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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14. 2024

5월 13일

적응은 할수 있다지만 적응이 안되는건 어떻게 할수 있는건가.


오늘은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다리에 쥐가나서 한참을 고생했다. 눈을뜨면 바로 앞에 창문이 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잎들이 금방 무성해짐을 느끼며 여름이 나 몰래 이렇게 바짝 다가오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올땐 겨울과 봄의 그 중간 어디쯤이었는데, 잎도 저렇게 무성하지 않았는데, 계절은 무심하게도 시간을 금세 가져와 버린다. 봄에는 울고싶었는데, 여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시간이 그렇게 나를 만드는것인지, 내가 시간을 이렇게 쓰고 있는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키보드를 켰다.


그리고 우울증약이 단번에 끊겼다.



그건 내 의지는 아니었다. 미국에 와서 그동안 한국에서 받은 처방전과 진단서를 가져가면 쉽게 받을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던 내 오만이었다. 의사는 말이 통하지 않아 처방을 내릴수 없다며 날 쉽게 돌려보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준비했고, 기다렸고, 3번의 방문만에 겨우 예약한 의사를 만난것일뿐인데 그는 나에게 약을 주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절망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이라도 당장 죽을것만 같았다. 병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고싶었다. 미국은 병원비가 비싸서 병원에 가기 힘들다는 소리를 듣고 남편 회사에서 보험카드가 나올때까지 기다렸던 시간, 영어도 못하는 내가 병원 예약을 잡으려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전화부터 걸었던 시간, 눈에 보이면 차를 멈춰세우고 들어가서 의사를 볼 수 있느냐고 물어봤던 시간들 전부 결국엔 약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기 위해 이렇게 애썼던가. 허탈하고 막막했다. 잠자는 약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줄 수 없다는 앵무새 같은 말을 듣고나서야 실감했다. 여긴 날 도와줄 수 없어. 여기선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어. 잠도 못자고, 그냥 우울하게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거야. 라고.


약은 내 의지로 끊은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끊겼다. 말이 안통해서, 받지 못했다. 절망이 사람을 어느정도까지 끌어내릴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아무 생각도 못하게 만들고, 아무행동도 못하게 만든다. 그저 난 끝났다. 이런생각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이라곤 그냥 멍청하게 아무것도 안하는것이었다. 같이 간 남편에게 나중이 되어서야 화풀이를 했다. 너때문에 여기에 와서 나는 치료도 못받고 이렇게 살고있다고, 너는 왜 도움이 될것 처럼 굴면서 같이 가놓고 그렇게 내가 원했던 수면제 조차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너는 왜 같이 간거냐고, 이곳이 나에게 도움이 될것 같느냐고, 그렇게 두서없이 그냥 쏟아냈다. 이 모든건 남편때문인것 같았다.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아왔고, 약을 먹은지는 4년정도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가겠노라 말했다. 이러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살아야겠다고 했다.

미국으로 온지 막 한달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종일 눈물만 흘린건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벅스도 마음대로 가서 하루에 한잔씩 커피를 사먹었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장도 보고 밥도 했다. 누가 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같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보내고 맥도날드에 가서 그렇게 먹고싶어하던 맥모닝도 주구장창 매일 먹었다. 한국에서는 먹지도 않고 거들떠도 안보던 김치를 주마다 한번씩 사와 이틀에 한번꼴로 김치찌개를 했다. 질릴때까지 그냥 먹었다. 약을 안먹는 불안감이 허기짐으로 찾아오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뭔가를 입에 물고있어야 했다. 계속 먹었다. 끊임없이 먹었다. 인간의 생존방식은 어떻게로든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린다는걸 살이 찌면서 느껴가고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약을 안먹어도 살아지긴 하는구나, 라며.


잠도 억지로 잤다. 그냥 일찍 누웠다. 일찍깨면 아이들을 보내고 남는 시간은 맥주를 마셨다. 보통은 한캔으로 시작하면, 하루가 끝나고 누워서 세본다. 평균 4캔을 마시는것 같군. 골똘히 생각한다. 처음엔 어색했다. 내가 알콜중독이 되는게 아닐까 무서웠다. 어쩌면 중독이 된걸지도 모른다. 아무렴, 죽겠다고 방구석에 쳐박혀서 우는것보단 낫지 싶었다. 잠도 자다보니 그시간이 되면 잠이 든다. 새벽에 불안해서 자주깨고, 약먹으면 안꾸던 꿈을 매일 꾸는게 귀찮기는 하지만 약을 안먹고도 잠이  어떻게든 든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냥 계획은 없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장을 보러 갔다와서 맥주를 마신다. 아이들이 오고, 남편이 오면 하루가 끝난다. 특별할게 없는 지금이다.



전자책으로 어떤날엔 미친듯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러다가 또 어떤날엔 베스트셀러라는 소설책에 기웃거려본다. 어떤날은 그냥 한국에 있는 언니와 아침내내 통화를 한다. 한국시간은 밤이고, 언니는 맥주를 마시며 내 전화를 받는다. 난 그 시간에 언니가 깨어있다는걸 안다. 받을때까지 전화를 거는경우가 일상다반사다. 언니를 안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나는 결혼을 했고, 돌잔치를 두번이나 치뤘으며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시간을 관통하며 지나왔지만 언니와 내 사이는 시간이 관통하지 못한 느낌이다. 우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이없는 말들을 하며 울고, 웃는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나면, 어떤날은 힘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날은 힘이 빠지기도 한다. 사람이란게, 그렇게도 살아진다.



그리고 다시 이 어이없는 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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