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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Nov 27. 2023

나를 작가라고 칭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내 글이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에

내 삶의 패턴이 다시, 그대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는 왠지 익숙한 내가 남아있어서 날 더 원망하기도 어려웠다. 마치 윤동주 시인이 그의 시 <자화상>에서 조금은 안쓰러워진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처럼 분노가득히 바라봐야 하는 적수는 아니다. 난 원래 유혹에 약하고 대범하지 않고 사람들의 작은 미소에 쉽게 사랑에 빠지는 그런 약한 사람이다. 펼처친 책 같은 쉬운 나도, 누군가의 머리속에는 대단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더 생각나는 사람,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되뇌이게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왔다. 너무나도 쉬운 내가 조그마하게 누군가에게 천천히 읽히기 위해서 천천히 나를 키워갔었다. ’혼자있는 시간만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 는 어떤 유튜버의 말을 굳게 믿었던 나는 날 홀로 두고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움직였고 결국 난 비로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별것도 아닌 내가 ,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 은 사실 모두이다. 사람은 언제나 글을 쓴다. 우린 많은 문자를 남기고, 스토리를 남기고 , 많은 이야기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제 난 더이상 내 글이 그리 부끄럽지 않다. 과거에 찌그러두었던 글은 부끄럽지만, 나는 더 이상 내 글이 부끄럽지는 않다. 내 글이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같잖은 걸 쓰기 때문인데 같잖은 걸 쓰는 이유는 내가 같잖기 때문이다. 즉 나는 더이상 내가 같잖지는 않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다. 난 내 글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로 진정 글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몇일 전에, 내가 조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또 내 이야기를 했다. 난 항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마치 열려있는 책처럼 대충 흘기고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흘기고 지나갈만큼 볼품없는 나는 또, 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날 소개했다. 내 모든 글을 그가 읽으면 그는 나를 더 잘 알겠지만, 이제 더 이상 읽을 필요 없는 열린 책이 되겠지만 모순적이게도 그의 관심덕분에 나는 덜 읽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그가 내게 관심있는 만큼만 내 책을 열어볼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안심한다. 이제 내게 꾸준히 글을 쓰는 건 그리고 여러군데 글을 올릴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건 내가 무엇인가 그럴듯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그리 사람들이 관심있어하지 않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가라앉은 배를 매만지며, 커피를 타고 글을 쓰는 의식은 이제 더이상 괜한 의식치례 같은 것이 내겐 아니다.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의식은 글을 쓰는 사람인 내게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마음이 아플 때, 그리고 마음만큼이나 몸이 다쳐있을 때 (바닥에 코를 부딪혀 밖는 그런 뜬금없는 일) 난 그런 핑계로 글을 쓰지 않기도 하지만 그건 가끔 즐기는 여가 ? 축제 ? 와 다름 아니다. 내 삶의 패턴이 다시금 한번

암흑으로 빠져들어간다. 난 그런 축제를 즐기며 여행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번 축제는 꽤나 길어져간다. 난 내가 다시금 아침에 일어나고, 배를 매만지고, 따뜻한 차를 탈 수 있길 그 무의식적인 지루함속에 탄식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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