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연 Jun 09. 2023

에어팟을 샀다. 내가 에어팟을 사다니

마침 이어폰이 필요하던 찰나였다. 인터넷으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는데, 병원 진료를 보고 나오자마자 조금만 가면 애플 매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가? 말아? 그래 일단 스벅을 가서 얼그레이 바닐라 티라떼를 먹고 생각해 보자. 창가자리에 앉아 시킨 음료를 마시며 지인과 신나게 카톡수다를 하다가, 다시금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 말아? 그럼 구경이라도 해볼까? 


카페를 나온 나는 오랜만에 장시간의 햇빛을 쬐며 걸었다. 큰 횡단보도 하나를 건넜고, 작은 상점들을 지나쳤다. 드디어 도착한 애플샵. 망설임 없이 자동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매장. 직원 둘뿐. 아, 이럴 수가 사람 많을 줄 알고 왔는데 손님이라곤 나 하나다. 게다가 에어팟은 진열대 안에 있어서 만져보지도 못하고 골라야 한다. 드라마틱한 기능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세 모델 중 제일 값이 저렴한 모델로 달라고 했다. 이미 들어올 때부터 살 마음이 있었던 거다. 사기로 맘먹었으니 사야지.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려는데 카드에 서명이 없으면 신분증을 확인한단다. 뭐 이런 경우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간 김에 본인 유선이어폰도 하나 사 오라고 말한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 확인 후에 남편의 유선 이어폰과 나의 이어폰을 받을 수 있었다. 애플케어 가입하실래요 마실래요 묻는 물음에 뜨잉? 하는 표정으로 보니 이것저것 설명을 친절하게 해 준다. 난 또 그런 서비스에는 약해서 그것도 해달라고 했다. 이어폰이 뭐라고 무슨 보험까지 드나, 싶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어쨌든 보험까지 들고 사용법까지 알려달라고 해서 핸드폰과 연결하고 오랜만에 노래를 귓가에서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음질도 괜찮고, 귀에서 잘 안 빠지니 좋다. 오 이것도 신세계군.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음악을 들었는데, 꽤 좋았다. 이어폰을 대체 몇 년 만에 껴보는 건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음악을 외부소리를 차단하고 들을 수 있다는 건 은근히 세상을 잠시 멈춰있게 하는 시간을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를 타니 돌아오는 길도 지루하지 않았고, 땡볕아래 걷는데도 딱히 엄청 힘들단 생각을 안 했다. 오 이래서 사람들이 다 이어폰 끼고 운동하고 산책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플 워치도 봤는데, 난 수시로 핸드폰을 보는 여자라서 워치까진 필요 없을 듯했다. 워치에도 관심 있느냐는 직원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역시 쇼핑은 좋구나 좋아. 라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집이다.




아,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에라 모르겠단 심정으로 일단 노트북부터 켰다. 오늘의 감정을 써야지. 오전에 뭘 했나 적어둬야지.라고 생각하며 얼음을 잔뜩 넣은 컵에 바닐라 라떼를 넣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안으로 넘어가는 잘게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시원하다. 오늘은 병원도 다녀왔고, 이어폰도 새로 사 왔다. 생각보다 쏠쏠한 오전을 보냈구나 싶은 게 오후엔 체력이 떨어지려나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어쨌든 새로운 사실은, 무선이어폰의 세계에 드디어 입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게 사과를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