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에 즐겨했던 놀이 문화가 있죠. 나에게는 종이 인형놀이가 그중의 유일한 추억으로 지금 생각해도 행복해집니다. 그땐 종이로도 많은 놀이들이 가능했습니다. <공주 옷 갈아입히기>는 여자 아이들이 예쁜 드레스를 이것저것 갈아입히고 파티에 가는 스토리로 상상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나의 페르소나가 공주가 되어보는 시간이니 여자아이들의 놀이로는 최고였죠. 패턴에 없는 옷장이며 침대는 직접 마분지로 접어서 공주방도 꾸며주며 그렇게 마음만은 공주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자옥'님의 '공주는 외로워'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인기가 아주 많았죠. 아마도 그때의 인형놀이를 상기시켜 주어 따뜻한 공감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종이인형 옷 갈아입히기>라는 놀이문화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들의 내면에 부모가 해주지 못한 꿈과 환상을 넉넉히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병에 걸리기도 했겠죠?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생각에도 옷을 갈아입힙니다. 일어나는 생각에 이 옷 입혔다 저 옷 입혔다 다양하게 입혀보고 가장 맞아떨어지는 옷에서 생각을 멈춥니다. 생각이란 것도 너무 집착하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합니다. 허상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게 조용한 멈춤의 시간을 갖습니다. 생각의 사치가 되지 않게 가지치기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있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사람이 십 분을 가만히 앉아 있기가 싶지 않다는 걸 해보면 알게 되죠. 저도 처음부터 '명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몸을 쉬게 해 주고 덤으로 마음을 쉬게 해 주자는 마음으로 차분히 앉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오랜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어 나 스스로도 놀랐고, 의외로 이것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몸이 바빴던 나는 앉음으로써 휴식을 얻었고 신기하게도 나의 희미한 생각들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볼 수도 있었습니다. 잠시 앉는 것으로 나를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생활전반에서 나를 인내하는 역량이 키워져 이 삶을 견고히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후로 디지털 세상에는 무서울만치 가속도가 붙어 현실 적응력을 필수로 요구합니다. 그 피로도가 만만치 않아 '심테크'가 트렌드가 되었죠. 아는 만큼 성장하는 세상에서 이러면 되려나, 저러면 되려나 헛갈리는 판단력에 소신을 싣고자 한다면 짧지만 또렷한 명료함이 우선으로 시급하죠. 일상에서도 소신은 '자기 주도적'이란 말로 옷을 바꿔 입고 힘자랑을 합니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한다! 칼자루는 내가 쥐고 싶다는 게 개인의 본질적 파워입니다. 세분화된 사회의 한 현상이죠. 그런 이유로 나의 힘을 키우기에는 명상하는 습관이 최선입니다.
나에게서 <차 한잔과 명상 한 꼭지>라는 주제는 긴장된 일상에서 '타임아웃'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깨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일하면서도 차는 마실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따로 시간을 떼어서 조용히 앉을 수 있다는 건 대단히 자기 주도적인 힘입니다. 저는 헛심을 쓰지 않고 진심을 알맞게 쓰며 살고 싶어 억지로라도 앉힙니다. 육신이 일을 하지 정신이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과거의 경험이 있습니다. 바쁜 중에 시간을 따로 낸다는 그 자체가 명상의 시작입니다. '나'라는 물질이 느리게 흐르도록 의도적인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명상은 고매한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입니다. 방석 하나를 마련하고 조용히 앉아보세요. 아니면 버스에 실려가는 중에도 찰나의 명상은 가질 수 있습니다. 육신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두 눈을 감고 시신경에 생각 커튼을 내리면 내면의 가지런함이 저절로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감이 느껴지죠. 저는 그렇게 길을 들였습니다. 시신경이 쉬면 다른 신경이 깨어나 묶은 노폐물을 걸러냅니다. 그 시간에는 스마트 폰은 무음으로 하고 40분의 약속을 지킵니다.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명상 효과는 더욱 커지겠지만 몸이 피곤하면 오히려 악조건이 되므로 오후 '어떤' 시간을 정해 두고 뇌파를 진정시킵니다. '릴랙스'의 순간이죠.
명상에 대해 사회적으로 통용된 라이선스는 없지만 한 개인으로서 나의 얕은 경험을 나누어 봅니다. 40분이면 최상이지만 꼭 그 시간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정한 만큼 늘 그 시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종의 나를 위한 의식입니다. 그 행위가 누적되면 곧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의 가지가 세분화되어 의식의 필터링이 자동화되죠.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나날이 달라지는 게 명상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치유명상이 상품이 되었고,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는 '심테크'라는 키워드가 생기기 전에 조금씩 시작해서 화, 불안, 초조와의 줄다리기에서 대체적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앉는다'는 행위 하나로 '명상'을 알게 된 소소한 글 한편을 남기며 오늘의 글쓰기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