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히말라야의 짐꾼 '셰르파'는 어느 시점에서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자뭇 심오하다. 저 밑에서 미처 따라오지 못한 '정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바쁘다는 미명아래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돌아다봐야 할 삶의 지혜다.
'몸이 정신을 기다리는 시간'
나에게는 지금이 그 시점인 것 같다. 몸은 지쳤고 마음에는 바람이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고 웃음도 사라졌다. 마음은 뒤로 물려도 통증은 없으나 몸은 저항의 말을 한다. 허리는 벌써 예전부터 부실했다. 통증크리닉에서 주기적으로 주사를 주입하며 견뎌오고 있었다. 3,4번 척추가 어긋나 척추뼈 뒤쪽으로 지나가는 신경의 절반이상이 짓눌렸다는 '척추정방전위증'이라는 진단을 갖고 산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진행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무릎 통증이 합류한다. 정확하게는 무릎보다는 오금이 아파 구부리 지를 못하는 게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다. 삶의 질이 떨어짐은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비롯해 생활 전방위에서 행동에 제약이 들어온다. 병원을 가야 하지만 평소에 다니던 한의원을 찾았다. 효과는 좀 더디게 나타나겠지만 우선적으로 한방의 도움을 먼저 받아보고 싶어서다. 섣부르게 건드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 나름의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나타난 게 아닌지 크게 의심해 본다. 쥐뿔(?)도 없는 친정이었지만 엄마가 버텨주어 이만큼 살았다. 거울 보듯 엄마를 보고 살았고, 힘든 일 앞에서도 "엄마 힘듦에 비하면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야" 하며 스스로를 견제하며 살았다. 그렇게 힘들고 지칠 때마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60년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 영원한 건 없었다. 엄마는 평생을 힘들게 살아낸 청구서를 몸으로 받았고 노환으로 고생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날아든 엄마의 비보에 멘탈이 휘청거렸다. 마음의 준비 없이 진행된 장례였지만 '49제'까지 소박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버지가 가시고 2년 8개월 만에 짐작했던 그 자리, 천애고아가 되고야 말았다.
천륜의 끝!
친정이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는 정신적 뿌리가 없다. 내가 의지하고 살았던 그 고단했던 나무는 마지막 버팀까지 의무를 다하고 흙의 일부로 돌아가버렸다. 뿌리 없는 꽃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동백처럼 목련처럼 제 힘껏 피워내고 나면 종국에는 꽃송이 채로 '툭' 떨어져 서럽게 스러질 일만 남았다.
목련의 품격이란, 피어 있을 땐 학보다 우아하다. 동백도 피어 있을 땐 장미 같지 않던가? 지금 나의 처지가 땅에 떨어진 목련화다. 나목에 의지해 피어 있을 때가 목련으로서는 절정의 시간이다. 그렇게 눈길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꽃송이도 땅에 떨어지고 나면 더 이상 꽃이라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온전한 사람이 있을까? 시차를 두고 여섯 송이 목련이 '후두둑' ,'후두둑' 낙화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서러운 마음이 '훅' 치고 들며 명치가 아파온다. 여섯 송이 목련! 엄마는 딸만 여섯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너그럽게 기다려준 적이 있는가! '청산리 벽계수'도 '황진이'의 시 한수에 발목 잡혔지 않은가. 빨리 가는 것이 자랑이 아닌 이유를 지구 반대편 히말라야의 짐꾼에게서도 배운다. '셸파'의 작은 쉼 하나가 지금의 나에게 영 적인 깨달음을 건네니 위로가 된다. 늦었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나의 걸어온 길을 점검해 본다. 히말라야를 종횡무진하며 무거운 짐을 나르는 '셀파'들이 쉼을 찾는 참다운 이유를 들여다보며 그들은 단순 짐꾼이 아닌 높은 정신을 가진 수행자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은 모쪼록 몸과 정신이 같이 갈 때가 온전한 삶이다. 어떤 이유 끝에서 몸이 아팠고 이유를 찾다 보니 몸과 정신의 관계를 재해석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멀리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의 정신을 기다린다. 긴 기다림일지라도 온 정성을 다하면 몸과 정신이 단단하게 하나 되는 순간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요 근래 몇 년을 쉬지 않고 상념과 번뇌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몸의 저항을 느껴 삶의 속도를 늦추었고 지금은 천천히 은둔하는 중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내 시선이 몸 보다는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