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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l 02. 2023

찬란한 하루

꿈뻑꿈뻑. 눈을 떴다가 감는다. 다시 감은 눈을 뜨고, 점심 먹자는 남편의 말에 쏟아지는 잠을 겨우겨우 밀어내며 일어난다. 오늘 점심은 우동이네. 남은 우동을 다 끓여버렸다는 남편의 말이 의기양양하다. 나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의자에 앉는다. 곧이어 아이들이 와서 앉고, 남편이 앉는다. 후루룩. 우동면발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먹느라 바쁘다. 역시 우동은 ***우동이지. 하면서 대기업의 맛을 느낀다. 



먹어도 깨워지지 않는 잠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남편이 버리고 온다는 걸 말리고 잠도 좀 깰 겸 내가 버리고 왔다. 그래.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꽂힌 노래를 계속 한곡만 반복 재생으로 틀어놓고 노래를 텅 빈 머리와 귀로 듣고 있었다. 뭘 했더라. 오늘 오전엔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이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에 산책을 다녀왔었다. 강아지까지 데리고 갈 자신은 없어서 애들만 데리고 나갔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는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봐주었다. 그리고 들어와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나...



오늘 유난히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는 어제 서울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젠 심지어 폭염경보 문자도 왔었다. 어린이와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경보였다. 그 폭염을 뚫고 요즘 우리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몰랑이의 팝업스토어에 다녀왔다. 그 동네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1시간을 넘게 도착한 서울에서 거의 주차할 자리만 찾는데에 30분은 허비한 것 같았다. 다행히 유료주차장을 찾아서 주차를 하고 우리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걸었다. 어제는 유난히 기분이 괜찮았다. 가면서도 줄곧 흥얼거리면서 출발했고,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젊은 청춘이 반짝이는 사람들과 걸었다. 팝업 스토어에 도착해서 여러 가지 버전의 몰랑이들을 구경하고, 잠시 쉬었다. 기념품도 사고, 다 같이 나와서 일본가정식 덮밥집에 가서 점심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땅콩잼 팝업 스토어가 열려있길래 들어가서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땅콩잼을 바른 토스트도 한 조각 먹어보고, 아이스크림도 공짜로 하나씩 먹었다. 한번 더 몰랑이스토어에 가서 구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얼마나 바삐 움직였는지 다시 되새겨진다. 해는 뜨거웠고, 아스팔트 바닥은 지글지글했고, 곳곳에는 퀴퀴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었고, 먹었고, 즐겼다. 이제는 정말 집으로 가자는 모두의 의견이 만장일치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반쯤이었다.


서울에 있었던 건 사실 2시간도 채 안되었을지도 모른다. 주차하는 데에, 막힌 길에서 운전하는 데에, 오고 가는 왕복길에, 대기표명단에 이름을 쓰고 우리를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데에, 시간을 훨씬 더 많이 쏟았다. 마지막엔 남편이 운전하면서 졸아서 내가 운전대를 쥐었다. 그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결국 집으로 어떻게든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 여파가 오늘 밀려온 건지 나는 아침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비몽사몽이다. 와, 이제 예전 같지 않아. 그런 말을 하니 남편이 체력을 기르라고 한다. 나는 짐짓 못 들은 체 하며 오늘의 쉼을 받아들인다. 내일은 둘째의 생일이다. 마트에 갈까 했지만 남편도 힘든지 망설여서 얼른 온라인으로 생일선물을 주문했다. 오늘은 온전히 쉬는 하루로 두기를 결정한다. 아이들과 산책도 했고, 오전에 그네도 타고 왔다. 오늘도 폭염경보가 내렸으니 에어컨을 종일 켜놓고 낮잠을 자든, 게임을 하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나는 어제를 적어두기로 한다. 우리가 어제 먹은 땅콩잼 스토어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사진을 찍기 직전 우리 앞에 계셨던 친절한 이방인(우리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구해다가 주셨다) 음식을 시키기 전에 너무 더워 물 한잔 부탁했던 우리에게 상냥하게 얼음물을 큰 컵으로 가져다주었던 음식가게의 종업원. 곳곳이 하얀 몰랑이로 가득했던 귀여운 팝업매장. 아이들의 즐거움이 가득 담긴 시끌벅적 말소리. 지나가던 오토바이의 부릉부릉 소리. 주차자리를 찾으며 뱅뱅 운전대를 돌리던 남편. 공짜로 토스트를 먹고 사진도 찍고 와서 가지고 온 네 컷 사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적어두기로 하며 얼른 노트북을 켰다.


어떻게 보면 별 볼 일 없던 평범한 하루가, 실은 꽤 바쁘고 분주히도 움직였다는 걸, 쓰고 나서야 알게 되는 오늘. 

이래서 뻗었구나. 서울의 여파가 강력했구나. 나는 몸소 체감하며 타자를 두드린다.

아직도 흘러가는 노래가, 듣기 좋은 걸 보면 서울 나들이가 즐거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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