여났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완전한 무장해제가 가져다준 최고의 순간을 온몸으로 맛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최고의 여행이라 이름합니다.


시간의 여유란 것을 여행을 통해 느껴보았고 그렇게 막 쓰도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통장의 잔고가 넉넉할 때의 기분과 다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시간 부자를 욕망합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그 어떤 권력보다 솔깃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의 비밀을 풀고 나니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보입니다. 30대 중반에 생업전선에 나가서 50대 중반에 주부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매시간 매초가 너무도 귀하고 고맙습니다. 시절인연의 새로운 행보는 어디일까만이 지금 이 시간 이후의 테마입니다.





"주인 바꼍습니까!"

1969년에 시작한 가업이니 그동안 누적된 단골들이 많았던 거죠. 한 곳에 터전을 잡고 반백년을 이어왔으니 그날그날 옛손님들이  회전문처럼 던진 의구심 많았던 그 말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1도 도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도 삭아서 효소가 되었고 다른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가업을 함께 지켜왔으며 많은 것을 함께 해내며 힘든 구간을 같이 걸어온 나의 전우 남편님! 당신 참 많이 수고했습니다. 안식년을 당신과 함께~~~  





 

이전 01화 미련 없이 접은 가업경영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