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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28. 2023

병원에 다녀왔다.

까진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옆에는 자잘하게 남아 착색된 흉터들이 가득하다. 내 몸이 온전치 못한 곳이 팔과 다리뿐이라 여름에는 반바지 반팔을 입고 다닐 엄두가 안 난다. 착색된 색들은 가지 각색이다. 검은색이 된 것도 있고, 되어가고 있는 갈색인 것도 있고, 채 아물지도 않은 빨간색인 것도 있다. 어느 것 하나도 일정하지 않고 균일하지 않다. 상처를 준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심해진 거지? 라며.


그것들은 꼭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남아있다. 의사는 그랬다. 옅어지긴 해도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나는 그 무렵 한번 맞는데 70만 원에 육박하는 주사를 처음 맞았다. 먹는 약으로도, 바르는 걸로도 해결되지 않는 건 이제 이 방법뿐이라는 의사에 말에 뭐든 하겠다고 했다. 생존의 방식은 때때로 그렇게 다급히 튀어나온다. 잠 못 자며 긁어대던 나를 보며 한숨 쉬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가계문제도 생각을 해야 했다. 비싼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비보험이니 엄청나게 비싼 주사였다. 중증도를 파악해 보니 나는 중도 안 되는 정도에 있었다. 의사는 이런 케이스가 제일 애매하다고 했다. 다른 부위는 멀쩡해도 어느 한 부위가 특정적으로 미친 듯이 가려워서 이렇게 심한 케이스. 이런 사람들이 중증도에서는 심하지 않은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주사를 맞으려고 해도 보험이 안된다고.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주사를 맞으며 생각했다. 이걸 맞으면 내 30년 넘게 고생한 아토피가 좀 나아지긴 하는 건가. 언제까지 맞아야 하나. 돈은 어떻게 해야 한담. 뭐 그런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하며 주사를 맞았다. 맞은 팔이 뻐근하며, 머리가 아파왔다. 맞은 날 당일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한 달 뒤에 보자는 의사에 말에 그 사이에 가려우면 어떻게 하죠?라고 물으니 그럼 이 주 뒤에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예약을 하고 한 시간이 좀 안되게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착색되어 있는 흉터를 그저 바라만 보며, 진작 맞았어야 했나.라는 짧은 후회를 했다. 약을 먹고 바르면 나을 줄 알았던 내 병을 내가 키운 건가. 내 잘못인가. 아니다, 안 좋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먹고 발랐어도 맞았어야 했을 거야. 나는 다시금 찾아오는 자기혐오 같은.. 비슷한 종류의 생각들을 얼른 지워버린다. 스스로 돌보지 못한 나를 누굴 탓할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또 밑으로 내려버릴 필요도 없다. 항상 그 시점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 나는 현재를 살 수 있을 테니.


기분이 텁텁했다. 늘 병원에서 오면 이런 기분이다. 좀 더 내 몸을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더 빨리 왔어야 했나 하는 후회감. 그런 것들이 나를 좀먹는다. 그런 기분에서 헤어 나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지나간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는 것. 어른이 되고 알았다. 크고 보니 이해가 간다. 흘러간 모든 것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마음도, 상처도, 후회도.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버려야 깨닫게 된다는 것. 그렇게 계속 살아나가는 것.


마음이 공허해진다. 흉터들을 보며 어쩔 수 없네.라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네.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흔적들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곧이라도 다시 올라올 것만도 같은데, 이렇게 생채기만 남기고 남아진다. 아무렇지 않게 대수롭게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이렇게 터져 나올 때가 있다. 괜찮다고 생각한 나의 흉터도, 상처도, 가끔은 이렇게나 마음에 툭- 터져서 어쩔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럴 때의 나는 가끔 무력감을 느낀다. 남겨진 흉에 대한 무력감. 뭘 더 이상 할 수 없는 사실을 느끼는 온전한 외로움.



그럼에도, 그것들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면.

합리적이면서도 비합리적인 소망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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