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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Jul 26. 2022

[어딘글방] 뿌리를 찾아 _ 모래알

부천여성의전화에서 8회차 글방을 열었다. 20대부터 50대가 골고루 모였다. 연령대가 다양한 글방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 됐다. 20대는 50대를 지루해하지 않을지, 50대는 20대를 치기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기우였다. 50대는 20대의 경험을 존중하고 발랄한 문장에 경의를 표했다. 20대는 50대가 지나온 세월을 경청하고 인정했다. 종종 신기해하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겪는 공통의 도전과 실험에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충만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모래알의 글은 종종 박완서 선생이나 박경리 선생의 글을 떠오르게 했다. 전근대의 시간이 주는 다사로운 인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잘 버무려져 ‘우리’가 어떤 시간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난의 시간을 견디어낸 인간의 품위, 그녀의 글이 좋았던 이유다.





뿌리를 찾아


모래알



- 아빠~ 할아버지 존함은? 몇 년도에 태어나셨쓰까?

- 그런 것을 뭐한다고 물어본데?

- 아빠 딸 공부하는디 숙제로 해오라고 하네.

- 느그 큰집 한아부지야? 이자 순자 칠자. 80에 돌아가셨제

- 할머니는?

- 느그 큰집 한마니는 정자 분자 금자.  느그 한마니도 80에 돌아가셨쓰꺼시다.

- 할아부지 얼굴은 기억도 없는디 80에 돌아가셨으면 할머니하고 나이차이가

  많이 났쓰까?

- 그라제.  열다섯 차이 나쓴께

- 그라믄 증조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 존함은?

- 몰라


귀가 어두워진 팔십육세 아빠랑 목소리를 높여가며 오랜만에 긴 통화를 했다.  나의 뿌리를 찾으며 묻고 답변을 듣는 내 속은 간질간질해 온다.

아빠의 고향은 전라도 완도군인데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도 장흥군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장흥군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는데 열다섯, 여섯살에 집에 불이나고 소 두 마리가 죽었다. 그 스트레스로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홀 단신이 되셨다고 하니 그 쓸쓸함과 외로움과 고단함이 얼마나 크셨을까. 의지할 형제도 친인척도 없는 할아버지는 그 일로 일본으로 들어가셨다. 일본에서 17년을 사시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 그때 나이가 서른넷이었다고 한다. 서른넷 노총각 이순칠(李順七)은 열아홉 처녀 정분금(鄭分金)을 만나 결혼해서 이명용, 이명규, 이명준, 이명심, 이명엽 다섯 자녀를 낳고 기르셨다. 이 다섯 자녀 중 딱! 중간에 위치한 자녀가 울 아빠다. 이자 명자 준자. 오얏나무 이李 밝을 명明 준걸 준俊 이름처럼 준걸함이 밝은 빛을 내지 못하셨다. 큰아버지 이명용은 생전에 똑똑한 동생 명준을 당신이 뒷바라지 하겠다고 하셨다는데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시는 바람에 소원을 이루지 못하셨다.


- 엄마, 외할머니 존함은 박자 안자 순자 고 외할아버지 존함이 김자 장자?

- 인? 뭐라고야?

- 외할아버지 존함..

- 여보~ 재율네 아배 이름이 뭐다?

울엄마는 당신 아버지 이름도 가물가물 하신지 남편한테 물어보신다.

- 김자 병자 길자

- 김자 장자 수자가 아니고?

- 그거시 호적상으로 김자 병자 길자 제


울엄마는 당신 부모를 재율네 아배, 재율네 엄매 라고 하신다.

단단히 틀어진 관계가 호칭을 그렇게 부르게 만드셨다. 우리집 옆집이 외갓댁이였다. 엄마의 할머니는 장수를 누리셔서 나도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외증조 할머니 존함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뒷방 할머니’라는 호칭만 생각날 뿐....   

흑일도가 고향인 박안순은 사촌이 시집온 동네에 사는 노총각 김장수를 소개받아 두분이 연을 맺으셨다. 외할머니 박안순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이름 대로 편안하고 순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칠순잔치를 넘기고 팔십이 다 되어서야 돌아가셨으니 이름대로 장수하셨다. 볕이 따뜻한 휴일에 외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는 엄마와 함께 외갓댁으로 뛰어갔을 때 외할아버지는 안방 이불에 누워 계셨다. 식사는 거의 못 드시고 요구르트로 겨우 허기를 면하기 시작한지 몇날이 지난 때였다.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석관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반복하시다가 까무룩 그냥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외할아버지 김장수(金長壽) 외할머니 박안순(朴安順)사이에 1948년에 태어난 첫 딸이 우리 엄마 김재심(金在心)이다. 옆집이 외갓댁이라 참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가 틀어지면서 외삼촌 이모들과의 관계까지 서먹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집에 내려가면 외갓집에 들렀는데


- 오메, 오메, 우리 수현이 왔는가

하시면서 반가워하시던 외할머니 박안순여사가 그립다.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걸까?








부천여성의전화 글방 | 글감. 패밀리트리


모래알


모래알, 이렇게나 작은자가 글을 씁니다. 그 덕분에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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