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위로가 되려면
노력이란 의미는 모두 다 짐작하다시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쓴다' 이다. 한마디로 어떠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노력했다는 게 중요하지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슬퍼하는 이에게 누군가 이런 위로를 해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의 결과가 혹시 나의 부족한 노력 때문은 아닌지 과거의 시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를 초래한 또 다른 요인은 없었는지 과거속에 갇혀 암울한 퍼즐 맞추기를 한다.
'그래, 노력했잖아...그게 최선이었잖아.'
'적어도 oo보다는 노력했는데...'
'근데...나...최선을 다한 거 맞는거지?'
이렇듯, 노력이란 단어는 꽤 상대적이고, 결과주의적이며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노력 그 자체로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노력은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쓴다' 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제 노력을 떠 올릴때 '애를 쓴다' 라는 의미에 치중한 나머지 맨 앞에 두글자 ‘목적’의 중요성을 잊은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목적(目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1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예시)목적을 달성하다.
2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의 관념. 또는 목표로 향하는 긴장.
3 실천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세운 행위의 목표.
보다시피, ‘목적’의 의미는 상대적이고 결과주의적 행위인 ‘노력’에 비하면 상당히 주관적인 가치이다. 내가 실현하려는 의지가 담긴 방향, 관념, 목표가 바로 '목적' 이기 때문에 '목적'에 한해서는 내가 온전히 주인인 것이다.
해답은 여기에 있다. 노력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길은 바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할때, 그 일을 함으로써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내 의지대로 설정하기만 하면 된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여기서의 목적은 회사나 부모나 그밖의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지극히 나를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강조하건대 그 일 자체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업무이든, 불가피한 공부이든, 나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일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일안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이롭게 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얻기 위한 나만의 목적을 설정하면 된다.
이렇게 나만의 목적이 설정되어 있다면, 이제 더이상 타인이 그 결과의 성패를 논하는 것이 나에게는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과정속의 노력은 모두 나를 위한 노력이였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인정하고 나도 인정할 수 있는 성공적인 결과이면 두 말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늘 나를 위한 목적 설정과 목적을 위한 최선의 노력,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다.
혹시 공동업무인 경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목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기적으로 느껴진다면 크게 걱정할 건 없다. 각자가 스스로를 돕는 자기만의 목적을 이루려고 애를 쓰는 한, 공동 업무의 목적 또한 좌초되지 않을 테니까.
누구나 이미 지난일은 어쩔 수가 없다. 현재, 최선을 다했던 일이 만족스럽지 않게 끝나서 슬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말 걸어 보자. 그리고 처음 세웠던 나만의 목적을 되짚어 보자. 혹시라도 목적없이 시작했던 일이라면 이제라도 그 일에서 세웠어야 할 나만의 목적은 무엇이였는지 꼭 한번쯤은 생각해 보자.
그래도 지금의 결과를 실패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내가 그 일에서 얻은 것이 없는가.
"노력했다는 게 중요하지뭐.” 라는 위로의 말이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로 이해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모두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