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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Jan 04. 2024

젠장할 크리스마스

나는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외칩니다.

그까지것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건가 , 어차피 아무 의미 없게도 사람이 단 하루를 짚어 굳이 굳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일텐데 , 라고 하기에는 솔로가 괜히 외치는 합리화? 단달마 같기도 하여 입을 조금 다물기로 한다. 내가 만약 사회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솔로집단을 묶어 케이크라도 불었을까? 아니면. 가족과 함께 케이크라도 불었을까. 어떤 쪽이라도 별로 그다지 의미 있어보이진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아무쪼록 커플들끼리 함께하고 모텔을 가는 날이니까.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은 그저 솔로 행동일 뿐이다. 외로움을 애써 무시하려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보고 25살이 되었다. 이 슬픈 일에는 또 시기마다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 독자들이 차분히 들어주면 좋겠다. 22살까지 오랜 입시를 치뤄왔던 나에겐 연애라는 건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옷도 부모님이 사주는 것만 입었고 머리도 대충 동네에서 아줌마들에게 잘랐다. 내가 유독 못생겨보였던 고2~고3 때 나는 안경만 벗으면 내가 잘생긴 줄 알고 그저 이 시기를 버티기만 했을 뿐이다.  생각보다 낮아진 자존감은 치료하기 힘든 불치병도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산 옷을 입고, 또 나름의 내 스타일대로 머리를 하고 가끔은 외모 칭찬을 들었던 나였으나 난 그때 인정해야 했다. 내 내면의 날 평가하는 기관이 조금 고장나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난 고장나버린 내 마음과 함께 해오고 있다. 이 마음은 언제나 나를 비난했다. 그 마음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소크라테스가 그의 시민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그 말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난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내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하면 그 날 새벽에는 나는 큰 화를 입었다. 내 마음은 언제나 날 진실의 방으로 끌고가 혼내고 때리고 겁박했다. 더이상 내 분수에 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를 테면, 멋있는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는 일 같은 것들, 당당하게 내 소신을 밝히는 일 같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이 부끄럽지 않은 만큼의 행동을 했다.


그래서 사실 연애 라는 건, 더 나아가 결혼 이라고 하는 건 내게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언제든 연애든 결혼이든 섹스든 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랑 그런 것들을 하려면 난 너무 많은 것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24살이 될때까지 덜컥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뭐든 해버렸지만 끝은 언제나 지옥과도 같은 결말이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25살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게 내 이야기이다. 여러 많은 모태솔로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이야기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가 되려나. 누구는 일어나 날 꾸짖을지도 모르겠다. “너가 너무 눈이 높아서 그런거 아니냐”며 말이다. 괜히 시비가 걸리면 그렇다고 가볍게 인정하고 일어나겠지만 , 난 희미한 웃음으로 중얼거릴 것 같다. “난 나 자신을 잘 안답니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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