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밤이 싫다.
불안하고 고요한 밤엔 뭘 해야 할까.
지금 막 샤워를 하고 나왔다. 머리도 덜 말린채로 어설프게 고쳐앉아 하얀 화면만 노려볼듯 바라보다가 타자를 두드린다. 두드린다. 무슨말을 쓰고싶은건지도 모르면서 일단 두드려본다. 밤이 깊어간다. 나는 미지근해진 맥주 한모금을 마시며 익숙하지 않은 노란불빛에 의지한다. 그 불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팬이 선풍기처럼 시원하다. 나는 늘 이곳에 앉고, 누우며 생각한다. 저 팬이 언제든 돌아가다가 떨어지면 나는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한다. 저 팬은 왜 침대 위에 있는걸까. 저걸 설계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나만 무서운가.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말이지 어처구니도 없는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젠 이런 생각이 지겨워질때쯤,
또 여전히 밤이다.
오후 네시에 먹은 커피의 카페인이 이렇게도 센건가. 잠을 못이루는 이 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밤을 즐기는 법을 잊은지 오래된 사람이라 밤이 오면 조금 무섭다. 특히 이렇게 낯선곳에서의 밤은 더 무섭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미국의 밤. 까무룩해지는 밤. 그리고 하필 지독히도 잠이 오지 않는 이 밤. 다시는 네시 이후로 커피를 마시지 않을거야. 라며 다짐하는 밤이다. 분명 그럼에도 이 지금을 잊어버리고 또 사먹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또 이런 밤이 찾아오면 분명히 후회하겠지. 돈주고 사먹은 커피의 파장이 이리도 길었던가. 카페인과 잠을 맞바꾼 나의 최후인가. 뭐, 그런 생각을 심심하게 해본다.
그리고 밤이다.
오늘은 마트에서 물을 샀고, 맥주12캔 묶음을 샀다. 강아지에게 쓸 물티슈 한묶음을 샀고, 케찹을 살까 말까 망설였다. 그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케찹이 있었으면 샀을텐데, 있는건 한 종류 뿐이었다. 그리고 뭘 샀더라. 플러그에 꼽을수 있는 방향제를 샀다. 바로 옆 가게에서 강아지 사료와 패드를 샀고, 기름을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사치는 스타벅스에서 사먹은 커피 두잔이었다. 한개는 아침에 꼭 마시는 오트밀 쉐이커, 아이스커피가 낮에 마시고 싶어 시킨 아이스 드립커피(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랜건 나였다)
낮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서 집 앞 잔디에 풀어놓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많이 컸나. 이 강아지의 생명보다 내 생명이 더 길겠지. 나는 이 강아지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햇살이 밝은날, 잔디에서 미친듯이 뛰는 내 강아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우울했다. 그렇게 가끔씩 우울은 좀먹듯이 천천히 모르게 스며든다. 광합성좀 하겠다고 나간 산책이 우울함을 먹고 꾸역꾸역 집으로 들어온다. 나는 가끔 이런게 지겹다.
그런데도 밤이 지나가지 않는다.
건조한 몸구석구석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피부가 바짝 말려진 대추같은 느낌이랄까. 로션을 발라야 그나마 덜 가려울걸 알면서도 그 특유의 미끈거림이 싫어서 그냥 둔다. 계속 마른채로, 마르고 트고 가려워질때까지 둔다. 내 몸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너무 싫은데, 정말 너무 싫은걸 알면서도 여전히 피부가 마른채로 오늘을 지나가게 둘 것이다. 나는 매일 내가 밥을 차려먹고,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는것만으로도 이미 나를 돌보는 일에 지쳐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총량의 에너지를 반 이상 쓰고있다. 누가 나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한대도 나는 그것조차 받아칠 힘도 없다. 이정도도 잘하고 있는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된다. 하나씩 하면 되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지독한 밤이군. 얼굴을 찡그리는 동시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정말이지 지독한 밤이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