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자까 Nov 18. 2023

분수에 맞게, 정갈하게 먹는 삶에 대해서

‘내가 먹는 것은 결국 나’이기에

어릴때부터, 먹는 것에 대한 제약 없이 살았다. 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우리 엄마는 거의 매일 매일 두손 가득 장을 봐왔다. 우리 할머니는 몸이 아프셨는데 그 덕분에 자신의 손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삶의 낙으로 여기셨다. 그래서 그런지 오직 관심사는 손주들이 밥을 먹었는 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 지 그런 것들이었다. 어머니는 장을 봐오고 할머니는 끊임없이 먹여댔다. 밥을 다 먹고 배부게 누워있으면 할머니는 넘치는 사랑으로 과일들을 한움큼 잘라왔다. 과일들을 다 먹으면 할머니가 왜 과자들 안먹냐며 아픈 다리로 일어서며 우릴 꾸짖었다. 그런 사랑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보니 꽤 뚱뚱했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한창 사춘기가 날 찾아왔던 그때 거울속에 내가 유독 못생겨보였었다. 그때 장하게도, 스스로 식욕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건 저녁을 먹을 때 밥 반공기씩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그때 그런 종류의 수치심을 느끼는 경험이 없더라면, 난 지금도 배에 큰 주머니 하나 달고 살지 않았을까.


상황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담배나 게임 같은 것들에 민감해 하시면서 우리가 오직 공부만 손에서 떼지 않기를 바랐지만, 먹는 것에 크게 제약을 두지 않으셨다. 다만, 중학교에 드러서면서 형이 키가 190을 넘어가려 할 때 조금 덜 먹어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었지만 똑똑하거나 눈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시에 학교가 끝나면 10시부터 몰래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았다. 주말이 예외는 아니었는데  6시에 학교 자습이 끝나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7시 경에 학원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항상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매번 이어지는 수업과 자습 그 사이에 그저 흥미를 느끼는 건 그저 맛있는 걸 먹는다는 동물적인 감각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에 외식을 하는 것이 내 학창시절의 심심한 취미이자 흥미거리었다.


이런 저런 시간을 지나면서, 내게 먹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 되었다.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말이 내게는 그리 부자연스러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힘든일이 있으면 맛있는 것 자극적인 것을 찾아 움직였다. 그래도 부모님의 곁에 지낼때는 그나마 다행이였는데 건강한 음식들을 내주었고, 그것만으로도 내 음식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음식에 대한 제약을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갈망은 강했고 언제나 심심한 기숙사 밥보다는 밖에 자극적이고 간단한 음식들을 찾았다.

스트레스가 더 강한 날에는 편의점에 들러 만원이 훌쩍 넘게 돈을 쓸 저도로 미친듯이 폭식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결과 심심한 음식에는 손을 대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균형잡힌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으면, 살이 찐다는 원리는 꽤나 간단한 것이었음에도 나는 미리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난 뚱뚱해지고 있었고 불어난 내 배를 애써 무시해야 하는 삶이라니 많이 고통스러웠다. 내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난 먹는 것과 언제든 가까워졌었고 또, 내 삶이 조금 더 뚱뚱해졌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힘든 시기에 처해졌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을 살다가 군대에 들어와 훈련소에서 맞은 두번째 아침에 나는 정말 신세계를 맛봤다. 이렇게 개운한 아침이라니. 저녁에 무언갈 먹지 않고 맞이한 아침은 거의 너무 오랜만이라 새로웠다. 너무 개운했고, 몸이 가벼웠고, 아침마다 매일 겪어야 했던 소화불량과 복부팽만감이 없어 부담이 없었다. ’그때부터 난 먹는 것을 멀리했고 살을 뺄 수 있었다‘ 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이후로도 줄곧 군생활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했을 때 닭다리를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뜯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언젠가 추구해야 할 식습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주 정갈한 사람이다. 내가 집에 갈때마다 매번 정갈한 요리들을 내게 내어주신다.

몇일전에 엄마를 만나 밥을 먹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엄마처럼 정갈한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 자신이 먹는 것이 결국 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도 언젠가는 엄마처럼 내게 주고 싶은 음식을 내가 해서 간단히 먹는 삶을 꿈꿨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생각하며 내게 좋은 걸 주는 삶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 같아 보였다.


요새에도 한번씩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극적이고 무거운 음식들을 손을 댈 때가 많지만, 거의 많은 대부분의 평화로운 시기에 나는 내가 먹는 양을 잘 조절할줄 안다. 얼마나 먹어야 다음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도 안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는 결국 나를 더 잘 알게 된것이다. 분수에 맞게 먹고 그것에 맞게 운동할 수 있는 삶. 내가 지금 먹을 수 있음에 또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삶. 그게 내가 추구해야 할 식습관이자 정갈한 삶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이전 01화 추운 겨울 아침에 뛰는 건 내게 삶의 균형을 잡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