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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08. 2023

엄마에게 사과를 받았다



그건 꼭 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한테 사과를 받고, 나는 펑펑 울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내가 이렇게 까지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왜 말한 걸까 하는 자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어야 했던 나의 감정. 말하지 않으면 또 쌓아놓을 것 같았다. 그럼 둑처럼 쌓이고 쌓이다가 터졌겠지. 또 엄마를 아마 한동안 안 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이 있어서 힘들다고 했는데, 그건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너'라는 애에게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할 일이 많고 바쁘면 그럴 틈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에 상처받은 나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게 아니냐고 되받아치고, 그리고 끊었다.


한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 물론 전화도 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차가운 사람이니 나한테 전화 한 통 안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는 억울했다. 우울증에 걸린 게 왜? 왜 한가해서 걸렸다고 생각하지. 왜 말을 그런 식으로 밖에 못 하지?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답변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내가 딸이 맞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부정적으로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플로 받을 수 있는 상담을 받으며, 엄마에게 말해야겠다고 용기가 났다.

기분이 상했다고. 무례했다고.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느냐고.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고. 나도 이렇게밖에 말을 못 해서 미안하다고.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는 답변을 보내왔고, 나는 그 글자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당황스럽고, 복잡하고,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되려 무시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내 감정을 무시할 거라고, 우리 엄마는 차가운 사람이니 그럴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무례했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남의 병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단단히 말해줄 요령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그런 말들에 답장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엄마의 사과에 터져버린 울음이 뭘 뜻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울음에 큰아이가 날 달래기 바빴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에게 말했다. 무엇이 괜찮아야 하는 건지. 이 감정의 혼란이 대체 무엇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이 눈물만 흘렀다.


한 번쯤은 거쳐가야 했을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 그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를 받은 그 말의 힘은, 엄청난 마음의 변화를 불러온 걸 지도 모른다. 화가 나지 않다니. 난 늘 엄마에게 화가 나있었는데 말이다. 그걸 엄마가 알까. 늘 엄마에게 화가 나있었다는 걸. 

서투른 감정표현이었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잘했다고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으며,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다는 걸 상담받으면서 처음 알았다.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내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나처럼 끙끙 앓고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나중에 사춘기가 와서 혼란스러울 때 말해줘야지.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네 마음에 따라 사람은 언제든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는 거라고.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해줘야지. 


나중에 상담사에게 엄마한테 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해달라고 해서, 너는 잘못이 없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부모님의 불화도, 꼴통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것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다시 울었다. 눈물은 끝없이 나왔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뭘 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눈물이 나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나도나를 어쩔 줄 몰라했다. 


상담사는 잘했다고, 본인도 깊은 위로를 보내고 있다고, 진심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런 책망도 원망도 듣지 않고 미움을 사지 않고 위로를 받는 느낌은, 정말로 이상했다.

무가치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로 걷게 되는 한 단계 계기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 말은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정말로, 이상하리만치 따뜻한데 어색하다.

엄마한테 사과를 받은 것만큼이나 어색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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