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날마다 꼬박 하는 것 중에 세 가지가 있는데,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샤워다. 나는 가장 하기 싫어했던 그 세 가지 일들을 매일 하고 있다. 해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끝나도 식기세척기만은 돌리겠다는 거대한 결심 같은 걸 하지도 않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면 치우고 먹으면 치운다. 빨랫감도 생기면 빨고 또 생겨나면 빨고 건조기에 돌린다. 설거지는 그렇다 쳐도 빨래는 정말.. 하기 싫은 베스트 순위 3안에 들곤 했는데 남편이 신을 양말이 없을 정도로 빨랫감을 쌓아둔 적이 거의 매일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것만큼은 못 참겠다며 주말만 되면 화를 내곤 했다. 그러나 그 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나는 늘 남편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말이 어떻게든 지나가면 평일 낮은 온전히 내 것이니 참을만했던 것도 같다. 남편은 나가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다. 영양제 챙겨 먹기, 이틀에 한번 보리차를 끓이기, 사둔 책을 하루에 한 권 정도는 읽기 등등..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의외로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하고 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도 아니고 심경의 변화가 급격하게 생겨서도 아니다. 그냥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릇들이 쌓여있지 않도록 씻어내고, 습한 옷가지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샤워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울던 내가 샤워를 하루에 두 번도 할 때가 있다. 먹을 물이 없어서 잔뜩 사다 놓은 생수들은 그대로 있을 정도로 착실하게 물도 거의 떨어져 갈 때즈음 끓여놓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는다. 시집이면 시를 읽고, 산문이면 산문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눈에 읽히면 읽는 것이고, 읽히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무슨 행동을 함에 있어서 생각하고 고려하지 않는 일상적인 생활이다. 천성이 게으른 나라는 사람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행동들이지만,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별로 후회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내면의 균열이 조금씩 붙여지는 느낌이다. 여기저기 금 간 마음들이 사이사이로 메워진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기도 했다.
무심한 여름에 뜬금없는 눈발이 날리는 날이랄까. 그런 매일을 살고 있다.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걸 콕 집어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매일이랄까. 그런데 나쁘지도 않고 의외로 안정되는 느낌이다.
여름에 눈이 날려도 이상할 건 없겠군. 마음이 날씨처럼 변덕스럽네. 나는 지금 변덕을 부리는 건지도 모른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나라는 사람이 움직이는걸 변덕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움직이고, 움직인다. 나의 움직임은 무언가를 한다. 하나씩 무언가를 해내면서 마음이 뿌듯하다거나 큰 성취감을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어제도 한 일을 오늘도 하는 것이라는 걸 아는 것까지만 안다. 그렇게 알아간다.
나의 모습이 낯설고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나쁘지는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쁘지는 않다.
여전히 식탁 위는 엉망이고,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더미는 소파 위에 있다. 우리 집 강아지는 밥을 줘도 먹지 않아서 남겨진 사료는 쓸쓸히 사료 그릇에 담겨있다. 꼭 그만큼의 양만큼 나의 할 일도 남아있다. 이제 막 끝났다는 소리를 내는 식기세척기 알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늘의 시간이 조금은 기쁘고, 꽤 많이 서운하다. 지나간 시간을 잡을 수 없음에. 지나온 시간에 무언가를 했음에. 기특하고, 엉망진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