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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25. 2023

소리와 소음과.



티비소리에 예민해질 때가 있다. 잘 땐 꼭 티비로 음악을 들으면서 잠들면서 평상시엔 그렇게도 티비소리가 거슬린다. 예민하게 만드는 것들은 때때로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가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와르르 장난감을 바닥으로 쏟아버리는 소리. 먹고 난 뒤 그릇이 싱크대 안에 쌓이는 소리. 밥이 다 되었다고 수증기를 내뿜는 소리 등등.. 정말로 사소하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민함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받아내 버리면 표정은 나도 모르게 찌푸린 얼굴이 된다. 


아이가 유튜브로 보고 있는 유튜버의 목소리가 거슬릴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볼륨을 낮춰달라고 늘 부탁하면서도 그 소리를 덮기 위해 내가 틀어놓은 음악소리를 크게 한다. 그럴 때의 나는 꽤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누가 엄마를 헌신적일 거란 사람으로 포장해 놓은 걸까. 나는 이렇게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데 말이다.


소리가 소음이 될 때, 날이 서있는 나의 모습은 사실은 발견하고 싶지 않은 모습 중에 하나다. 소리는 어디든 존재하며 소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란 걸 알만한 나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기에.

아이보다 참을성이 부족한 상태로 버티지 못하는 시간들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늘 말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 어른 중에 한 명이니까.


그러나, 어쩌면 고요한 정적이 더 견디지 못할 시간들이 될지도 모른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괜한 신경질을 부리는 나 자신은 어쩌면 스스로가 소란스러워서 그런 걸 지도. 

지독한 이기주의. 배려라곤 없는 개인주의. 마음이 복잡한 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닌 그 모두의 사람들. 그리고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고, 소음에 예민하게 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게 아니라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소음에 익숙해져야 함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남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려 섞인 듯, 하지만 나 자신만을 위한 요구를 들어달라고 뻔뻔하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렇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만둬야 하는지도. 소리를 소음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을 그만두어야 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 매번 느끼지만 바뀌려는 성향은 바뀌어야 하는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의 나처럼 낯선 것을 거부하는지도.

그래도 다행인 건 알고 있다는 걸까. 자각심정도는 있다는 좀스러운 양심.. 같은 것 말이다.


스스로를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으면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넓어진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좀 더 동그랗게 빚어야겠다. 날이 선 모양이 아닌 둥글게 둥글게 빚어서 나 자신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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