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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서원 Aug 26. 2024

그렇게 경단녀가 되었습니다

완전한 제로 세팅

한 번쯤 삶의 지도를 펴고 '나'를 찾아보셨나요? 살아가는 어디쯤에서 내 삶이 표류할 때가 있습니다. 가업을 내려놓으며 과거의 모든 이력이 리셋되었습니다.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많은 것 들의 도전을 받는 현타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깨끗이 초기화된 나의 경력은 사회와의 연결을 원했지만 번번이 실패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나름 괜찮았던 나의 이력은 온라인 그 어디에도 없었고 경력과 나와의 접점을 찾지 못한 떠돌이로 한동안 존재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을까요? 인터넷 검색조차 서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껌하나 조차 살 수 없는 '청학동아낙네(?)'였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는 미래를 생각하라! 일단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던 초기 결심을 좀 앞당겼습니다. 시대적 간극을 좁혀 들어가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어 우선 기본기를 갖추는 일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그쯤에서 설움이 밀려왔습니다. 자영업자로 앞만 보고 가는 동안 바깥세상과의 디지털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져있었기에 소외당한 느낌이었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5060 세대가 할 수 있는 것!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삶이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산 넘어 산! 디지털 격차가 하루아침에 좁혀질리는 없었고, 배울수록 난해해서 울렁증이 나기도 하고 그냥 하던 대로 살면 안 될까 싶은 마음에 외면도 해보았지만 어림없는 소리였죠. 디지털 리터러시는 훈민정음 떼듯 반드시 알아야 할 시대적 필수과목이었습니다. 디지털 전반에 대한 공부가 제법 손에 익어갔지만 익힌 만큼 발전해서 저만큼 앞서 가고 있으니 간극을 줄여보겠다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래! '하는 만큼 하자!'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기어서라도 가면 되는 것 아니겠나 싶어 책상 앞에 '기어서라도 간다!'를 써서 붙였습니다.  


가업을 접고 내가 했던 일들은 배움과 취미함양 투트랙이었습니다 구청 '정보화 교육'에서 컴퓨터 실용화를 배웠으며 '문화센터'도 활용하고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는 물론, '내일 배움 카드'로 '조리사자격증'도 취득하며 자기 계발에 의욕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때 나 같은 마음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평생공부'로 가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도 등록했죠. 나의 새로운 이력들이 생산되던 경이로운 순간들이었습니다. 뜻있는 곳에 길이 있었으며 절실하게 원하면 반드시 이루게 된다는 것을 오랜만에 경험했습니다. '디지털튜터' 자격증도 그 시기에 취득했습니다.




경단녀를 위한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에서 '베이비시터'과정을 수료하고 아기를 돌보는 일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되었지만 요즘 같은 저출산 시국에서는 쉽지 않은  연결이었습니다.(입주 도우미의 경우 시급이 높음) 교육청 교육공무직(학교급식) 공고가 있어 지원동기를 밝히고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준비해 봤지만 가족의 만류에 의해 욕심을 접었습니다. (건강이 최우선이었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점점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기반 일자리 연결 사이트 '워크넷'에서 어린이집 조리사 구인이 들어와서 면접을 보았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죠? 시의적절한 준비가 대외적으로는 나를 경단녀의 대열에서 그 수치를 줄이게 해 주었고,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직종에 종사하게 해 주었습니다. 일이 힘들면 그 일이 싫어지고 사는 것이 지치죠. 우리에게 가업을 접는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탈피였습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탈피를 위거쳐가야 할 삶의 긴 구간이었습니다. 긴 세월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컸고, 지금은 새로운 삶, 세 번째 스무 살을 살고 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도 없이 물었고 다른 일도 하고 싶었지만 답은 내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자신의 강점을 최대치로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가업을 접은 이후의 시간은 나머지 삶으로 가기 위해 나를 곧추 세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짧았지만 임팩트 있었던 그 시간에 감사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책상 앞에는 '기어서라 간다!'는 문구가 나를 미래로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시그니처 문구가 된 그 글귀를 애정합니다. 그 문구는 이미 힘을 가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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