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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Nov 12. 2023

추운 겨울 아침에 뛰는 건 내게 삶의 균형을 잡는 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ft. 무라카미 하루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이제 가을처럼 적당히 추운 게 아니라, 완전히 겨울이라는 계절로 변모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비가 그 신호탄인것 같다. 엊그저께 부슬비가 내린 후 급격하게 내린 온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무들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둘러쌓아 왔던 잎들을 내리듯이, 나에게도 언제나 겨울이 온다는 건 날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던 것들을 걷어내는 시기자 기회였던 것 같다. 날 급하게 만들었던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담긴 sns 사진에서도, 날 아무곳도 움직일 수 없게 했던 게임이라는 족쇄에서도, 연애인지 가벼운 만남인 지 알 수 없었던 그 애매한 사람들에게서도 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난 매번 소멸의 이미지에 가까운 겨울에 의지하여 날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 같다. 겨울은 그런 신기한 힘을 가졌다.


이제는 벌써 1년이 지나버린, 신병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훈련소에서 규칙적이고 단정한 삶에 푹 빠진 나는 자대에 와서도 그런 삶을 살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날도 눈이 하얗게 쌓여 더 추운 날이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쓰는 병장분들이 잠을 깨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내복과 체련복과 패딩을 겹쳐 입는다. 일어나 시간을 보니 6시 점호 전에 돌아오려면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아무도 날 알아보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길고 긴 비행단 거리를 뛴다. 패딩의 무게를 견뎌내며 달리는 건 내게 꽤 힘든 일이라 숨이 벅차온다. 그 벅차오름을 극복하느라 생각 따위는 내겐 사치였으나, 다만 기억나는 건 난 뛰면서 ‘난 내일도 내가 뛸 수 있기를’바랐다는 것이다.


다시 ‘내일도 내가 뛸 수 있기’를 바랐던 마음을 생각해보니 난 그때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곳이 군대라는 사실도, 그 선임이라고 하는 많은 어색한 사람들이 날 마음 아프게 해도, 그래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겪더라도 난 아침에 뛸 수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졸음과 추위와 누군가 나를 꾸짖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뛰었던 그 아침의 시간만 내게 주어진다면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겨울, 아침 , 뜀 이 세개의 단어가 합쳐진 매일매일의 루틴은 생각해보면 내 삶의 균형점이었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어떤 기분으로 저녁을 마쳤든 상관없이 매일매일 영점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아직도 내게는 너무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아침이 내게는, 삶의 영점이듯 이제는 내겐 겨울도 1년의 영점인가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늘도 추운 겨울 뛰는 걸 스킵하려 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책 구절이 날 붙잡아 놓는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난 할 수 없이 뛰기로 결정하고 운동화를 갈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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