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하면 나는 일본 만화가 간혹 떠오르긴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만화는 아니고 정말 그냥 여성용 의류 원피스에 대한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옷 중에 한 가지에서 좋아하는 옷으로 바뀌었달까. 확실히 상처가 깊어지고 다리에 흉이 드러날수록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입게 된 계기가 원피스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기장의 원피스. 기왕이면 팔 소매 쪽도 긴 게 좋다. 팔에도 상처가 많기 때문에 커버하려면 긴소매와 긴 기장의 원피스를 입어야 한다. 이건 그냥 자격지심인 것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워낙 심해서) 다리와 팔이 왜 그러냐는 모양을 물으며 내게 묻는 게 일일이 답을 해주기가 귀찮다. 결국에 생각해 낸 방법이 가리자! 였다.
원피스도 종류별로 있는데, 나는 주로 무채색 계열로 입고 일자로 떨어지는 핏을 선호한다. 그리고 붙지 않는 것. 트임이 없어야 할 것. 끈 달린 원피스는 피할 것. 등등 원피스를 고르는 방법도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잘 맞는 원피스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이쯤 되면 옷가게를 수시로 들락날락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한테 맞는 원피스를 찾기 위해 거의 투어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가진 건 별로 없다. 애 데리러 나갈 때 말곤 특별히 입을 곳이 없어서.
나는 내 평생에 교복치마가 다일 줄 알았는데 나이 들어서 원피스와 긴치마만 찾게 되다니, 역시 사람은 살고 볼일이다. 나이가 드니 취향도 바뀌고 몸도 바뀌어간다. 아토피가 더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긴 것만 고집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치마도 길고, 바지고 길고, 내 다리는 짧은데 말이다.
결국엔 대학병원 예약을 잡았다. 귀찮아서 안 갔는데 역시 어쩔 수 없나 보다. 아토피 기어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구나. 필요하니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동네 피부과에선 한계가 있다고 했다. 다시 면역억제제를 먹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이 드니 한숨이 난다. 피부에 관한 건 약이 좀 센 편이라 먹으면 늘 졸리고 멍하다. 그래서 가끔 운전 전에는 안 먹는 경우도 있다. 운전하다가 졸릴까 봐. 그러면 안 되니까 말이다.
어제는 옷 투어를 하기 전에 동네 서점에 들러서 주문한 책을 가져왔다. 동화책 5권과 내 책 1권을 주문했는데 입고되었다고 가지러 오라는 말에 신랑이 오자마자 재빨리 나가서 가져왔다. 책상태는 좋았고, 제 값 주고 사긴 했지만 온라인보다 엄청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서로 상생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주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오랜만에 들어본 것 같은 생경함이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던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의외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들은 일상생활에서 잘 안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감사할 일이 엄청 드러나지는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다. 우리는 부정에 더 익숙하지 긍정에 익숙하기는 힘드니까.
책도 받아오고, 원피스 두 벌도 샀다. 이쯤 되면 소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어떻게 소비를 안 할 수 있지. 신기할 따름이다. 소비하지 않는 삶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소비를 하고 있는 내가 아이러니하다.
근데 본래 사람이란 다 으레 그런 거 아닌가.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굳이 나 자신을 합리화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으, 대학병원 갈 날이 멀지 않았다. 빨리 의사부터 만나서 약을 타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