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위로가 되려면
누군가로부터 '예민하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예민하다'라고 느끼거나 '예민하다'라고 말해 본 경험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게 '예민하다'라는 말은 성격의 지나침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진다.
실제로 '예민하다'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자.
[예민하다(銳敏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예시)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발달하여 냄새에 예민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예시) 그는 참말 요새 같이 감정이 예민해 가다가는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예민하다'가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를 보면, 1,2번의 의미가 상당히 다름에 놀라게 된다.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와 '지나치게 날카롭다'가 주는 느낌은 좋음과 나쁨으로 너무 극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고민하고 후회하고 있는 사람에게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위로한다면 대부분은 너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지나치게 날카롭게 생각하지 마'라는 2번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위로를 들으면 불편한 감정도 함께 일렁인다. 이미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태어난 개에게 '냄새를 덜 맡아보면 어떻겠니.' 하는 1번의 의미가 겹쳐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내가 지금 예민한 거라고?' 하는 억울함까지 보태져서 마음은 더욱 불편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위로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내가 지금 위로하려는 사람의 고민을 멋대로 재단하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성격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위로를 받는 입장으로 돌아와서,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위로가 진정한 위로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은 바로 예민함의 이유를 본인 스스로가 정확히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삶의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통념적으로 가치 있는 것들 이외에도, 각자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지금의 문제가 나의 그런 가치관과의 충돌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나만이 고수하고 있는 삶의 가치관이 있는가.
이 문제가 그러한 나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는 문제인가.
내가 나의 가치관을 제대로 알고 믿어 줄 때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위로가 고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나서 들여다보면 비로소 지금의 고민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만약, 내가 의미를 두는 어떤 가치에도 상처를 주는 문제가 아니라면 '지나치게 날카롭게' 생각할 필요 없다. 흘려보내자.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만은 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위로가 여전히 불편하게 생각된다면, '능력이 빠르고 뛰어난' 당신답게 끝까지 고민하라. 누가 뭐라 해도 이 문제만큼은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당신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