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이긴 하지만 2대에 걸쳐 이어오던 가업을 접은 것도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도 은퇴의 일종이겠죠? 임의로 자영업의 은퇴라고 부르기로 할게요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은퇴할 나이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은퇴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 것이라 은퇴시기와 은퇴 방식은 끝까지 우리 부부만의 조용한 마무리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막상 마지막 영업일에는 아무 생각도 없어졌고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큰딸이 친구들과 찾아와서는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가게 운영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꽃다발을 안겨줄 때는 정말이지 울컥했습니다. 딸들과 함께한 업주로서의 마지막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고,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추억으로 사진과 함께 남아있습니다.
50년의 가업 경영 기는 그렇게 인생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고 그렇게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자영업이라 퇴직금 같은 제도는 없었지만 삶에서 어떤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이 퇴직금을 대신했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도 나에게는 '쉼'이라는 이름의 포상이었습니다.
청춘은 스무 살부터라고 했던가요? 나는 지금 세 번째 스무 살에 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노년의 초입이라 함이 맞겠네요. 수많은 계절이 지나갔고 인생의 가을에 도착한 셈입니다. 은퇴 후 얼마간은 허니문이라고 했던 통계가 나에게도 적용이 되었고 한동안은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는 누구나의 숙제죠 저에게도 숙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은퇴는 죽음을 의미하고 그전에는 누구나 현역입니다. 또 다시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 온 것이죠.
신의 보살핌일까요?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직전에 우리는 삶의 노선을 달리했고 다행히 할만한 일도 찾았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때그때 방향을 수정하며 가기로 했죠. 자영업을 하던 사람들이라 해서가 아니라 삶을 보는 시각은 제각각 다르기에 무엇을 잃어야 진정 잃는 것이며 무엇을 얻어야 진정 얻는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더 늦은 나이가 되면 선택의 폭이 확연하게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 때는 말이야!"했던 시절!따박따박 월급만 받으면 좋았던 추억을 되뇌이며 봉급생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는 나름 현명했던 스토리가 있죠 이번 생의 마지막 월급생활이라 생각하고 취업을 해서 작지만 균형 있는 생활을 하자 했습니다. 워크넷에 연결해서 자질과 맞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내일 배움 카드로 자격증도 준비했습니다. 이런저런 취업 활동을 하면서 "아! 지금 이거 뭐지?" 하는 현타가 크게 한번 멘탈을 때리고 지나갔죠. 지금은 그때 우리가 살던 그 시절이 아니구나 싶어서 '격세지감'도 가져보고 잦은 멘붕도 느끼며 헤쳐나갔습니다. 평생 은퇴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시대의 비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내일의 발판을 다진 거죠. 코로나 펜데믹으로 세상의 판이 바뀐 걸 은퇴 후 재취업 준비를 하며 알았습니다. 운 좋게 디지털화된 세상 무지의 절벽 끝에서 떨어질 뻔하다가 나이스하게 날아올랐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는 많지만 꼭 맞는 자리와 매칭이 될 확률은 언제나 예상을 비켜 갔습니다. 일자리가 괜찮다 싶으면 나이대에서 걸리고, 나이에 맞추면 수입과 직종이 어긋나고, 선남선녀 선보는 것 같은 일자리 궁합은 여전히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아직까지도 뾰족한 대안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나브로 부지런히 탐색하고 들여다볼 밖이었어요.
그런 일련의 노력 끝에 우리 부부는 사회와 연결되어 잘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며 우리답게 살고 있습니다 경험해 보니 어중간한 나이가 있습니다. 그 일을 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다 싶을 때 미리 선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본인의 나이에 맞추려면 여기저기 탐색만 하다 결국 그 나이가 되어 그런 직종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 바꾸니 세상은 확대되고 선택은 더 다양해집니다.
옛말에 "종살이를 해도 대감집에서 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취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골드 카드로 썼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영업자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알기에 큰 시스템 안에서 매뉴얼을 지키며 사는 삶이 내 사업보다 훨씬 수월한 내 적성 때문입니다. 전문성을 가지면 되는 일! 나 아니면 안 되는 일! 은 평생의 나의 달란트입니다. 남편은 종합병원 보안요원 관리직에 있고 나는 식당운영의 경험을 살려 어린이집 조리사로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퀄리티를 뽐내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만하면 사회와의 연결에 성공한 셈입니다.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훌륭한 베이스캠프니까요.
우리 부부의 재취업스토리 어떠셨나요? 자영업을 했던 사람들은 남의 밑으로 못 간다는 편견이 있으신가요? 모르긴 해도 저의 생각은, 인생 계급장은 떼어버리는 것이 나에게 남는 장사일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