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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Jan 19. 2022

꿈독

서른즈음에 자살하기 전 #015


 내가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나. 어쨌든 내가 어렸을 때, 그 무렵. 명절이나 그럴 때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OO아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은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택시기사가 될래요!”

"왜 택시기사가 되고 싶어?"

"자동차를 계속 탈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자동차를 실컷 탈 수 있어서였다.


 꿈, 소망, 바람, 동경 등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나이와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가지고 있다. 어릴 때의 나의 동생이 그렇듯, 나도 그렇듯 우리는 모두 꿈을 품고 있다. 꿈은 동경하는 거고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동경하는지 알고 있다. 그건 무언가를 먹고 싶다 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세계 정복처럼 이루기 힘든 것일 수도, 비싼 전자기기를 가지고 싶다 처럼 현실적인 것일 수도 혹은 키가 20cm 커졌으면 좋겠다 처럼 비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욕심이 있다는 것이고 무언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다는 동기가 되어 주니까. 하지만 이런 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내 꿈이 아이언맨이 되는 것이라면? 진심으로 그 꿈을 생각하고 있고  독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인생에서 그만한 독이 없다. 그니까. 한마디로. 최악이다.


 나는 24살에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그전까지 여행에 생각이 없었다.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내가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고, 여행에 흥미를 느낀 적도 없었다. 여권을 만들었던 건 대학교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가게 된 한 달 유럽여행 때문이었다. 하지만 2년 뒤 4개월을 여행했었고, 그다음 해에는 1개월이었다. 처음 유럽을 갔을 때만 해도 내가 여행을 이렇게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를 시작으로 항상 장기간 여행을 했던 터라 2박 3일, 3박 4일 같은 여행은 여행 같지 않았다. 일주일도 안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거나, 말이 통하는 여행은 무언가 심심했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사람이 맑고 심심한 사골국을 먹는 느낌이랄까. 단기간 떠나는 것은 무언가 톡 쏘는 게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며 어딘가 떠날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가지 못하더라도 몇 번의, 몇 년의 여행을 계획해두고 있었고, 최소 한 달에서 길게는 1년 넘게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만족스럽게 녹아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독이라고 했고 나는 오히려 마약과 더 비슷했다. 여행이니까, 한번 가봤다고 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곳을 가보고 싶어 하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하고 나의 역량을 키워서 좋은 직장을 잡고, 퇴사보다는 꾸준하게 일하고 싶어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은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떠나고 싶다는 강한 마음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에게 욕을 먹었다. 나이가 나이인데 아직도 허무맹랑한 꿈을 꾼다고, 이제 정착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이런 조언을 들으면 가슴이 아팠지만 더 슬픈 건 조언해주는 삶이 더 편안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정말 편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애써 거부하려고 하니까. 나와 같이 유럽여행을 했던 친구는 지금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는 같이 갔다 왔으면서도 왜 아직 꿈속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고집불통이면 다른 것들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겠지만 나는 귀도 얇아서 이런 조언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꿈이 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만족하는 삶이 금전적, 심리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평안할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다른 생각을 가지면 머리만 혼란해질 뿐이다. 내가 그만큼 한국에서의 삶에 더 충실했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돈을 모으는데 집중하고, 좋은 사람들을 더 만났다면. 하지만 이미 중독된 사람이 된 것처럼 중독 전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것이다. 현실에 더 충실하거나, 혹은 꿈에 달려드는 불나방이 되거나. 당연히 내가 가진 자원들을 태워서 사그라지는 건 원치 않는다. 꿈을 이루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을 원한다. 나의 꿈은 욜로족이 아니며 싫어한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하던지 늘 아웃풋이 남기를 바란다. 금전적이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엑셀과 같은 수치가 아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젊을 때는 현실성 없는 꿈이라고 가지고 있는 게 좋았고, 그게 때때로 무기나 면죄부가 되곤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꿈이 있다고 이루려면 이래야 한다며 나를 자위하기도 했지만, 30대의 꿈은 다르다.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면 꿈은 허무맹랑해지고 조금이라도 현실과 안정에서 벗어난다면 놀림과 비난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꿈을 도전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의 나이는 사회적으로 외면할 나이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해진다. 지금 모든 것을 도전하거나, 아니면 늘 답답함을 안고 사회를 살아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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