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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Jan 04. 2024

저는 군대에서 이런 일들을 합니다.

육아인지 선생님인지 모르겠는 일들


군대에 갓 들어온 후임들에게 한마디 할 기회가 내게는 사실 공식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숙명에 있다. 모두 질리도록 경험해 본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조언을 해줄 때는 무릇 자신이 뭐라도 된것 마냥 거만해지기 십상이다. 사실 나도 그랬고 그 거만함과 경솔함을 떠올리면서 괴로워 한 저녁이 많았기 때문에 요즘은 더 정갈하고 단순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어떤 종류의 거만함과 가르치려드는 어투가 선택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중이다. 군대를 조금 빠르게 왔다는 것, 그래서 그들보다 계급이 한단계 혹은 두단계 높다는 건 어떤 경우라도 자랑거리 같은 것들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사려깊게 생각하는 이유는 1년이 넘는 군생활을 하며 조금 높은 계급의 많은 이들에게 내가 직접 당해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 차수가 진행되고, 각 신병들의 분위기에 따라 이야기하는 양식이 꽤나 바뀌지만 내 연설은 3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이루어진다. 첫번째는 개인의 평판에 대해서 , 두번째는 꾸준함과 변화에 대해서, 세번째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 것들에 왈가왈부 할 수 있을만큼 꾸준히 성실히 노력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얼마나 저 주제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그리고 힘들게 했는 지 떠오려보면 이야기를 꺼내봄직 할 것이다.


첫번째로 개인의 평판 문제를 꺼내는 이유는 신병들이 짧지만 간편한 생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걸 자주 봤기 때문이다. 내가 재밌게 잘 인용하는 사람은 드라마 <신병>에 나오는 ‘성윤모’ 라는 인물인데 어릴 적 혹시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겠나? 하며 장난스럽게 넘어갔지만 실제로 내가 교육했던 신병들 중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나오고 쉽게 배척되는 현상을 보니 또 경각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폐급을 자처하며 조금 더 군생활을 편하게 하려는 성윤모 스타일의 누군가는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 손익계산상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또 쉽게 간과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모두에게 ‘평판’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 좁은 군 조직의 특성상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평판은 날카롭고 빠르게 형성된다. 성윤모 스타일의 사람들은 그러므로 낮은 평판을 얻고 쉽게 고립되기 마련이다. 사실 그럼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안할 수 있지만 딱 그것 뿐이다. 일은 안 시키지만 말도 시키지 않는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긴 1년 9개월 중 1년 1개월을 버텨오는 내가 느낀 바로서는, 군대에서 외로움은 그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개인을 파괴할 것임으로 나는 그저 신병들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를, 자기 파괴의 선택지를 고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주로 가장 먼저 꺼낸다.


두번째 내가 신병들에게 해주는 말은 꾸준함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러 sns에는 자신이 군대에 와서 몸이 변하고 얼굴이 변화했다는 모습을 찍어 자랑하는 컨텐츠들이 많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크게 미덥지 못했지만, 주변 선임 중에 살을 15키로를 빼고 달라져 전역하는 이들이 있으며 또, 친구들 중에는 전역 후 살을 빼고 어릴때의 모습을 되찾아 리즈를 즐기는 실제 사례들을 보면서 군대라는 곳은 누구에게는 고통일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어준다는 것을 깊게 인지하게 되었다. 나 또한 변하려고 발버둥 친 사람이다. 어떤날은 강하고 불타는 의지로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밥을 먹지 않은날도 있고 어떤 날은 헬창의 인생을 살아보자며 2시간동안 헬스로 불탔다. 하지만 대부분의 짧고 강렬한 의지는 편하고자 하는 내 당연한 본능에 맞춰 원래대로 회귀할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던 건 오히려 처음 자대에 도착하여 헬스장을 이용하지 못했을 때 차분히 운동을 시작하자며 결심 했을 때이다. 원래 그리 운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시작하자며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개씩만 했었다. 그리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음으로 (보통 20분 내외로 끝난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지속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고 그것을 계기로 지금의 운동습관을 잡아나가게 된 것 같다. 물론 중간에 운동에 대한 회의와, 가벼운 우울증으로 운동을 나가게 되지 않기도 했지만, 헬스를 하는 것은 기본적인 내 생활 루틴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시작할 때의 공략법을 찾은 것인데, 그건 바로 습관이 되기 전에는 부담없이 가벼운 강도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이 되면 그 이후부터는 그리 의식하지 않아도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식으로 내 일상으로 자리잡은 것 중 하나는 바로, 아침에 글을 쓰는 행위이다. 매일 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별 힘든 일이 없을 때 나는 아침 점호가 끝나면 커피를 타고 ,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보니 보여주고 싶었고 이제는 블로거 뿐만 아니라 작가 플랫폼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되었다. 며칠 전에 확인해보니 블로그에 글이 100개 정도 쌓여있었다. 가끔 군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하찮게 보일 때 놓여진 글들을 보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꾸준히 해 온 운동과 글쓰기 덕분에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자 글쓰는 사람이 되었다.   


세번째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번째 챕터는 두번째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고자 고민하게 된 이유는 신병들이 적어낸 신상명세서에 심심찮게 자존감과 자신감에 대한 고민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존감이 그리 높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차, 난 언제 그런 높은 자존감으로 살았는 지 고민해봤을 때 역시나 신병시절이 떠오른다. 차근차근 습관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그 습관을 그리 어렵지 않게 지켜나갔을 때 즉, 내가 한 약속을 스스로 지켰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시기를 떠올려보니 내 나름대로의 ‘자존감’에 대한 답이 생겼다.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자신만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고 재단하듯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내 자신의 어떤 행동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평가하고 그에 맞춰 질책하거나 칭찬한다.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거고, 그렇다면 기대가 생기는데 그 약속들을 지켰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그렇지 않았을 때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다. 실망감도 한순간이지 계속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때부터 더이상 내 스스로를 내가 믿지 못하게 된다. 이는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 자기 혐오로 번지며, 더이상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반대로 꾸 히 지산이 한 약속을 지켜온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고 그렇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더 좋아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꽤 확산속도가 빨라서 나의 성실함 뿐 아니라 내 외형 그리고 내 존재 자체에 대해서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꽤나 이야기가 장황하게 진행되었으나. 나는 결국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자신과 한 약속을 꾸준하게 오랫동안 지켜나가는 것 그것 뿐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내 답이 인생의 정답이 될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바로써는 이게 최선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로 해주는데, 최대한 나의 거만함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꺼내려 노력하지만 신병들이 곁을 떠나고 혼자가 될 때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이만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과 신병들 중에는 분명 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어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며 비웃을거라는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꿋꿋히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을 한다. 그리고 가끔씩 어느 한명의 신병이 내 이야기를 반짝이며 들어주면 그때 더 신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진다. 나는 그런 아슬아슬하지만 신나는 인생을,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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